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3월 7일 영화 <화양연화>


* 왕가위의 <화양연화>에서 생각할 몇 가지


1) <화양연화>는 2000년에 개봉된 영환데, 이번에 다시 개봉되었다면서?! 무슨 이유라도?!

개봉 20주년을 맞아 왕 감독이 2020년 재개봉 시도 (이른바 감독의 리마스터링 영화)

상영시간이 2분 늘었는데, 전작과 큰 차이는 모르겠다.

20년 전 영화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

다만 그때나 이번이나 역시 왕가위 영화는 뭔가 몹시 색다르다는 감상

한국 관객들에게 왕가위는 1990년 <아비정전>으로 기억

1995년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

2000년 <화양연화>, 2004년 <2046>, 2008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2012년 <일대종사> 영춘권의 전설 엽문에 관한 영화를 끝으로 사실상 팔짱


2) <화양연화>가 다루는 문제가 한국인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불륜이라면서?!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천부인과 차우인데, 천부인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가 연인관계

그것을 알려주는 단서: 두 사람의 공동 부재 + 차우의 넥타이와 천부인 남편 넥타이가,

천부인의 가방과 차우 아내 가방이 똑같음 (귀국 선물로 사준 것!)

천부인과 차우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홍콩의 허름한 공동주택에 이사

남편과 아내의 기나긴 부재와 냉담함 속에서 그들 관계를 눈치채고 서로에게 이끌림

이런 설정은 사실 상당히 낯설고 어색하지만, 패자들의 동병상련?!

그들은 그들의 남편과 아내처럼 같은 길을 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몹시 고통


3) 영화의 배경이 홍콩인데 시간은 어떻게 설정돼 있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1962년 홍콩에서 사건이 시작되고, 1963년 싱가포르, 1966년 홍콩 그리고 앙코르 와트

홍콩 반환을 35년 앞둔 시점에 영화가 시작되고, 천부인은 무역회사 비서, 차우는 신문사

기자 겸 무협작가로 삶을 영위 ->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의 내면이 부단히

흔들리고, 영화는 마이클 갈라소와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놀랍고도 섬세한 음악이 관객의

내면을 깊숙하게 찌름! (영화 주제곡을 들으면 아, 역시, 하는 감탄사가 절로!)

자기네 남편과 아내처럼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작별하는 시간이 1963년

차우가 친구의 권유로 홍콩을 벗어나 싱가포르로 근무지를 이동

-> 거기까지 찾아오는 천부인 그러나 재회는 하지 않는 천부인

1966년 우연히 예전 공동주택을 찾는 천부인과 차우 – 영원히 엇갈리는 두 사람

차우가 왔을 때 사실 그녀는 어린 아들과 집 안에 있었다! (얄미운 감독)


4) 앙코르 와트가 나온다고 했는데, <화양연화>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장소 아닌가?!

그런 점에 왕가위 감독의 매력 – 뭔가 객석의 허점을 푹 찌르는 감각이랄까!

차우가 천부인에게 옛날 사람들이 비밀을 간직하는 법을 말함

-> 나무구멍에 대고 혼잣말로 비밀을 토로하고 구멍을 막음

->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슬픔과 고통을 안고 차우가 앙코르 와트로!

오래되고 거대한 사원의 돌 벽면에 나 있는 구멍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그것을 막음

-> 그것은 분명 천부인과 함께했던 기막힌 한 시절의 사랑에 관한 고백이었을 것


5)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왕국인 우리나라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화양연화>에서 매력적인 점 몇 가지를 들자면, 우선 최초 불륜 당사자들의 얼굴이 없다.

그들은 뒷모습이나 목소리로만 존재를 드러낼 뿐, 객석에서 확인 불가

-> 그들로 인해 괴로운 두 남녀 천부인과 차우의 내면풍경을 추적하는 데 주력

-> 일반적인 불륜 혹은 막장드라마와 결이 아주 엄청 다르다!

천부인 (장만옥) 의상이 정말로 ‘화양연화’ 그 자체로 느껴질 정도로 화사하다!

->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고 다채롭게 등장시킴

-> 천부인이 매력적인 성격과 절제된 언어와 행동과 결합해 치명적인 매력

당대 최소의 배우인 양조위와 장만옥의 연기가 그야말로 압권 (비비시 선전 세계 2위)

불륜 영화라기보다 실패한 사랑에 관한 영화?! 한국의 숱한 드라마와 동일시하면 곤란

일반적인 사랑과 결이 다른 색깔과 향기와 무게를 지닌 수작이 <화양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