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살았던 대구 옛집, 복원 추진 5년 만에 '첫 삽'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대구의 옛집을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된 지 5년 만에 첫 삽을 떴습니다.
대구가 고향이기도 한 전태일 열사의 옛집은 전시실을 갖춘 기념관 형태로 복원될 예정인데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에서 뜻깊은 기억 공간이 될 전망입니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전태일 열사의 옛집은 22살 짧은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1948년 9월 태어난 전태일은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집에 산 적이 없었습니다.
비렁뱅이 생활을 하며 천막집, 나무집 같은 곳에서 거주했고 신문팔이, 껌팔이, 구두닦기 등을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1962년 8월 다시 대구로 왔을 때 온 가족 여섯 명은 비렁뱅이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비록 2평밖에 안 되는 작은 방이지만 그들에게는 가족의 사랑을 키울 수 있는 너무도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만 열다섯 살인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라는 야간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다니면서 꿈에도 그리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전태일이 분신하기 이틀 전 대구까지 찾아와 "죽음으로써 사회를 바꾸겠다"라고 말했던 대상인 첫사랑 김예분 씨를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대구 시민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결성···5억 5천만 원 모금해 전태일 옛집 사들여
그의 서거 50주기를 앞둔 2019년, 대구의 뜻있는 시민들은 전태일의 대구 옛집을 복원하기로 하고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을 결성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까지 3천여 명으로부터 5억 5천만 원을 모금해 2020년 10월 전태일 옛집을 사들이고 '전태일' 명패까지 달았습니다.
하지만 3억여 원의 복원 비용이 부족해 계속 착공이 미뤄져 오다가 2024년 4월 17일에야 공사의 첫 삽을 떴습니다.
최기현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는 "이러한 공간 구조라도 저희가 잘 보존해야지 전태일 정신이 어떻게 보면 그 증거로서 이 공간에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그 의미를 말했습니다.
"전태일의 유품 등을 전시하며 전태일 정신 전할 것"
전태일 일가족 여섯 명이 살았던 2평 정도의 좁은 방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복원을 통해 체험 공간으로 거듭납니다.
아직 건물 형태로 남아 있는 주인집은 수리해 전태일의 유품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돼 전태일 정신을 전할 예정입니다.
복원 작업에 참여한 목수이자 시인인 조선남 씨는 "우리 후배들 우리 동생들 우리 아들딸들이 여기 와서 전태일을 기억하고 청소년 노동인권 교실이 되고 현장이 되는 그런 공간 그런 방향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전태일 정신은 '연민'···자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먼저 생각한 전태일"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며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분신해 삶을 마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노동 운동은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정도로 그의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송필경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은 "전태일 정신은 연민입니다. 고통스러운 사람에 대한 연민 그런데 전태일이 왜 위대하냐 하면 자기도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살았는데 자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먼저 생각한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2023년 11월부터 복원 공사비 모금 운동에 들어가 1억 5천만 원을 마련했지만 아직 2억 원 정도 부족해 2차 모금 운동에 들어갔습니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 전태일 열사 기념관이 들어서게 되면 이념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