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인문학
12월 9일 책 <사피엔스>
인류는 정녕 신이 되고자 하는가?!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6.
550년 동안 이어진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의 제국을 세운 진시황. 제국의 기틀을 다지면서 그는 불로장생을 열망하며 불로초를 구하려 한다. 지난 2002년 호남성(湖南省)에서 발견된 목독(木牘)에는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황제의 명령과 그에 대한 지방 관리들의 답신이 담겨 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시황은 49세의 나이에 절명한다.
불로장생을 넘어 영생불사를 추구한 인물도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 길가메시는 친구인 엔키두의 허망한 죽음에 인생무상을 느낀다.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노인 우트나피쉬팀의 도움으로 불사(不死)의 약초를 구한다. 우르크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약초를 뱀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담긴 이야기다.
장구한 세월 인간은 불로장생과 영생불사를 추구해왔다. 그것이 한낱 신기루 같은 꿈일지라도 인간의 염원은 멈추는 법 없이 연면부절하게 이어졌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21세기 초에 인류의 그런 열망은 그저 꿈이 아니라, 대담하고도 실현가능한 기획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출간이후 지금까지 많은 논란과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인류가 경험한 세 가지 혁명, 즉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에 의지하여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도달하고 있는 신기원을 추적한다. 인류가 아직까지 도달한 적이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탐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멸(不滅)을 향한 인간의 중단 없는 탐구다.
인지혁명과 호모 사피엔스
6백만 년 전 침팬지와 갈라선 인간은 40만 년 전에야 이르러 비로소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다.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한 인간은 10만 년 전에 먹이사슬 정점(頂點)에 오른다. 대략 7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를 벗어나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라시아 전체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발생한 인류의 첫 번째 혁명이 인지혁명이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호모 사피엔스 뇌의 내부배선(內部配線)을 바꾼 것이다. 그 덕에 호모 사피엔스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44쪽)
인지혁명을 경험한 사피엔스로 인해 지구상에 존재했던 호모 데니소바와 네안데르탈인 및 호미니드가 절멸(絶滅)하기에 이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의 유일한 인간종으로 남아있다. 사피엔스의 세계정복은 유연하고 수다 떠는 용도의 언어라고 하라리는 확언한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이방인(異邦人)과도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7만 년 전 이주를 시작한 사피엔스는 석기시대 기술만으로 4만 5천 년 호주에 도달한다. 시베리아 북동부와 알래스카 북서부가 연결돼있던 기원전 14,000년 전에 인류는 아메리카에 도달한다. 그로부터 4천년 만에 사피엔스는 아메리카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 도착한다. 문제는 사피엔스 이주물결로 지구의 대형동물 절반가량이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적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인간이 가져온 멸종의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것은 인간과 가축뿐이다.
역사상 최대의 사기 농업혁명
인간은 1만 년 전부터 제한적인 동물과 식물을 선택하여 길들이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수렵과 채취로 연명(延命)하는 삶 대신 작물재배와 가축사육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농업이행 시기와 장소는 기원전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해 동부지역이었다. 농업은 지리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느린 속도로 시작되었다. 밀 재배와 염소의 가축화는 기원전 9000년 무렵이었다. 완두콩은 기원전 8000년, 올리브는 기원전 5000년, 포도는 기원전 3500년 재배가 시작되었다. 말은 기원전 4000년부터 사육했다.” (121쪽)
오늘날 인간이 재배하는 대표작물은 쌀과 밀, 보리와 옥수수, 수수 등이다. 인류가 기르는 대표적인 가축은 육축(六畜)이라 하여 소, 돼지, 말, 양, 개, 닭을 가리킨다. 작물재배와 가축사육으로 식량은 증가했지만, 그것이 더 나은 식사와 여유시간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가뭄이나 홍수, 메뚜기나 곰팡이 등으로 인한 불안정한 수확이 원인이었다.
농업혁명은 지배자와 엘리트의 출현에 기초한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를 낳았다. 그들은 농부의 잉여식량을 약탈하여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축조한다. 근대 후기까지 인류의 90%가 농부였고, 그들의 잉여생산이 왕, 관료, 사제, 예술가, 철학자를 급양했다. 역사는 대다수 농부의 노동이 아니라, 극소수 엘리트의 이야기만을 기록한다.
농업혁명과 대규모 사회가 출현한 이후 국가경영을 위한 정보체계가 중요해진다. 수메르에서 인간의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문자 시스템을 발명한다. 점토판에 적힌 수메르의 쓰기 체계는 사실과 숫자에 한정된다. 이것이 기원전 3000-2500년에 쐐기문자로 진화한다. 이집트에서는 상형문자, 중국에서는 한자, 잉카제국에서는 결승문자 체계가 생겨난다.
과학혁명과 유럽 제국주의
기원전 550년경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를 창건한 이후 인류는 2500년 동안 줄곧 제국의 후예로 살아왔다. 제국은 화폐와 종교, 표준화된 법률과 도량형 및 언어 등에 힘입어 인류를 통합했다. 이런 측면은 21세기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다만 그 이전에 우리는 지난 500년 동안 유럽이 진행한 과학혁명을 돌아보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현대과학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현대과학은 무지를 인정한다. 어떤 개념이나 이론도 신성하지 않고 도전 밖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은 관찰을 수집하고 수학적 도구로 관찰을 연결하여 이론을 창출한다. 현대과학은 이론을 사용해 신기술을 개발하려 노력하며 그 결과 새로운 힘을 획득하고자 한다.” (356쪽)
1500년 이전에는 별개로 존재했던 과학과 기술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다시 자본주의와 결합함으로써 막강한 힘을 소유하게 된다. 18세기 중반 이후 자본주의 체제와 산업혁명이 연결되면서 과학과 산업 그리고 군사기술이 얽히기 시작한다. 하라리는 “과학과 제국과 자본 사이의 되먹임 고리가 지난 500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엔진”(389쪽)이라고 강조한다.
세계의 권력이동은 1750-1850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팽창시기와 일치한다. 1775년 세계경제의 80%를 점했던 아시아가 밀리게 된 계기는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합에 기초한 유럽 제국주의의 유기적인 면모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는 과학과 자본주의에 터를 잡은 가치와 사법기구, 사회정치적인 구조가 없었다는 것이다.
16세기 이전의 제국 경영자들과 정복 군주들은 너나없이 권력과 부를 추구했다. 그런데 유럽 제국주의는 영토뿐만 아니라 지식획득을 열망했다. 1798년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종교, 언어,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 165명을 대동한다. 유럽 제국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려는 욕망으로 신대륙의 지리, 기후, 식생,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한 막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과학과 자본주의는 유럽 제국주의가 21세기 유럽 이후의 세상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유럽인에게 제국건설은 과학적 프로젝트였고, 과학건설은 제국의 프로젝트였다.” (400-420쪽)
현대사회와 전쟁과 폭력
19세기 이후 일상화된 산업혁명은 가족과 지역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국가와 시장이 그 자리를 대체함으로써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가족과 공동체가 개인의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하지 못하고 국가와 시장이 그것들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존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산업혁명 이후에 진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국가는 거의 없다. 현대에는 국가 간의 전쟁과 폭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지난 2000년 세계전체 사망자는 5,600만인데,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는 각각 31만, 52만으로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자동차로 인한 사망자는 126만에 이른다. 2002년에는 자살자가 87만으로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73만보다 더 많다.
하라리는 폭력의 감소 원인으로 국가의 등장을 말한다. 제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드문 예외를 빼면 정복전쟁은 사라졌다. 그 결과 유엔의 승인을 받은 단 하나의 국가도 전쟁이나 정복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평화가 너무나 일상화돼서 전쟁을 상상하기 힘든 시대는 과거에는 없었다. 그 원인을 몇 가지 살펴보자.
“전쟁의 대가가 너무나 커서 강대국의 전쟁은 집단자살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비용은 천문학적인데 전쟁의 이익은 작아졌다. 현대의 부는 인적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여기 더해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기가 도래했다. 치밀해진 국제적 연결망으로 국가의 독립성이 약화되어 전쟁발발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526-528쪽)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50년부터 1914년 제1차 대전까지는 영국이, 제2차 대전이후 2008년 세계금융위기 전까지는 미국이 강력한 제국이었다. 오늘날에는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이 정립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특정세력의 독점이나 지배가 아닌 지구단위의 제국이 성립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 산업과 자본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지구적인 규모의 제국이다.
세계화와 블록화의 경향이 짙어질수록 인간은 인위적인 극한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적설계에 기초한 농업혁명으로 자연선택의 법칙을 이미 파괴했다. 가축과 작물은 인간이 설계한 존재이며, 이제 바야흐로 지적설계가 고도(高度)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라리는 그것을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영생불사가 가능한 초인이 생겨날 수도 있으며, 생물과 무생물이 부분적으로 결합한 사이보그가 등장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10-20년 안에 인간과 흡사한 인공두뇌가 컴퓨터 내부에 착상될 것이라 한다. 그 결과 2050년이 되면 일부 인간들은 죽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불멸하는 인간이 등장한다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언을 의미한다.
이 시점에 인류가 직면할 질문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무엇을 원하는지의 문제는커녕 아직도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고대(古代)의 불멸하는 신처럼 창조와 파괴의 권능을 가질 태세는 되어 있지만, 인류는 무책임하고 불만족한 존재로 지구를 위협하면서 여전히 동요하고 있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서책 <사피엔스>를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지금’과 ‘여기’가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이 눈부시게 진행되는 시점에서 여전히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신음하는 한반도. 장밋빛 전망은 아니더라도 장쾌한 미래기획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하여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21세기 질풍노도의 세계화와 과학화, 지구제국의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