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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이런 아수라가 없고 이런 무간지옥이 없습니다"

윤영균 기자 입력 2025-02-22 10:00:00 조회수 1

2월 18일은 대구 시민들에게 큰 트라우마가 있는 날입니다. 5년 전에는 '지긋지긋했던' 코로나 19가 대구에서 발생한 첫날이었고, 22년 전에는 대구 도심 한복판에서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두 사건은 '사회적 참사'라는 점과 함께,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기는커녕, 빨리 지우고 잊어버리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25년 2월 18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는 지하철 참사 추모식이 열렸는데요, 하지만 추모식이 열린 공원에는 참사를 기릴 명패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잔디밭에 꽂힌 이름표와 종이꽃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렸는데요, 바로 앞 인도에서는 "추모 행사를 이곳에서 열지 말라"는 팔공산 동화지구 상인들의 반대 집회가 열렸고, 홍준표 시장을 비롯한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김태일 2.18 안전문화재단 초대 이사장
지하철 화재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영령들께 엎드려 통곡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아수라, 또 이런 아수라가 없고 무간지옥이라면 이런 무간지옥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초현실적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해원을 호소하며 단식을 하는 자리 옆에서 짜장면을 먹는 일베도 있었고, 최근입니다만, 군사 쿠데타로 피를 뿌렸던 도시에서 비상계엄 내란을 지지하는 무도한 집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저 모습은 저는 그보다 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2월이면 되풀이되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지긋지긋한 우리에게는 끔찍한 형벌입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비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영령들이시어, 우리는 저분들이 야속하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악몽 같은 상황을 만든 것은 대구광역시이기 때문입니다.

대구시는 지하철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팔공산 동화지구 상인들에게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지도록 했습니다. 대구시는 이곳 상인들에게는 추모 시설이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에게는 결국에는 추모 시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면서 은밀한 합의를 촉구했습니다. 저 192그루의 나무 밑에 묻혀 있는 희생자 일부의 유골은 이런 과정에서 모셔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조리극 같은 모순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 책임은 대구광역시에 있습니다. 이곳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짓는 데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참사 당시 사고 수습을 위한 국민 성금 가운데 수십억 원의 돈이 이곳에 투입되었습니다. 시민안전테마파크 내부에는 시민 안전 체험을 위한 참사 당시 불탄 전동차 잔해가 옮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며 시민 안전 문화를 형성하는 안전 문화 공원으로 만들어졌고, 또 앞으로 그런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 분명합니다. 우리가 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대구 시민의 희생을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 사회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고, 안전한 세상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자는 것입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단지 위로받자고 기억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과거에 겪은 아픔과 당당하게 대면하고 그것을 치유하며 회복과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 목표인데 그것은 기억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상처를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도시 발전의 힘으로 만든 사례들도 많습니다. 히로시마는 원폭의 기억을 평화의 도시로, 제주도는 4·3의 기억을 평화의 섬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5·18의 아픔을 광주는 자유와 인권의 도시로 승화시켜 나갔습니다. 우리도 이 가슴 저미는 슬픔을 쓰다듬으며 대구를 안전과 생명의 도시로 가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상처는 우리에게 진주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시민 여러분, 정치인 여러분, 행정 공무원 여러분, 제발 대구가 이렇게 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려면 아픔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고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면하고, 미루지 말고 껴안고 앞으로 나서기 바랍니다.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 앞에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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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균 novirusy@dg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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