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와 금오공대 통합 논의 '없던 일'로
경북대가 결국 금오공대와의 통합을 추진하지 않기로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지난 12월 5일 새벽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한 지 일주일만입니다.
경북대와 금오공대 통합 추진 논의와 관련해 경북대 홍원화 총장은 12월 11일 오전 대구M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금오공대와의 통합 추진은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애초부터 구체적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다가올 학령 인구 급감에 대해서는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된 뒤 앞으로도 금오공대와의 통합 추진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홍 총장은 "모두에 말씀드렸다. 금오공대와 통합 추진은 없다"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통합 무산에 대한 확답 요구 '학생 총궐기'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이 같은 입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경북대학교 총학생회는 12월 11일 정오 본관 앞에서 통합 무산에 대한 확답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및 학생 총궐기를 열었습니다.
겨울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많은 학생들이 플래카드와 현수막 등을 들고 총궐기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시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과잠'이 놓여 있던 본관 건물 계단에는 우의를 걸친 학생들이 빽빽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학생 의견 반영 없는 졸속 통합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시위에 참석한 학생들은 '학생 없는 학교 없다'라며 대학 본부를 규탄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촉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소원 총학생회장은 "경북대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짓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며 경북대의 역사를 함께 쓰고 나아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강조했습니다.
통합 논의가 기습적으로 재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라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총궐기의 마지막 순서인 행진을 통해 "학생 의견 반영 없는 모든 독선에 반대한다"라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경북대-금오공대 통합 사태 일단락?
홍원화 경북대 총장과 곽호상 금오공대 총장은 2023년 11월에 열린 전국 국·공립대 총장협의회에서 만나 통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학생들은 즉각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경북대 학생들이 통합에 반대한다며 나선 시위는 12월 5일부터 시작됐습니다.
학생들의 통합 반대는 필사적이었습니다.
본관 건물 계단에 학과 점퍼를 쌓아 놓으며 이른바 '과잠 시위'를 시작으로 '1인 시위' '재학증명서를 늘어놓는 시위' '근조화환 시위' 등 가용한 수단들이 총동원됐습니다.
이 같은 학생들의 반발 움직임은 SNS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통합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에는 12월 11일 0시 50분 기준 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강도가 셌던 학생들의 반발 여론에다 홍준표 대구시장까지 글로컬 사업 전반과 두 대학의 통합에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면서 학교 측은 통합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경북대 한 재학생은 취재진에 "상주대 통합 과정에서도 학교 측이 통합 추진을 안 한다고 했다가 기습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다"라며 학교 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북대-금오공대 통합 무산 사태가 남긴 것
최근 대학 통합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선 학령 인구 급감으로 인해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이른바 '대세론', 이런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들이 2023년 입학 정원 47만 명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40년 초에는 50% 이상의 대학이 신입생을 채울 수 없을 전망입니다.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수도권 대학이 훨씬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3년 유난히 '통합'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고 또 대학들이 통합 논의를 많이 하는 것은 글로컬 사업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비수도권 대학 30곳에 3조 원을 투자하는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통합 논의에 불을 지핀 겁니다.
2023년 글로컬 대학에 선정된 10곳 중 4곳이 국공립대 통합안을 제시한 곳입니다.
학교당 천억 원이 지원되는 교육부 지원 사업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꼽히니 학교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사실 대학 입장에서는 지원 금액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부분은 바로 '학교의 명예' 그러니까 상징성입니다.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지 않으면 마치 문제나 하자가 있는 대학인 것처럼 지역 사회에서 낙인찍히는 게 두렵다는 말들도 대학가에서는 나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통합을 추진하는 데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이 관건이라는 점은 이번 경북대, 금오공대 통합 추진 논의에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최대 관건인 셈이지요.
누구도 이렇게까지 거센 반발이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설픈 통합 논의와 추진은 오히려 학내 갈등과 불신만 초래한 셈입니다.
박상현 경북대 IT 대학 학생회장 "무책임하게 학생들에게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은 채 이러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설명과 논의의 장 없이 진행된다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통합 추진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경북대와 금오공대 통합 불발 사태는 앞으로 다른 지역의 통합 움직임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 '학교 간 통합이 필요하다' '학교 안의 내실을 다지는 게 우선이다'라는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성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투명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반발이 점차 확산하던 지난 12월 7일 경북대 홍원화 총장은 '경북대 구성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통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된다면, 대학 본부는 교수, 직원, 학생 등 대학 구성원들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함은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만시지탄' '왜 진작부터 이렇게 하지 않았느냐? 믿을 수 없다'라는 등의 싸늘한 반응이 학생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최근 며칠간 경북대 학생들이 보여준 항의와 집단행동들은 바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대학 간 통폐합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입니다.
그렇기에 대학 본부, 교수회, 그리고 학생들까지 모든 교내 구성원이 논의 시작 단계부터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경북대와 금오공대의 통합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제동이 걸린 만큼 다른 지역 대학의 통합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 '통합이 우선이냐', '내실을 다지는 게 우선이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학생들이 스스로 던진 이상, 글로컬 대학 선정을 앞두고 통합 추진에 따른 또 다른 진통은 불가피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