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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니] "이 정권 들어와서 더 심해진 걸 보면···" 평화의 소녀상 제작한 부부 작가

2011년,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지금은 전국 각지는 물론 미국, 호주, 베를린 등에 100여 개가 넘는 소녀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만나보니,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김은성 부부 작가를 만나 소녀상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우리가 이거 철거되면 그다음 날 또 갖고 오고 그다음 철거되면 그다음 날 또 갖고 올 테니까 단 하루를 세워놔도 제대로 된 조각을 세웁시다"

"혐오와 폄훼로 시작한 윤석열 정권이 극우들의 시대를 맞이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평화의 소녀상'이 인권을 위해서 많이 싸우고 있구나"

"저에게 있어서 '평화의 소녀상'은? 소녀상이라 하면 그냥···"

안녕하세요.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김서경, 김은성입니다. 반갑습니다.

Q. 소녀상 시작은?
정대협에서는 2011년 12월 14일이 수요집회 천 회 집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를 기념하기 위해서 할머님들의 20년간의 싸움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은 비석을 하나 세우고 싶다고 그 비석 디자인을 해줄 수 있냐고 그래서 '그 정도야 뭐 우리가 충분히 하죠'라고 해서 비석 디자인을 막 하고 있었습니다.

비석 디자인을 막 하는 와중에 일본에서 그걸 설치하면 안 된다고 하는 보도가 시작되고 그런 게 들린 거예요.

그래서 피해자 국가에 가해자 국가가, 전쟁 범죄 국가가 그렇게 강요를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정대협을 찾아가서 비석 갖고는 사죄받기도 힘들 것 같고 쟤네들 혼내기도 힘들 것 같으니까 우리 전공이 조각이니까 조각으로 합시다. '단 하루를 세워놔도 제대로 된 조각을 세웁시다'

그러니까 정대협에서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거 철거되면 그다음 날 또 갖고 오고, 그다음 철거되면 그다음 날 또 갖고 올 테니까 합시다' 그러니깐 좋아서 시작된 겁니다.

Q. 소녀상, 어떤 의미가 있나?
피해당했을 그 당시는 할머니가 아니라 소녀였던 거예요.

그 소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13~15세의 소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피해받았을 당시의 그 모습을 그냥 의자에 할머니 대신 앉혀만 놔도 그들이 반성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에서 앉아 있는 소녀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가족과 나라에서 억지로 끊김을 당한 그런 모습을 거칠게 잘려진 머리카락으로 표현하였고요. 그리고 꽉 쥔 주먹은 사실 이 주먹은 누구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우리 작가들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의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로 두 주먹을 만들게 된 거고.

그다음에 맨발인데 맨발의 뒤꿈치가 들린 모습입니다.

그 뒤꿈치가 들린 모습은 할머니들이 해방 이후에 살아서 돌아오셨지만,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사회에게 외면당하고 그런 모습을 맨발로 표현한 것입니다.

뒤꿈치가 들린,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 명예를 강조하기 위해서 뒤꿈치가 들린 맨발로 표현된 거고요.

어깨에 올려진 새가 있는데 새의 시작은 사실은 고향으로 가고 싶었던 그 소녀들의 그런 희망도 사실은 거기서부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지금 살아계신 분들을 연결해 주는 끈, 이런 역할을 이 새가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고요.

빈 의자는 돌아가신 할머님들이 앉아서 그 자리에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고요.

또 하나는 지나가는 많은 무수한 사람들이 그냥 왜 여기까지, 지금 30년이 넘도록 수요시위를 하는 거지 하면서 의문을 한번 해보는 자리, 그리고 그 역사를 내가 알게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런 숙제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림자가 있는데 그림자는 할머니예요. 그림자는 파편화된 검은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검은 돌로 만들어진 거는 할머니들이 받았던 고통을 하나하나 돌로 새긴 것이고요.

가운데는 하얀 나비가 있는데 그 나비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환생하셔서 저희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Q. 소녀상 테러 소식 들으면···
처음에는 너무나 진짜 슬프고 아파서 괴로웠었는데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의도와 내용을 보면서 '아! 평화의 소녀상이 인권을 위해서 많이 싸우고 있구나, 각 지역에서 그리고 소중하게 저렇게 지키고 있구나'

그리고 그 테러가 일어난 다음에는 또 많은 시민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또 보호해 주려고 많이 모이시고 이런 것들을 봤을 적에 그들이 하고자 하는 목적과 내용을 좀 살펴보니까 지금도 매주 수요집회하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그 방해를 하는 자들이 있는데, 마치 그냥 그 시간만 되면, 수요집회를 하는 시간만 되면 와서 자기 일처럼 하고 가더라고요, 방해를.

'아! 저들이 이걸 통해서 이익을 얻는구나' '그런 자들이 꼭 촬영하거나 SNS에 올려서 저렇게 해서 또 돈을 버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들에 대한 생계형 일일 수가 있구나, 그리고 그런 모습을 우리가 예전에 독립운동할 때 친일파를 했던 그런 자 중에서 그런 자들이 있었고, 독재에 종속되어서 일했던 그런 자들이 또 있었고, 아주 수없이 나타났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지금 그들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엄한 정권이 들어와서 더 심해진 걸 보면 그들의 돈벌이와 밥벌이가 되고 있구나, 그리고 저들이 저렇게 나올수록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이 보호해 주려고 국민들이 더 많이 모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같이 겸하면서, 그래도 우리 평화의 소녀상이 조각이긴 하지만 수고스럽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Q. 일본이 소녀상 철거 주장하는 이유는?
일본은 전 세계에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대한 상징물을 계속 세우고 뭔가 기록하는 뭔가를 계속 세워요.

본인들은 전쟁의 피해자인 거예요. 핵의 피해자고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알리고 있고 전범의 역사는 전혀 해외에서는 잘 몰라요,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그런데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면서 그 전범의 역사가 알려지고 또 그 나라의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불편해지는 거죠. 본인들의 역사를 지워내고 있었는데 이 소녀상으로 인해서 본인들의 역사가 드러나는 거예요.

그런데 교육받지 못했어요. 외국 사람도 일본에 대해서 잘 몰라요.

일본 젊은이들도 이러한 역사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걸 지우면, 할머님들 다 돌아가시면 이건 하얗게 지워질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그래서 이 소녀상이 엄청 불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소녀상을 세우지 못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세운 것도 없앨 것인가? 그 고민을 무척 하고 또 (일본) 대사나 영사가 계속 찾아가서 비문이라도 치워달라 이런 말을 계속하고 이런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화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레겐스부르크의 소녀상은 처음에 비문이 있었는데 그 비문을 저희가 비가 오는 바람에 붙이지 못하고 왔어요. 그러면서 비문이 사라지게 돼요. 지금 이탈리아도 마찬가지고 베를린도 마찬가지고 카셀대학교 (소녀상은) 벌써 철거당했고 필리핀도 철거당했습니다, 이틀 만에.

그런 식으로 계속 역사를 지우는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Q. 현 정부 들어서고 소녀상 훼손 더 심해지는 이유는?
수요 시위 현장은 극우들 탓에 장악당하고, 저희가 또 강제 노동자상도 만들었거든요? 그것도 철거하라는 그런 힘들이 세지고 있고.

이러한 역사 지우기를 예전에는 일본인들이 주장을 하면서 일본 언론이 하고 일본 어떤 단체들이 했는데 이제는 피해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걸 대신해 주고 있는 거예요.

독일에 가서 소녀상을 치우라는 그 4명의 그런 사람들이, 거기까지 값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가서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과 그리고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그런 시위를 하는 것들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거지, 그러니까 일본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 같은, 그리고 이 정부가 하는 것도 사실은 지금 하나하나가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극우들이 힘을 받고 그 극우들이 어디서 돈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돈으로 인해서 그런 것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서, 혐오와 폄훼로 시작한 윤석열 정권이 극우들의 시대를 맞이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사람들이 극우인지 아니면 매국노인지를 잘 헷갈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복장이 터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정말로 할머님들이 얼마나 억울하실까? 그리고 강제 노역을 당했던 많은 그 당시의 분들이 얼마나 억울하실지 생각하면 저희가 억울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그 당시에 나라를 살리고자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억울합니다, 괜히.

Q. 앞으로 작품 계획은?
꾸준히 해왔던 게 역사, 인권, 평화, 환경, 이런 작업을 쭉 해 왔었는데 그 작업이 계속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정권이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고 거기에 대해 이렇게 저항하고 그 정권을 거부하는 모습도 있기는 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우리가 좀 좋은 대안을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냐고 하는 그런 예술적 대안을 고민하는 중이거든요?

무도한 정권일수록 사실은 그 정권이 좀 짧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의 삶을, 이후의 사회를 제대로 계획하지 않으면 다시 이런 윤석열 정권 같은 무도한 정권이 나오니까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사회에 예술이 어떻게 이바지할 것이냐고 하는 대안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예술이라는 게 저한테는 그래요. 그런 역사와 시대와 사회와 그리고 미래의 어떤 꿈들을 연결해 주는, 그리고 우리 기억의 어떠한 고리를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약간 엄혹한 느낌이지만 그런데도 희망을 끌어내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꿀 수 있을지 그러한 상상을 하면서 작업을 할 것 같습니다.

내년에 전시를 기획하려고 하고 있는데 기억의 고리를 만드는 그런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Q. 작가에게 소녀상이란?
소녀상이란 되게 무거운 것 같아요. 일생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작업이었고 저의 꿈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꿈이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많은 것들이 걱정과 더불어서 상상이 돼서, 딱 소녀상이라 하면 그냥 무겁다, 그리고 평화.

저에게 있어서 '평화의 소녀상'은 나를 확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전의 모습은 사실은 창작 위주에 대한 생각을 주로 가졌었는데 이렇게 깊게 넓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확장돼 왔으니까, 저에게는 확장입니다.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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