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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같은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난 3월 18일, 경상북도 경산시에 사는 18살 고등학생 정유엽군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로 의심받고,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군 사망 당시에는 ‘기저질환 없는 만 17세 고등학생이 코로나19 또는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주로 기저질환자·고연령층에게 치명적이라 알려져 있어, 정군의 사망 소식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은 급성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 의료진은 사망 직전까지 코로나19 감염으로 의심했으나, 결국 사후 음성판정을 받았습니다.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아들을 적시에 입원조차 시키지 못하고, 곁에서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부모에게 한없이 절망적인 사실이었습니다. 동시에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일반 중환자에 대한 의료공백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앞서 2월 22일에도 청도 대남병원에 입원했던 일반 환자가 병원 7곳에서 입원을 거절당하고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병원 7곳서 수용 거절…일반환자, 구급차 떠돌다가 숨져[링크], JTBC)


故 정유엽군 아버지 정성재씨

"멀쩡한 사람을 위한 의료체계는 하나도 준비해놓지 않고, 코로나를 위한 지침만 내리면 어떻게 합니까. 열이 난다는 것 하나 때문에 아무 처방도 못 받았잖아요."




코로나여부에 치중..제때 치료할 기회 놓쳐[링크], 3월 19일 대구MBC 뉴스

그러나 정군의 어머니 이지연씨와 아버지 정성재씨는 아이의 죽음을 절망 속에만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유엽이가 제때 치료받지 못던 건 단순히 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또 누군가가 유엽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지 모릅니다.

이지연씨와 정성재씨는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추진하고, 정부에 의료공백 대책과 법안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병원 의료행위의 적법성 규명뿐만 아니라 △감염병 발생 시 감염병 환자와 일반 환자들의 치료가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및 시군별 컨트롤타워 및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 △전국에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이 그 내용입니다. 즉 '정유엽법' 제정과 재발 방지를 촉구한 것입니다.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4월 11일 경산시의회의 탄원서 서명을 요청하기 위해 경산시의회 의장을 찾아간 자리에서, 정성재씨는 강수명 의장에게 황당한 얘기를 듣습니다. “탄원서 내용에 경산중앙병원을 언급하지 않으면 돕겠다(서명하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故 정유엽군 아버지 정성재씨
"정말 참담했습니다. (...) 의장은 탄원서에서 경산중앙병원을 언급하지 않으면 (입장을) 선회하여 돕겠다고 했고, 이를 거부하니까 흥분한 목소리로, ‘경산중앙병원이 아들에 대한 기사 때문에 환자 수가 줄었다. 중앙병원이 진료소를 맡지 않았다면 어떡할 뻔 했냐’고 되묻었고요. ‘지역구 의원조차도 나서지 않는데 왜 나서냐’, 이런 식으로 상처를 줬어요. 부의장도 ‘오해에서 비롯된 일 가지고 왜 그러느냐’ 우리 부부를 비난하고 다녔고요."

경산중앙병원은 정군이 고열 증세를 보이자 최초 방문한 곳입니다. 호흡기 환자와 비호흡기 환자를 나눠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춘 국가 지정 국민안심병원이기도 합니다. 어머니 이지연씨에 따르면, 당시 해당 병원은 정군을 코로나19 환자로 의심해, 체온 확인 후 항생제, 해열제를 주고 날이 밝으면 선별진료소로 가서 검사해보라며 정군 가족을 돌려보냈습니다. 다음날 해당 병원의 선별진료소를 다시 찾았으나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폐 염증이 보인다고 얘기하고 좀 더 강한 약을 처방해줬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정군의 상태가 악화돼, 다시 병원을 방문하니 병원장은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습니다.

故 정유엽군 어머니 이지연씨
"왜 (선별진료소에 찾아간) 오전에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하니까 의사는 고개만 떨구고 있었어요. 애기 아빠도 큰 병원으로 가자고 해서 간 곳이 영남대병원이었어요. 그 와중에는 엽이는 호흡곤란, 엽이 아빠는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그 얘기 듣고 운전조차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경산중앙병원에) 응급차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어요. 본인 차로 직접 가라고 얘기했습니다. 50분가량 숨도 못 쉬는 엽이를 차량으로 이동해서..."



17살 소년, 故 정 모군 부모님 인터뷰 | "엄마 참을 수 있어. 괜찮아. 엄마 참을 수 있어" | "해줄 수 있는 건 물수건 밖에 없잖아요" | "구급차를 왜 못내줍니까"

故 정유엽군 부모님 인터뷰 영상[링크], 3월 20일 대구MBC뉴스 유튜브 채널


부부에게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경산중앙병원에서 우리(정군 가족)에게 코로나19 검사하라고 권유했는데, 우리가 거부했다”라는 말입니다. 이를 사유로 경산시의회 의원 15명 중 한 명을 제외한 미래통합당 의원 8명이 유족이 요청한 탄원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정성재씨 부부는 시의회의 협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지난 5월 15일 경산시의회 제218회 본희의에서 남광락 경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다음과 같이 5분 자유발언을 했습니다.

“만약 정유엽군이 병원을 찾았을 때 바로 검체 검사를 받고 코로나19가 아니라 좀 더 빨리 급성폐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혹은 정말 경산의 의료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면 관내 혹은 인근 타 시군에서 더 늦게까지 운영되는 선별진료소로 안내가 되는 지침이 마련되어 있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요. (...) 학생의 안타까운 사망 이후 경산시는 무엇을 했습니까. 무엇을 반성했고 어떤 조치들을 취했습니까.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대책은 있습니까.”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던 2월을 지나 대구·경북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 병원 응급실이 폐쇄되고, 시민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 한번 찾아가기 힘들었던 때를, 음압병상이 부족해 수많은 환자들이 대기해야 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지연씨도 마찬가지입니다.

故 정유엽군 어머니 이지연씨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읽는다고 했습니다. 저희 유엽이의 사건은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다함께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동참해주셨으면 합니다.”



부부는 그 절망스러운 순간이 반복되지 않기를, 또 다른 누군가가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직접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부부는 지난 21일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사건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와 함께,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직접 탄원서를 보내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서현 팩트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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