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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밥상까지 위협하는 녹조···"강물이 흘러야 사람도 산다"


언제부터인가 여름만 되면 녹조, 조류경보와 같은 단어들이 언론에 등장합니다. 걸쭉한 녹색 물을 컵에 담은 모습은 녹차라떼를 닮았다고 해서 '녹조라떼'라고 표현되기도 하죠. 맑은 강 색깔이 아닌 짙은 녹색의 강물은 보기에만 안 좋은 건 아닙니다. 녹조에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는데, 코브라 독의 10배, 청산가리의 100배 정도 되는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녹조가 창궐하는 여름뿐 아니라 녹조가 눈에 띄지 않는 다른 계절까지, 즉 1년 내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손은민 기자 "지금까지 녹조가 심하다는 얘기만 계속 반복됐고, 또 환경부에서는 강물에 독성이 있다고 해도 강물을 써서 재배한 농작물에는 독성이 축적된다는 근거는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농작물 연구 같은 경우에는 하루 만에 되는 게 아니라 1년, 2년 해를 바꿔가면서 검증해야 하거든요? 이곳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녹조 물을 끌어다 쓰는지를 계속 확인하고 그곳에서 수확한 작물을 사서 분석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 거죠"

낙동강 하류 2곳에 구매한 쌀에서 독성물질 '마이크로시스틴' 검출

환경운동연합은 2021년 12월, 낙동강 하류 지역 2곳에서 백미 10kg씩을 구매했습니다. 녹조로 뒤덮인 강물을 그대로 끌어다 농사를 짓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산 쌀을 믹서기에 갈아 성분을 분석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쌀 1kg에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성분이 각각 3.18µg, 2.53µg 검출된 겁니다. 1µg은 1,000,000분의 1g입니다. 쌀 1kg을 먹으면 독성물질 백만분의 3g 정도를 섭취할 수 있다는 얘긴 거죠.

좀 더 현실적으로 계산해 볼까요? 2019년 우리나라 국민의 곡류 하루 평균 섭취량은 269.92g입니다. 몸무게 60kg의 성인과 몸무게 30kg인 어린이가 한 끼에 각각 100g과 50g씩, 하루 세 끼를 모두 이번에 실험한 쌀밥으로 먹었다고 가정하면 마이크로시스틴 하루 섭취량은 성인 0.759~0.954µg, 어린이는 0.379~0.477µg이 됩니다.

이 정도 수치면 얼마나 위험할까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허용치보다는 낮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기준을 사용하면 허용치를 초과합니다.

먼저 캘리포니아주 환경보호국 기준(OEHHA)과 비교해 볼까요? 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준치보다 1.97~2.48배 높습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남성 정자 수 감소와 여성 난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이 기준치보다는 7.02~8.83배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의 기준은 더 엄격한데요, 생식 독성 기준보다 12.65~15.9배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낙동강 인접 논밭에서 재배한 무·배추에서도 검출

문제는 '녹조 강물'로 쌀만 재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보다 한 달 전인 2021년 11월에도 낙동강 중류와 하류, 금강 하류에 인접한 논밭에서 각각 무 5kg, 배추 15kg, 현미 10kg을 가져다 분석했습니다. 역시 농작물 세 종 모두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습니다.

1kg당 무에서는 1.85µg, 배추는 1.1µg, 현미에서는 1.3µg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재배한 쌀로 밥을 짓고 이곳에서 재배한 채소로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담가 같이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엄격한 프랑스 기준으로 따져보면 생식 독성 기준을 스무 배 이상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이나 프랑스 기준으로 본다면 녹조가 나온 물로 키운 쌀과 채소를 먹으면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손은민 기자 "저희 지역에 특히 의미 있는 부분은, 이번 조사가 대구와 경북을 관통하는 낙동강 인근에서 재배된 쌀, 한국인의 주식인 쌀에서도 독성 물질이, 프랑스나 미국의 기준치를 훨씬 넘는 독성 물질이 나왔다는 게 문제인 거고, 이걸 먹었을 때 인체에 얼마나 쌓이냐는 연구를 더 해봐야겠지만 인체에도 위해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녹조를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 밥상에도 위험이 된다는 부분이죠"
정부 "'녹조 강물'로 농사지어도 독성 흡수 안 돼"···조사 결과는 '반대'

정부는 지금까지 녹조가 생긴 강물로 농작물을 재배한다 하더라도 그 독성이 농작물에 쌓이지 않는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독성물이 이송 과정에서 분해될 가능성이 높고 식물에 흡수되기도 어려워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내용의 책자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녹조의 독성이 식물에 흡수됐을뿐더러 일부 국가의 허용 기준보다 더 높다고 나온 겁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부위원장 "정부는 녹조 독성이 농작물에 축적되지 않는다고 밝혀왔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안전성에 대한 여러 우려를 낳습니다.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합니다. 한국인 식생활의 기본인 쌀·배추·무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것은 우리 국민 먹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특히 녹조가 번성하는 여름철 작물과 어패류 등에서도 높은 농도의 독성이 검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여름 녹조 위험성···"물놀이조차 위험"

그렇다면 녹조가 번성하는 여름에는 강물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독성물질이 나왔을까요? 환경운동연합은 2021년 8월 낙동강과 금강 일대의 물을 채취해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낙동강은 영주댐-상주보-낙단보-구미보-해평취수장-칠곡보-문산·매곡취수장-강정고령보-화원유원지-도동서원-합천창녕보-창녕함안보-물금취수장까지 27곳에서 물을 떠 분석했는데 절반 이상에서 미국 레저 활동 기준, 즉 물놀이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물놀이 기준치의 수십에서 수백 배에 달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된 건데, 우리는 현재 이 물을 정수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마시고 있는 겁니다. 또한 이미 2021년 10월에도 녹조 물로 상추를 재배하는 실험을 벌여 마이크로시스틴이 농작물에 축적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녹조 원인인 남세균에서 생성되는 독소로, 국제암연구소는 2010년 잠재적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인체에 흡수되면 간과 폐, 뇌 질환 등을 일으키고 생식 독성까지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부위원장 "작물에서 검출된 마이크로시스틴은 워낙 안정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300도에서 끓여도 분해되지 않습니다. 인체에 그대로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부의 광범위한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녹조현상, 4대강 사업 이후 두드러지고 반복"

녹조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강물에는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먹이가 되는 영양분이 크게 증가하게 되면 조류 역시 늘어나게 되죠. 주로 온도가 높아지거나 강이 오염되는 경우에 많이 발생합니다. 조류가 많아지면 물고기들의 먹이가 많아져서 좋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녹조가 강 표면을 뒤덮으면 태양빛을 차단시키고 용존 산소의 공급도 줄어들게 됩니다. 여기에다 마이크로시스틴처럼 독소까지 배출되면 강 생태계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녹조현상이 4대강 사업이 이후 두드러지고 반복되어 왔다고 지적합니다. 강물이 흐르지 못하고 호수처럼 정체되면서 녹조 현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낙동강 재자연화, 즉 4대강의 보를 모두 철거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철거할 수 없다면 최소한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국장 "녹조는 흐르는 물에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낙동강보다 수질이 더 안 좋은 금호강에 녹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수문을 연 금강과 영산강에서는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보 수문 잠깐 개방했더니···돌아온 자연

정부는 2021년 12월 1일 대구 아래쪽에 있는 낙동강 합천창녕보의 수문을 개방했습니다. 원래 합천보의 관리수위가 해발 10.5m였는데 이보다 4.3m나 수위를 내린 겁니다. 그 결과 그동안 물에 잠겨 있던 모래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모래톱에서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독수리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숨겨져 있던, 잊고 있던 자연의 일부가 다시 돌아온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주변 양파와 마늘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수문을 닫았습니다. 수문을 열면 강물을 깨끗해지지만 농업용수 공급이 어렵고, 그렇다고 수문을 닫으면 독성 물질이 들어간 강물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겁니다. 자칫 환경단체와 농민들과의 감정싸움으로 진행될 소지도 있습니다. 당장 보를 개방하더라도 농업용수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도록 취양수장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낙동강과 한강의 지자체와 농어촌공사가 소유한 취양수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9천억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와 있습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국장 "농민들 또한 피해자들입니다. 국가가 만들어놓은 보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농민도 나서서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문제가 풀릴 수 있습니다. 또한 농민단체와 소비자단체, 생협 등에도 낙동강 녹조 농산물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 줄 것을 강력하게 제안합니다."

윤석열 당선인 "4대강 재자연화 정책 폐기"···녹조 대책은?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다시 말해 '4대강 사업'을 승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낙동강 강물로 생산된 쌀과 무와 배추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유통됐는지 당장 조사에 착수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녹조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강을 흐르게 하는 것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의 시각과는 정반대 입장입니다. 가뭄과 홍수를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독성 물질이 들어있는 강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까지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자연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람도 병들어간다는, 강이 흐르지 못하면 사람도 죽어간다는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언젠가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은 역사책에만 나오는 교훈일까요?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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