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경북 경산 출신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보드랍게'가 개봉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기존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선과 깊은 문제의식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손은민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현장음▶
"김순악, 김순옥, 왈패, 사다꼬, 위안부, 기생"
여든두 해를 18개의 이름으로 불리며 악착같이 살아야 했던 고 김순악 할머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면서 전쟁 같은 삶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를 증언과 기록으로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해방 이후 김순악의 삶 전체를 관통합니다.
해방 직후 유곽, 기지촌 장사를 하며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친 그녀의 삶은 남김없이 드러납니다.
◀고 김순악 할머니▶
"술만 먹으면 에헤 하고 기분이 사르르, 마취가 되어서 잠도 자고 그만한 병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위안부 피해 사실을 가슴에 묻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 김순악 할머니▶
"아이고 이런 거 내 속에만. 이런 이야기할 데가 없었는데. 나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저 숨어 사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던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 피해자, 활동가들과 만나면서 침묵을 깨고 세상으로 나옵니다.
자기 삶에 대해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 한 명이면 충분했습니다.
◀고 김순악 할머니▶
"사람을 이렇게 좀 만나서 이런 얘기 하는 데 통하는 데가 없으니까. 내 이야기해가지고 '아이고 그랬구나' '하이구, 애 묵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
이후 증언과 캠페인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한 김순악 할머니는 압화 공예로 꼭꼭 숨겨뒀던 보드라운 마음을 열고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고 김순악 할머니▶
"김순악이라요. 김순악 님. 영 안 죽고 살아서. 여러분들 덕택으로 이제 잘 나았어요."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브 영상, 여성 활동가들의 낭독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김순악의 아픔을 이 땅의 여성, 폭력 피해자까지 확대해 보듬어 주고 있습니다.
◀박문칠 영화 '보드랍게' 감독▶
"광복 이후 수십 년간 침묵할 수밖에 없던 그 시기에 집중해서 김순악 할머니가 어떻게 그 세월을 버텨 나갔는지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문제임을 말하고 싶었어요."
고 김순악 할머니의 전쟁 같은 삶을 아름다운 꽃처럼 피워낸 영화 '보드랍게'는 전국 30여 개 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고 김순악 할머니▶
"학교 책도 역사를 좀 남겨놓고 죽고 싶어요. 젊은 세대가 좀 알아주십사 하는…."
MBC 뉴스 손은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