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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신심'을 현혹한 희대의 사기 사건···한국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 묘소에도 '사기꾼' 조각상 설치

한태연 기자 입력 2025-03-12 08:44:45 조회수 6

한국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 묘소에 '사기꾼' 조각상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속여 경북 청도군과 전남 신안군 등 2곳 자치단체에 조형물을 설치한 뒤 20억 원이 넘은 예산을 빼돌린 최 모 씨.

71살 최 모 씨는 지자체 예산을 빼돌리기 이전에는 전국 성당을 돌며 사기 행각을 벌여왔습니다.

경기도 미리내성지에 '사기 조각'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는 우리나라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이 안치돼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에게는 대표적인 순례지입니다.

김대건 신부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고 신앙을 본받기 위한 곳입니다.

연중 순례객이 끊이지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학력과 경력을 속이고 지자체를 돌며 예산 21억여 원을 빼돌린 최모 씨의 조각상이 설치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의 조각상은 입구부터 보입니다.

길이 25m의 거대 부조.

'227위 성인 복자 부조'입니다.

2015년에 설치됐습니다.

부조 아래켠에는 사기꾼의 작가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만이 아닙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안장한 묘소 앞 '피에타상'도 사기꾼 최 모 씨가 설치했습니다.

천주교 수원교구 측은 이 조각상이 2017년에 설치됐다고 밝혔습니다.

미리내성지 측은 각각 3억 원과 8천만 원을 사기꾼에게 지불했습니다.

최 씨의 사기 작품은 이곳에만 4개입니다.

순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취재진이 최근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 씨가 만든 조각상이라고 알려주자 모두들 놀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순례객 "그런 어떤 배후에 그런(사기) 것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거는 아주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요. 나는 철거를 해야 할 것 같아."

순례객 "사기꾼이 와서 (해)놓은 걸 우리 저 백성들이 와서 그걸 또 보고 기도한다는 게 웃기는 거야. 자기가 유명 작가라고 해서 만들어 놨는데 돈이 안 되겠어요? 한두 푼 받고 했겠어? 그게 그게 다 중국 제품이라는데 내가 더군다나 아니 그 조사도 안 해보고 어떻게 갖다 놓냐. 이 천주교가 사기당했다는 게 그게 난 슬픈 거야."

천주교 수원교구 측이 지금까지 파악한 최 씨의 조각상은 미리내성지를 비롯해 죽산성지, 포일성당, 마테오성당, 보정성당, 북수동성당 등 6개 성당에 11점입니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교구 내 성물 설치 과정에서 작가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하지 못한 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면서, "향후 성물심의위원회 설치 및 성물목록화 작업을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교구에서는 최 씨에 대한 법적 조치와 성물 철거 여부에 대해서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충남 등 다른 지역 성당에도 사기꾼의 흔적이···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목4동성당에도 최 씨의 조각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2021년 교회 미술품 목록화위원회를 구성해 1년가량 성당에 설치된 미술품을 도록화했는데, 조만간 실사를 통해 최 씨의 작품이 있는지 확인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문제 작품 철거 여부는 이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에도 최 씨의 조각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측은 교구별로 최 씨의 사기 작품 실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구문화방송의 최초 보도 이후···최 씨의 처벌은 어떻게?
대구문화방송이 1년 넘게 집중 보도한 경북 청도군 조형물 사기 사건의 피의자에게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대구지방법원 제12형사부 어재원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71살 최모 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청도 군수와 청도군 담당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허위로 알려 그 범행 수법이 대담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 씨의 범행으로 청도군의 예산이 지출돼 청도군민 전체가 피해를 봤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피해를 회복하거나 합의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범행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부인하고 있다"면서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박준우 변호사 "문화예술 사업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불량합니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범죄이나, 양형에 있어 피해기관의 과실도 함께 고려된 판결로 보여집니다."

최 씨는 2023년 경북 청도군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접근해 기증품을 설치하고, 김하수 청도 군수가 원하는 작품을 설치한 뒤 2억 9천여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최 씨가 김 군수에게 해외에서 수학하고 활동한 경력이 있는 세계적인 조각가라는 취지로 속여 금품을 편취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 씨가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대리석 작품을 설치하겠다고 청도군과 협의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에서 수입해 청도군을 속였다고 판시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 씨는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상습 사기죄 등으로 여러 차례 복역했고, 이력서에 1992년에 파리7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했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사기 등 혐의로 복역한 시기였습니다.

최초 보도는 어떻게?
대구문화방송은 2024년 1월 22일 '경북 청도군의 수상한 조형물들···거액 들였지만 안내판조차 없어'라는 제목으로 관련 첫 보도를 했습니다.

김하수 청도군수가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청도군에 들여놓는다고 밝혔지만, 설치 과정에서 행정적인 절차와 과정을 무시했다는 점을 보도했습니다.

10여 차례에 걸쳐 의혹 보도를 했고, 결국 청도군에서의 사기 행각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김 군수가 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면서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통해 최 씨의 전남 신안군의 사기 행각도 드러났습니다.

사진 제공 청도군의회 이승민 의원
사진 제공 청도군의회 이승민 의원
보도의 발단은 청도군의원의 1인 시위에서
이 보도의 발단은 청도군의회 무소속 이승민 의원의 1인 시위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의원은 2023년 12월 8일 청도군청 앞에서 민생보다 조형물이 더 중요할 수 없다"면서 "청도군은 이미지에도 맞지 않은 조형물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등 욕심을 내고 있다"라면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의원이 왜 1인 시위를 하게 됐는지를 파악하면서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사기를 당한 경북 청도군, 민사소송으로 대응···피해에 대한 책임은 누가?
대구문화방송의 보도로 최 씨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면서 청도군과 신안군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경찰은 최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김하수 청도군수는 "피고인이 세계적인 조각가라는 것을 믿고 구입을 했다. 만약 중국에서 전략 수입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신중하게 검토하였을 것이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청도군 "우리는 피해자"···민사소송 제기
판결에 따라 청도군은 최 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청도군 관계자 "구입 당시 해당 작가가 세계적인 작가로 인식해 계약을 체결했지만 허위로 드러남에 따라 계약을 취소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매 계약을 취소하고, 계약금 2억 9천700만 원을 반환하는 한편, 조형물 회수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기증받은 조형물 9점에 대해서도 공공조형물 심의를 거쳐 조형물을 해체하고 매각 절차를 밟기로 했습니다.

박준우 변호사 "피고인의 재산을 신속히 가압류하고 추후 강제집행을 위한 재산조사 등 채권 확보 조치가 시급합니다. 이와 함께 향후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계약 체결 전 사업자의 이력 검증을 강화하고 작품의 진위 여부를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확인하는 등 계약 및 검수 절차의 제도 개선도 반드시 병행돼야 합니다."

하지만, 행정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사기꾼과 계약을 맺어 3억 원에 가까운 청도군 예산을 낭비한 김하수 청도군수는 아직도 이번 사건에 대해 군민을 상대로 공식 사과와 책임 등을 표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골머리'를 앓는 전남 신안군
전남 신안군은 2024년 2월 최 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신안군 사기 사건은 청도군 사건과 병합돼 심리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신안군에 대해서는 이중잣대를 들이댔습니다.

법원은 최 씨가 지난 2018년 전남 신안군에도 같은 수법으로 18억 6천여만 원 어치 조각상 천여 점을 설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과 관련해서는 "기망 행위와 편취액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고 어렵고 계약 체결에 범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신안군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사태가 불거지고 2024년 천사상 설치 경위를 밝힌 표지석을 없앴습니다.

설명문에도 최 씨의 이력 등을 삭제했습니다.

신안군 측은 “우리가 피해자라고 보고 최 씨를 고소한 뒤, 재판에서 혐의가 확정되면 민사 소송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무죄가 나와 난감하다”라며 “검찰 항소 여부와 주민 여론 등을 살핀 뒤 작품 처리 문제를 판단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항소로 맞대응키로
대구지방검찰청은 경북 청도군 조형물 사기 사건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검찰은 공무원들이 피고인의 경력 등을 고려해 금액 등을 정한 점에서 기망행위나 인과관계가 인정됨에도 원심은 인과관계를 부정해 사실오인,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검찰은 1심에서 최 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을 구형했습니다.

'신심'을 현혹한 희대의 사기 사건은 지금도 진행형
최 씨의 1심 판결 이후 다른 언론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천주교의 최 씨 사기 조각품에 대해 진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 여러 성당에 설치된 최 씨의 사기 조각품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신성한 종교의 굳은 믿음을 현혹한 최 씨의 사기 행각의 끝은 언제 다 밝혀질까요?

자신들은 피해자라고만 주장하고 있는 천주교와 경북 청도군수와 전남 신안군수는 과연 이번 희대의 사기 사건에서 자유로울수 있을까요?

천주교, 자치단체 모두 스스로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책을 우선 내놔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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