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살 돈 없어서 운동화 깔창 사용해요"
2016년 5월, SNS에 한 청소년의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사용한다는 저소득 가정의 중학생 이야기였습니다.
이 사연이 알려진 뒤 신발 깔창이나 두루마리 휴지를 대체품으로 사용하거나 생리 기간이면 학교에 가지 않고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다는 제보도 속출하면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이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그동안 쉬쉬하던 월경이나 생리라는 단어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생리나 월경을 '그날'이나 '마법'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마디로 눈에 보이지 않게, 비가시화시키고 있었던 거죠. 실제 학교 성교육에서 보면 남학생들의 경우 생리혈이 파란색이라거나 소변처럼 조절할 수 있으니 집에 가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결국 가시화시키지 않은 것이 왜곡된 인식까지 가져오게 된 것이죠."
생리용품 지원 예산 매년 늘고 있지만···
이 사건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부랴부랴 생리대 지원사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위해 여성가족부에서 생리용품을 직접 지원했는데 낙인효과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나오자 2019년부터 생리대 바우처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8년 31억 4,400만 원이던 정부의 생리대 지원 예산은 일 년 만에 67억 9,7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2021년에는 71억 8,200만 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긴 합니다.
매년 5백 원씩 올랐지만···1인당 1만 2천 원 지원
이 금액을 1인당 예산으로 따져보면 얼마 정도 될까요? 2019년 1만 5백 원, 2020년 1만 1천 원, 2021년 1만 1천 5백 원, 2022년 1만 2천 원으로 매년 5백 원 씩 오르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과 비교해 봐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실제 여성 청소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먼저 저소득층 외에 보편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고요. 또 매달 1만 2천 원이라는 금액은 매우 부족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생리 양이 많고 기간도 길어서 전체 여성의 평균값을 적용하는 것은 오류이고요, 요즘 청소년들은 이부자리에 실수가 적은 입는 형태의 오버나이트 사용을 선호하는데 이 금액으로는 구매하기 어렵습니다."
1만 2천 원, '값싼 생리대' 사려 해도 70% 수준에 불과
1만 2천 원으로 생리대를 어느 정도 살 수 있을까요? 유통업체 3곳의 판매량 탑10을 기준으로 계산해 봤더니 한 달 평균값이 1만 7천 원, 개당 406원으로 나왔습니다. 판매량 탑10에 들었다는 이야기는 값싼 제품 위주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 1만 7천 원이라는 돈도 평균값, 결국 최소한의 금액이라는 겁니다.
최근 나온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중형 기준 1개당 A사 제품이 525원, B사 제품은 658원인데 이런 건 다 빼고 계산한 거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지금의 지원액인 1만 2천 원은 평균값이 1만 7천 원에도 70%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생리 빈곤으로 학습권 침해"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월경'이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생리 빈곤, 월경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월경하는 동안 생리용품을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생리 빈곤'이라는 개념은 2017년 영국에서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열일곱 살 소녀인 아미카 조지(Amika George)는 신문을 읽다가 생리대를 사지 못해서 결석하는 여학생이 13만 7천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해시태그 #freeperiods를 통해 생리 빈곤으로 누구나 누려야 할 학습권이 침해받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주현 매일신문 기자 "그녀가 한 말이 있습니다. "생리 빈곤은 여성의 어린 시절을 빼앗고 있습니다. 생리대가 없어서 결석하면 교육적으로 뒤처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고립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생리는 생존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고는 생리대에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생리대를 지급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코로나 19로 더 심해진 생리 빈곤 문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생리 빈곤 문제가 떠올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에서 잊혔습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오히려 코로나 19 이후에 여성 청소년들의 생리 빈곤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전까지는 학교에 가면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등교를 계속하지 않는 바람에 더 심각해진 겁니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코로나 19 상황에서 놓친 다양한 복지 문제에 신경 써야 하고 특히 생리 빈곤 문제는 다시 정비해야 합니다."
여성 청소년 74% "생리대 개수 줄이거나 더 길게 사용"
학교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못 받는 문제만 있었을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1년 전보다 가구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32.1%, 가구 부채가 늘었다는 응답은 26.2%입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돈은 덜 벌고 빚은 더 많아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활용품이라고 할 수 있는 생리대는 적게 쓰거나 더 값싼 걸 사용하는 여성 청소년도 늘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시 청소년 월경 용품 보편 지급 운동본부'에 따르면 월경 용품 구입 비용 부담으로 사용 개수를 줄이기 위해 생리대 교체 시간을 넘겨서 사용했다는 답변이 74%, 휴지나 수건 등으로 대체했다는 응답도 12%나 됐습니다.
생리 빈곤이 더 이상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생리 빈곤이 모두가 겪는 일일 수 있어요.
생리대가 비싸니까 보통 2~3시간마다 교체를 해야 하는데, 양이 많은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지키다가도 뒤로 갈수록, 생리량이 줄면 5~6시간마다 갈 때도 있고··· 이런 건 여성이라면 다들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깔창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이렇게 생리대의 적정 사용시한을 넘겨서 오래 쓰거나 휴지나 수건 등으로 대체해서 사용하는 것도 생리 빈곤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생리 빈곤을 겪는 여성 청소년에게는 생리 기간인 5~7일이 너무너무 더디게 가는 시간입니다. 그러고는 또 바로 다음 달 걱정을 해야 하죠. 이런 것들이 여성 청소년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한 번 있는 일이 아니라 늘 없는 빈곤의 상황은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모든 것을 친구들과 나누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숨겨야 하는 일이죠. 생리 빈곤은 여성 청소년의 정서 발달과 교우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들은 월경 때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거기다 호르몬 변화로 월경 전 증후군을 겪는 여성도 많은데요, 가임기 여성의 75% 정도가 월경 전 증후군을 겪고, 이 가운데 5~10%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생리 빈곤으로 인한 고통까지 겪게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배주현 매일신문 기자 "이렇게 생리 빈곤을 겪는 학생들의 경우는 생리대가 부족해서 혹은 없어서 제때 갈지 못할까 걱정하면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어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부담이 클 것 같아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거죠"
10세 이하 초경 시작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여성 한 명은 평생 약 5백 번, 약 2천일 간 생리를 합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리는 한 달에 한 번씩 5일~7일간 하고 양은 30~50mL 정도입니다.
2010년 보건교육 포럼이 조사한 평균 초경 나이는 11.98세로 나왔고 10세 이하에 초경을 시작하는 경우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최근에는 초경의 나이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리 빈곤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운 저연령의 여성 청소년들이 늘어난다고 봤을 때 생리 빈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대구는 '생리대 보편 지원 조례' 만들었지만 추가된 대상은 '학교 밖 청소년'이 전부···부산은 조례조차 없어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한 달에 1만 2천 원 바우처를 지급하는 중앙정부와 별개로 지방정부는 생리 빈곤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먼저 대구시를 살펴볼까요?
생리대를 보편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조례가 2020년 10월 대구시의회 발의로 제정됐습니다. 대구시는 이후 학교 밖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생리대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저소득층이 아닌 여성 청소년은 188명. 기존 여성가족부와 매칭 사업으로 진행하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한부모자녀에다가 이들 188명을 추가 지원하는 거죠.
부산의 경우는 생리대 보편 지원을 추진할 수 있는 관련 조례조차 아직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상황은 어떨까요? 여성 청소년 월경 용품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곳은 현재 서울, 경기도, 대구, 울산, 인천, 광주가 있습니다.
저소득층, 학교 밖 청소년에게만 지원하는 대구와 달리 경기도는 소득과 상관없이 보편 지급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 전국 광역 지자체 중 최초로 도와 14개 시군이 생리용품 보편 지원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2022년에는 시·군 4곳이 추가로 동참했습니다.
광주와 인천은 예산 부족으로 고등학교부터 보편 지급을 시작했고 단계별 확대를 검토 중인데요. 서울과 대구, 울산의 경우는 조례는 있지만 아직 보편 지급을 시행하지 않고 있고 부산은 조례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대구의 2022년 여성 청소년 생리대 예산은 4억 원, 부산은 5억 원 정도입니다. 대구의 전체 예산 10조, 부산시 15조 중 대구는 0.004%, 부산은 0.003% 수준에 불과합니다.
경기도는 266억 원, 광주는 28억 원, 인천은 7억 8천만 원 정도를 쓰고 있습니다.
울산의 경우는 학교에 무상 생리대를 비치하는 사업에 교육청 부담으로 7억 8천만 원을 배정했고, 서울은 도서관과 복지관 등 공공기관에 공공 생리대 비치 지원사업에 2억 4천만 원을 배정했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렇게 보면 생리대 지원 예산이 266억 원부터 2억여 원까지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입니다. 이것은 결국 지자체의 의지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조례를 만들고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예산을 핑계로만 한다는 것은 시가 생리대 보편 지원을 할 의지가 없다고 봐야겠죠."
전 세계로 확산하는 생리대 보편 지급
외국은 어떨까요? 역시 생리 빈곤 문제를 겪는 일본의 경우 2021년 생리용품 무상 지급 예산으로 141억여 원을 투입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지원 정책이 다른데 뉴욕의 경우 2016년부터 뉴욕 내 8백여 개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무료 탐폰 자판기를 설치했습니다. 교도소나 임시 쉼터 거주자도 요구하면 언제든 월경 용품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2018년부터 중·고·대학생에게 무료로 생리용품을 제공하고 있고 2020년 11월에는 세계 최초로 생리용품 무상 제공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영국 역시 2019년 9월부터 모든 초중등학교에 친환경 생리대를 포함한 생리용품을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가난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기준으로 증명받고 저소득층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이런 상황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생리대 지원은 필수 생활용품을 지급한다는 차원의 보편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출생 시대에 '건강한 생리' 보장 안 된다면?
저출생이 큰 문제라고 합니다. 인구가 소멸하는 도시가 한둘이 아니라는 경고도 나옵니다. 하지만 월경권 문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월경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출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월경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