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04년 전 4월 11일, 공화정 체제의 대한민국이 출범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주역 하면 우리 지역에선 역시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하지만 임시정부가 20년 넘게 건재할 수 있었던 건, 이른바 2세대 임정 인사들의 노력이 컸는데요.
경북 출신 인사들을 이도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104년 전, 4월 10일과 11일 중국 상해. 안동의 김동삼과 고령의 남형우 등 29명의 독립운동가는
이틀에 걸친 임시정부 첫 회의에서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하고 민주공화제로 운영할 것을 천명합니다.
세계 식민지 해방사에서 국가와 정부, 의회의 기반을 갖추고 독립운동을 한건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한준호 경북독립운동기념관 한준호 학예연구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에 있어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가장 대표적인 단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1세대가 출범시킨 임시정부 아래로, 만주와 중국 본토에 흩어진 독립운동가를 결집한 건 2세대 임정 인사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백하 김대락의 아들인 김형식 선생입니다.
월송 김형식은 아버지와 고모부인 이상룡이 세운 한인 이주민 자치기구를 '한족회'로 계승시키고 '군정부'로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이승만이 미국에 임시정부 통치를 위임하자며 국민대표회의를 연 1923년에도 월송은 임시정부를 지키자고 주장했습니다.
석주 이상룡의 아들, 이준형 선생은 남만주의 독립운동 기지였던 한족회와 군정부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았고
이상룡 선생의 조카인 이광민 선생은 큰아버지가 세운 신흥강습소를 졸업한 뒤 민족교육에 몸을 바쳤습니다.
김대락의 조카 김만식 선생도 친일 세력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다 일본 경찰에 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크고 작은 각자의 위치에서 임시정부를 지켜낸 경북의 인물들입니다.
◀강윤정 국립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아버지 세대의 뒤에서 여러 역할, 실무를 수행했던 이광민, 월송 김형식..이런 분들은 우리가 앞으로 좀 더 연구를 진행하고 기억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활약상이 채 밝혀지지 않은 임시정부 요원들이 더 많습니다.
◀김세훈(76) 월송 김형식 증손자▶
"연구하는 사람들도 논문을 쓴다고 하다가 몇 사람 보니 자료를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안타까운 건 그거죠. 자료가 거의 없고.."
지금의 민주공화정 체제를 갖기 위해 100년전 온갖 희생을 감수한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내는 건 여전히 남은 우리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MBC뉴스 이도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