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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실크로드와 문명 교류
실크로드와 문명교류
실크로드는 오아시스로, 초원길, 바닷길로 표현되는 3대 간선과 이들을 세로로 엮어주는 6대 지선으로 구성된 그물망 모양의 촘촘한 교류의 길이었다!
오아시스로는 한 무제가 흉노 전쟁을 시작한 기원전 127년 이후에 흉노 세력을 피하려고 소규모 오아시스 국가를 정복하면서 개척한 길로 역대 중국 사서에서 지나치게 미화한 길.
초원길과 바닷길은 모두 대원제국이 유라시아 전역을 거의 석권하면서 동서의 문명교류에 이바지한 길.
1) 문명교류에서 맨 처음 거명할 대상은 말과 마차 그리고 전차라고 하는데?..
말은 소나 양, 개에 비할 때 가축화 시기가 상당히 늦다. 처음에 말은 다른 가축처럼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사육.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 그려진 소와 사슴, 말은 사냥 대상
그러다가 말의 속도와 순발력, 기동력에 주목하여 운송 수단으로 말을 생각 -> 기원전 30세기 무렵 재갈과 고삐 발명 (안쪽 두 번째 어금니 빼서 작은 자갈 넣고 고삐와 연결) -> 바퀴와 축 발명 -> 수레 등장 -> 전차로 탈바꿈 (기원전 20세기 무렵 안드로노보인: 아리안족 조상) -> 유라시아 전역으로 전차 보급 (전쟁에 필수적인 요소)
2) 말의 기동력을 배가시킨 물품이 안장과 등자인데, 그것의 발명과 전파에 관해서!
기원전 8세기 무렵 스키타이가 카펫으로 만들어진 안장 고안 (흉노는 나무안장 발명)
등자는 기수의 두 발을 말의 몸통에 밀착시킴으로써 고도의 기동성과 안정성 확보에 도움
선비족과 고구려가 훗날 금속제 등자를 발명 -> 나무보다 견고하여 기동성-안정성 강화
3) 안장과 등자 발명과 함께 파르티안 사법이 고구려에서 일반화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죠?
파르티아는 오늘날 흑해와 카스피해 남부, 터키와 중동의 이라크, 이란 지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형성. 기원전 247년부터 기원 224년까지 유지. 기원전 53년 로마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침공하여 ‘카레 전투’ 발발. 로마는 보병, 파르티아는 기병 중심. 퇴각하던 파르티아 기병들이 갑자기 몸을 돌려 화살 발사 -> 몸은 앞으로 머리는 뒤를 향하는 사법 -> 로마 패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수렵도에 파르티안 사법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호랑이를 쫓는 무사는 몸도 머리도 전면을 향하지만, 두 마리 사슴을 쫓는 무사는 몸은 전면을 향하지만, 머리는 뒤쪽으로 향하면서 사슴을 향해 활을 겨냥. 파르티안 사법이 중앙아시아와 고비사막을 거쳐 고구려로 전파된 것!
4) 중앙아시아의 알타이 지역에 있는 파지리크 고분군에서 발견된 쿠르간과 신라의 경주에 있는 적석목곽분 구조도 동일하다고?!
쿠르간의 러시아어로 작은 산이나 언덕 같은 대규모 고분을 뜻하는데, 무덤을 축조한 방식이 신라의 경주 고분과 똑같다. 신라에서는 왕이 죽으면 땅을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어 그곳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는다. 그다음에 돌을 쌓고 흙을 덮은 다음 봉분을 만들면 매장이 종결. 쿠르간의 경우에는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곳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은 다음 돌을 쌓는 것으로 매장종결. 봉분을 쌓지 않은 이유는 풀이 자라기 어려운 자연조건. 중앙아시아의 매장문화가 흉노를 매개로 신라까지 전파된 것으로 이해.
5) 유라시아 곳곳에서 출토되는 비너스상과 천마도 문명교류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는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조각상이 아닌,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비너스상이 유라시아 스무 곳 이상에서 출토.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에 바탕을 두고 있었는데도, 똑같은 모양의 비너스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문명의 소통과 교류로 해설할 수밖에 없다.
천마총의 천마 역시 유라시아 곳곳에서 페가수스나 그리핀의 형상과 이름으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