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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후배들이 낭독한 2·28결의문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1인까지"


◀앵커▶
1960년 2월 28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운동, 2·28 민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전후 혼란의 시대, 부정부패한 독재정권을 정면 겨냥했던 2·28이 63주년을 맞았습니다.

당시 2·28에 참여한 대구의 8개 고등학교 후배는 63년 전 그날을 재현하며 그날의 감동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취재기자와 관련 소식 살펴보겠습니다.

조재한 기자, 자랑스러운 우리 지역의 역사입니다만, 널리,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지 않습니까?

◀기자▶
저도 이번에 취재하며 많은 부분을 알게 됐는데요.

취재하며 만난 시민들도 전혀 모르겠다고 하신 분도 있고 2·28이 일제 강점기 때 3·1운동과 관계된 것 아니냐고 하신 분도 있었는데요.

2·28은 1960년 그러니까, 해방되고 한국 전쟁이 끝난 뒤 상황입니다.

잘 아시는 사사오입 개헌을 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자유당 정권 말기인데요.

2·28에 이어 마산 3·15의거, 4·19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민주운동으로 인정받고 있고, 2018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앵커▶
그동안 기획 보도를 하며 몇 차례 소개도 했습니다만, 조금 더 알아보죠.

당시 시위에 나섰던 학생은 1,200명 정도 되는 거죠?



◀기자▶
요즘 거리 집회에 수만 명씩 모이기도 합니다만, 당시 학생 1,200명은 굉장히 큰 규모입니다.

2·28 이후에도 부산이나 대전 등 여러 곳에서 시위를 했는데, 대구만큼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조직적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2월 28일 63주년 기념식은 작은 공연처럼 진행됐는데요.

2·28 상황을 재현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됐습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이 시간에도 전해드렸습니다만, 2·28결의문 작성자가 누구인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요.

2·28 기념탑 석판에도 기록이 돼 있지 않고요.

이번에 기획 취재 과정에서 경북고 하청일 학생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해 드렸는데, 28일 기념식에서는 결의문 작성자로 경북고 하청일로 특정해서 진행했습니다.

63년 지난 결의문입니다만, 여전히 결기가 느껴졌는데요.

기념식에서 학생들이 읽은 결의문 마지막 한 구절 들어보겠습니다.

◀결의문 낭독▶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1인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련다."

◀앵커▶
2·2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는 건 대구·경북을 넘어 우리나라 전체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거겠죠?

◀기자▶
우리나라 근대사를 바꾼 역사적 사건이죠.

기념식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해서 기념사를 하기도 했는데요.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기념사▶
"2·28은 바로 대구·경북의 정신입니다. 그것은 바로 불의와 폭력에 굴하지 않으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의 가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기념식에 앞서 2·28 주역과 시위에 참여한 8개 학교 학생 대표 등은 두류공원 2·28 기념탑을 참배했습니다.

63주년을 맞은 2023년에는 2·28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린 영국 '더 타임즈'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기록한 기밀보고서까지 발굴·확인돼 특별전이 열리면서 2·28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는 대구문예회관에서 오는 3월 5일까지 열리니까 관심 있는 분들 한번 가보셔도 좋겠습니다.

조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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