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를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p.47
[김규종 MC]
이번에 펴내신 책의 첫 장에 이런 구절이 나오죠. 함께 꾸는 꿈의 힘을 믿습니다. 함께 가요. 이거 우리 국장님도 그렇고 굉장히들 좋아하던데 이렇게 좋은 글이 나왔는데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쓰시게 되셨는지요?
[임은정 검사]
제가 제 책을 읽으신 분들이랑 하니까 되게 좋은데요. 즐겁고 무겁기도 하지만. 제가 검사 게시판에 이명박 정부 때 법무부에 야심 차게 들어가서 거기서 본 것들이 너무 좀 저한테는 충격적이었고, 뒤늦게 안 게 좀 부끄럽지만, 저도 제가 너무 부끄러웠고 고민 고민하다가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제 딴에 궁리한 게 검사 게시판의 글 게시에요.
여기 이 검사 게시판에, 검사 게시판 너무 죽어 있으니까 여기에다가 좀 말을 던지면, 사람들이 말을 보태면 생각이 살아나고 의사소통이 되고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고, 예를 든다면 약간 순진했던 건데 "검찰 개혁 만세" 외치면 집집이, 다 사석에서는 검찰 선배들 욕하니까, 검사들이 한두 명씩 뛰어나와서 "만세 만세" 외치기 시작하면 다 만세를 부르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오다가 구박받아서 다시 들어가고 안 나오고 저한테 급기야 돌 던지고 이렇게 하면서, 그런데 이미 칼을 뽑았으면 저는 멈출 생각은 없으니까 저는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게 2012년이니까.
그렇다면 검찰 안에서 안 되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면 결국 바뀔 거잖아요? 그러면 좀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러면 사람들에게 창문을, 지금 검찰 공화국 성문 안에서 싸우다가 창문을 열고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와 주세요" 제 딴에는 SOS를 드렸습니다.
[김규종 MC]
초대장이 아니고 살려달라고?
[임은정 검사]
검찰이, 당신들도 죽어가고 있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죽어가고 있는 거거든요? 정의가 죽어가고 있는 거니까, 저를 살려달라는 건 아니고요. 그거 아니어도 저는 살 수는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법이 죽어가고 있어요. 여기 법을 살려주세요" 약간 그런 마음으로, 검찰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주권자가 국민이니까 검찰권을 맡기는 분들이 시민이고 국민이잖아요? 그분들한테 검찰을 알려주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근우 MC]
사실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을 하시지만 그 과정이 제가 흔히 생각을 하기로도 굉장히 지난했을 것 같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게 맞냐는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굉장히 많은 괴로움의 순간들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래서 이 책 제목을 이번에 계속 가보겠습니다, 이게 힘들 때마다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이런 얘기들을 봤거든요?
[임은정 검사]
그러니까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인생에서 제일 무서웠던 순간, 저한테는 결단의 순간은 2012년 12월에 문 걸어 잠그고 무죄 구형할 때였어요. 제가 최후 의견 진술에서도 썼지만, 징계 취소 소송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에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 끝에 매달려 작은 손을 놓는 것이 장부의 기상이로다, 이게 백범 김구 선생님을 움직이는 거였는데.
제가 무죄 구형할 때 솔직히 무섭잖아요? 무서워서 무죄 구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안 할 수 있잖아요? 해라, 그런데 안 할 거 같은데? 해야 한다고 저한테 저 스스로를 벼랑 끝에 몸을 던지는 마음으로 밀어붙였던 게 손을 놓아야 한다, 놓으라고 하면서 제가 무죄 구형을 한 거였거든요?
안 힘든 건 아니라서 주저앉고 싶고 돌아서고 싶고 이쯤이면 나 열심히 했다,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가야 한다, 한 발 떼라, 한 발 가자, 이런 마음으로 좀 계속 저한테 주문을 거는 거죠.
[김근우 MC]
거기서 한 발을 떼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임은정 검사]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워서 물러설 수가 없어요.
[김규종 MC]
그때 그 사건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청취자분들께 좀 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임은정 검사]
그러니까 2012년 과거사 재심 사건, 크게 알려진 게 두 가지 사건이 있는데요. 2012년 9월에 민청학련 관련돼서 박형규 목사님이라고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신 목사님으로 돌아가셨고요. 그분이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유신헌법이 조금 많이 심했잖아요? 그건 엄청난 악법이었으니까, 유신헌법이 만들어져서, 윤보선, 우리나라 예전에 대통령 하셨던 윤보선, 야당 정치인이셨던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께 유신헌법에 문제 있지 않냐고 좀 시국을 논의하시고, 그다음에 민청학련, 유신헌법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격려하고 격려 자금을 준 것을 대통령 긴급 조치 위반, 내란 선동 이런 걸로 해서 구속을 시켜서 징역 15년이 나왔던 게 박형규 목사님 사건인데요.
공범들 다 무죄 확정이 된 상황이었었는데 그게 재심 사건이 와서, 그게 저한테는 직을 건 사건이었었어요. 이 사건 당연히 무죄고, 공범들 다 무죄 확정됐고, 법리상 무죄고, 증거도 없는데 공안부 그때 당시 스타일상 무죄를 못 하게 하는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이 사건 나 무죄 못 받으면 직을 건다'고 결심을 하고 공안부 동기 검사랑 막 싸우고 결재하러 갔었는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었는데 그때는 은근히 결재가 잘 났어요.
그래서 무죄 구형은 결재를 받고 과거사 반성 논고는 위에서 모르는 상황에서, 알면 살려두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날 아침에 몰래 완성해서 법정에서 질러버렸는데 솔직히 이미 낙장불입이잖아요?
[김근우 MC]
이미 말을 한 거니까···
[임은정 검사]
말을 해 보자, 어쩔 거야, 그래서 과거사 반성 시원하게 했었는데, 그래도 저는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하튼 결과론적으로 그때 박형규 목사님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서 민주당 대표 회의인가 뭔가 거기서 "검찰도 과거를 반성했는데" 이런 말이 나오면서 알려지게 돼서 그때 과거사 반성 사실을, 무죄 구형은 괜찮다 치더라도, 결정 났으니까, 과거사 반성하겠다고 한 그때부터 공안부에 엄청 당했었고요.
그렇게 한 상황에서 윤길중 과거사 재심 사건이 다시 한번 터졌는데, 그거는 박정희 장군이 5.16쿠테타 이후에 야당 정치인들을 좀 구속하면서 정권을 잡으셔야 하니까, 그렇게 했을 때 무리하게 소급 입법 만들어서 구속했던 분에 대해서 또 재심 사건이 있었던 거예요.
그거 했을 때가 제가 좀 많이 고통스러웠던 게 뭐냐면 박형규 목사님 사건은 이미 공안부랑 전쟁을 하고 난 상황이어서 공안부도 저를 벼르고 저도 저대로 '아니, 왜 검사가 무죄를 무죄라고 했는데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냐. 내 후배가 더 이상 나처럼 힘들지 않게 반드시 저들의 버르장머리를 잡으리다' 이렇게 나름 각오를 다졌지만 그런 일이 저한테 없기를 바라잖아요. 안 부딪히면 조용히 살 수는 있는데, 결심은 하지만 없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이 평온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윤길중 사건 재심 개시 결정을 받고 '아,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검사로 죽자, 이런 생각이 들어서 2012년 12월 18일 첫 기일 때 공안부랑 붙고 부장검사한테 이의 제기권을 행사해서 "부장님, 지시 적법성과 정당성에 이의 있습니다. 검찰청법 7조 2항에 따라 이의 제기권을 행사합니다"라고 질러버린 상황이었고요.
그리고 12월 19일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되셨잖아요? 그랬더니 이제 검찰은 더 공안 분위기가 됐고 더군다나 박정희 대통령이 구속시킨 사람인데. 그래서 안에서 충돌하고 했을 때 그 주 금요일 제 의사가 강경한 걸 보고 부장이 "임 검사 빠져. 이 검사 자네가 들어가" 이렇게 해서 검사 교체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일요일 날 예배를 드리면서 고민하다가 '내가 죽자'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문 걸어 잠그고 무죄 구형을 결심을 했었고요. 처음에는 사직 인사를, 안에서 견딜 자신이 없어서, 죽일 거니까, 내 발로 나가서 밖에서 살자, 이런 생각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잖아요? 지를 때는 지르더라도.
그래서 무죄 구형을 하고 사직 인사를, 사직해야지 하다가 안에서 견디자는 생각이 좀 막판에 바뀌어서, 검사 게시판에 징계 청원 글 던지고 법원에 가서 문 걸어 잠그고 무죄 구형하고 전사했죠.
[김근우 MC]
사실 무죄 구형 자체가 앞서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마는 이미 무죄가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는데 일종의 무죄를, 그때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무죄를 구형하기보다는 의견을 내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했었는데 그걸 거스르고 무죄 구형을 하신 거잖아요? 이게 일종의 자존심 같은 건가요?
[임은정 검사]
아니요. 법적 의무의 이행이라고 해야 하는데요. 의견을 내지 않는 것 자체가 검사로서는 직무 유기예요. 형사소송법 302조. 그런데 거기에 결정적으로 일반인들에 눈속임이 있는데 검찰이 의견을 내지 않는 게 아니에요. 다음에 무죄 판결이 나잖아요? 그러면 유죄 판결을 해야 되는데 왜 무죄 판결을 하냐고 검찰이 항소하고 상고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국민들한테 직무를 유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숨기고 있는 건데, 예컨대 제가 윤길중 씨 그때 무죄 구형했을 때 저는 제 징계 청원 글이 이미 11시 예약 게시였기 때문에 검사 게시판에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있다? 대검에서 "미친 X 아냐?" 고함 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상황이잖아요?
나는 그때 정신이 없어서 과거사 반성이고 뭐고 할 수가 없었고 무죄 구형만으로도 제가 숨을 못 쉬고 있는 상황에서 "법률적으로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을 했을 때, 제가 숨을 못 쉬고 있는 상황이었었는데, 그때 변호사님이, 윤길중 변호인의 손녀가 재심 청구를 했던 사안이었는데, 이덕우 변호사님께서 그때 뭐라고 하냐면, 윤길중 씨의 공범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비서실장 하셨던 구익균 선생님이 무죄 확정이 되셨는데 그분이 나이가 정말 많잖아요, 도산 안창호 선생님 비서실장이었으면? 그분이 그래, 검찰에서 1심, 2심까지는, 1심 무죄 나니까 항소하는 것까지 이해했는데, 나이가 지금 100세가 넘으셨나? 그런 분을 갖다가 대법원에 상고하면 돌아가시면 사건이 다시 또 멈춰져 버려요.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때 검찰한테 아니, 나이가 있으시고 독립운동가신데, 항소심까지 참겠는데 대법원에 상고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하셨는데 상고를 했대요. 그런데 다행히 구익균 선생님은 무죄 보시고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큰일 날 뻔했던 거였는데···
[김근우 MC]
명예 회복을 하고···
[임은정 검사]
하고 돌아가신 거죠. 그래서 그분은 그때, 변호사님은 검찰에 이를 가셨대요. 제가 무죄 구형하고 보니까 "내가, 검사가 공익의 대변자임을 이제야 알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변호사 생활 20년 동안 무죄 구형 처음 보신다고. 그때 제가 막 떨고 있었는데 '아, 죽어도 좋다' 이런 보람이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