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인문학
12월 16일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

* <곽재구의 포구 기행>에서 돌이킬 것 몇 가지
1) 곽재구 시인은 시를 아주 잘 쓰는 시인이지만, 그중에서도 <사평역에서>가 일품이라고 들었다. <사평역에서> 낭송과 함께 책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2) 정거장의 밤 풍경과 가난한 민중의 고단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하지만 <포구 기행>으로 넘어가야 한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읽은 소설가 임철우는 시를 모티프 삼아 소설 <사평역>을
창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말 아름답고 따사로우며 정감 넘치는 시다.
<포구 기행>에서 나는 먼저 일상을 탈출하는 최선의 방도는 여행임을 강조하고 싶다.
판박이같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잠시라도 작별하는 방도는 여행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 -> 곽재구 시인은 동-서-남해의 바다와 포구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기행문과 시를 동봉하는 <포구 기행>이라는 서책을 출간 -> 거기 머무르지 않고
시인이 만난 사람들과 포구와 바다와 만을 천연색 사진에 빼곡하게 담아내 현장감 백배
3) <포구 기행>의 서문에 해당하는 ‘섬에서 보낸 엽서’의 몇 줄을 생각하면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당신이 바닷속 깊은 어딘가에서 아주 근사한 시를 쓰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지요. 아주 깊은 바다 어딘가에 당신이 시를 써서 읽어주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극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온몸으로 자신을 느끼는 시간, 축제, 꿈, 기억, 방랑... 당신이 일러준 삶의 비밀 하나로 나뭇잎 같은 내 인생이 가끔은 파도처럼 술렁이는 꿈을 지니기도 했지요.” (8쪽)
깊은 바다 어딘가에서 당신이 맑은 영혼을 드러내는 일, 즉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는, 참으로 시인다운 발상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그리고 시인의 아름다운 영혼이 창출해낸 결과를 낭송하는 그리 크지 않은 극장이 있고, 거기서 뭇 생명이 각자의 내면을 전신(全身)으로 향유(享有)하는 시간을 생각해내는 시인의 상상력이 우리를 따뜻하게 한다.
<포구 기행>은 시처럼 전해지는 글로 가득한 서책
-> 포구를 시와 함께 시인의 안내를 받으며 느릿느릿 산보하는 것 같은 인상
4) 곽재구 시인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안쓰러운 시선을 던진다면서?! 설명해달라!
전북 고창의 포구 구시포의 본래 이름은 ‘새나리불뜽’
그 아름다운 이름이 일제시대에 구시포로 바뀜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포구 ‘새나리불뜽’의 의미 설명
“새나리의 ‘나리’는 갯가를 의미하는 우리말이요, ‘불뜽’은 아마 ‘불뜸’에서 전이된 말일 것이다. ‘뜸’은 우리말에서 자연부락을 뜻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구시포의 옛 이름은 ‘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이 된다.” (200쪽)
‘새나리불뜽’이 일제의 강압 때문에 구시포로 바뀌고, 그곳의 대표적인 명물
해당화마저 당뇨병에 특효란 소문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림
모든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훈훈한 만가(挽歌)를 흉중에 품고 오늘도 길을 걷는 시인
5) 어청도에 사는 노인이 필요 이상의 노동을 거부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간다고 노래?!
어청도는 군산에서 배편으로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섬/ 2015년 인구 391명
“노인은 고기를 잡지 않았다. 달빛들이 스러질 무렵이면 노인은 그물을 걷고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온할 수 없다. 하루의 노동이 자신의 하루 생계의 몫을 넘어서고, 더더욱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몫을 침범하는 경우라면 그 노동은 신성함을 잃는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의 노동은 무능력한 것이었다.” (53쪽)
만월의 밤바다에서 푸른색의 그물을 던지고 푸른빛의 고기들을 잡는 듯 놓아주는 것
같은 노인의 노동에서 곽재구는 하루의 소용을 깨달은 자의 진실한 면모를 독서
시인은 일용할 양식에 충분히 만족하고 넘치는 노동으로 자신의 육신과 타인과
고기를 괴롭히지 아니하는 풍요로운 자의 무능력이 숨 쉬는 어청도를 그려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