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인문학
4월 26일 영화 <자산어보>

1) 이준익 감독은 한국 관객들이 믿고 보는 영화를 연출하는 대표적인 감독인데, 그의 대표작 몇 가지만?!
역사와 연관된 영화를 많이 연출 <황산벌>, <평양성>, <왕의 남자>, <사도> 같은 작품.
역사의식도 강렬한 감독 <평양성>에서 당나라 이세민을 나무라는 연개소문
그 외에도 <님은 먼 곳에>, <라디오 스타>, <동주> 같은 작품으로 친숙한 감독
2) <자산어보>는 흑백영화라는 점에서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고 있는데, 흑백영화의 강점이 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천연색 감각을 전혀 다르게 자극 -> 단순, 정직, 단아, 깊이, 정갈
기억하기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나,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 같은 흑백영화의 설득력과 파괴력은 강력하다. 마치 화장기를 싹 지운 인간의 생얼굴이 보여주는 솔직함, 당당함이랄까, 그런 것이 감촉.
3) <자산어보>가 상상력에 의지한 작품이라고 하던데, 어떤 상상력을 말하는 것인지?!
손암 정약전 선생이 쓴 <자산어보> 서문에 ‘장창대(張昌大) 德順’이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창대는 자(字)이고, 이름이 덕순인데, 영화에서는 ‘창대’라 불린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인간 창대. 하지만 독서가 부족하여 공부가 넓지 못하다. 그러나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에는 정통 -> 그와 함께 흑산도에 사는 물고기의 족보를 연구하여 서책 이름이 <자산어보>.
<자산어보>에 나오는 한 단락을 참조하여 두 시간 분량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상상력!)
<소학>과 <대학>, <논어>, <장자>, <불경>까지 언급되는 걸 보면 동양고전에 일가견!
4) 흑산도의 물고기 (어류) 연구서인데, 왜 <흑산어보>가 아니고 <자산어보>인가?!
<자산어보> 첫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산이란 흑산이다. 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란 이름이 컴컴하고 두려워 가족들이 편지에서 ‘자산’이라 하였다. (다산 정약용 역시 컴컴하고 두려운 이름 흑산 대신 자산으로 고쳐 썼다).” 일부에서는 ‘玄山’을 주장하기도 한다. <천자문>의 첫 번째 구절 ‘천지현황’에서 비롯한 듯하다. ‘현주(玄酒)’라는 어휘도 있다.
5) <자산어보>를 보고 난 소감은 무엇이고, <자산어보>가 상대적으로 관객 동원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요인은 또 무엇인가?!
<자산어보>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 정약전과 창대의 갈등과 화해, 협업과 대립 구도가 잘 짜인 수작이다. 126분의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식인 약전과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창대가 교환하는 지식의 내용도 흥미롭다. 벼슬살이에 필요한 사서삼경은 물론 고금동서의 경서를 두루 섭렵한 약전. 자연과 어물에 정통한 창대. 대표적인 명문 반가의 약전과 한미한 집안 출신의 창대가 얽혀져 끓여내는 구수한 섞어찌개가 <자산어보>다.
객석이 썰렁한 까닭은 <명량>이나 <국제상사> 같은 국뽕 영화도 아니고, 지극한 갈등을 내재한 스릴러나 드라마도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와중에 천연색 영화가 아니라, 흑백영화라는 점도 낯설게 다가온 듯. 관객에게 익숙한 영화문법이 아니다. 코로나의 영향도 적지 않다.
6) <자산어보>에도 ‘옥에 티’가 있다고들 하던데, 한 가지만 말씀하신다면?!
영화에서는 다산의 해배(解配)가 먼저 이뤄지고, 손암이 흑산도에서 우이도로 이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역사는 달리 기록한다. 다산의 해배는 1818년의 일이고, 손암은 1816년에 세상을 떠난다. 굳이 시간적인 역사 왜곡이 영화에 꼭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장면에서 <황산벌>의 ‘거시기’가 시멘트 포장도로를 달려가는 장면이 겹친다.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