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인문학
11월 11일 책 <미래중독자>
인간에게 내일은 무엇인가?! <미래 중독자>
“젊은 거지 박대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늙은 거지야 갈 데까지 갔으니 그렇다 쳐도 젊은 거지의 앞날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앞길이 구만리 같으니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가 맞이할 미래의 향방은 미상불(未嘗不) 예측불허 아닌가. 거지도 그럴진대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한국인은 ‘지금과 여기’를 미래에 내맡긴 채 고단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오면서 숱하게 들었던 얘기가 “담에 해라” 아닐까?! 고교 시절에는 대학 가서 해라, 대학 시절에는 취직해서, 취직하면 결혼해서, 결혼하면 애 낳고서, 애 낳으면 집 산 다음, 집을 사면 아파트 평수 넓힌 다음, 그런 식으로 우리는 미래에 저당 잡힌 생을 살아간다.
왜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도 내일 혹은 미래에 기대를 거는 것일까. 현재에 대한 영원한 불만족이 원인 아닐까.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기대나 바람에 의지하지는 않을 테니까. 단순한 불만족만이 아니라, 현재의 불안과 부당함, 억울함과 불편함, 좌절과 절망을 위로할 유일한 출구가 혹시 미래는 아닐까.
여기 미래를 먹고 살아가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 인간을 탐구한 서책이 있다. <미래 중독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원제는 단출한 <내일의 발명 The Invention of Tomorrow>이다. 서책의 부제(副題)가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멸종직전의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내일’ 이렇게 다니엘 밀로는 독자들에게 ‘미래’의 의미를 캐묻고 대답한다.
인간의 아프리카 탈출
서책의 지은이 다니엘 밀로는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이며 생물학자다. 그에 따르면 6만 년 전 인류의 총수는 불과 5만 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인류역사 99% 시기에 인간은 생존과 멸종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했다는 얘기다. 그런 인간이 58,000년 전에 ‘내일 보자’고 하면서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것이다.
“동굴에 살던 어느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내일 보자, 라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지금부터 140억 년 전에 일어난 빅뱅 이후 그와 같은 일은 그때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전자, 양자, 태양, 별, 미생물, 동물, 식물 등 모든 존재가 영원한 현재의 포로였다.” (29-30쪽)
케냐와 에티오피아 중간지역 어딘가에서 일어난 미증유(未曾有)의 기적 ‘내일 보자!’가 인류멸종을 막았다는 것이 밀로의 주장이다. 선사시대의 인간이 ‘내일 보자’라고 말한 그 날부터 인류역사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것을 그는 ‘스몰 뱅’으로 규정하는데, 그것은 두 시간 후, 내일 새벽 혹은 다음 주처럼 예측을 시간적으로 구분함을 일컫는다.
인류의 아프리카 탈출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얼룩말과 누의 이동은 풀과 물의 필요, 즉 생태적인 압력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인간의 탈(脫)아프리카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갖는다. 오롯이 ‘호기심’ 때문이었다. 평화롭고 안락하게 거주하던 지역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지적인 호기심이 그들을 강렬하게 유혹한 것이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대략 600만 년 전에 침팬지와 갈라선 인간이 이룩한 최고최대의 발견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무척 흥미롭다. 그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동일한 성질을 내포한다. 불과 도구, 언어와 문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철학과 예술, 나침반과 인쇄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10월 혁명...
다니엘 밀로는 ‘내일의 발명’이라고 단언한다. “내일 보자!”를 그는 인간이 떠올린 가장 위대한 문장으로 규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서 앞날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적을 보자.
“전자, 뉴런, 단백질, 미생물, 달팽이, 사막, 귀여운 아기, 이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지금과 여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에일리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피조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190쪽)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현재와 과거의 틀 안에 정지해 있는 데 비해 인간은 오지 않은 시간을 염두에 두는 유일한 생명체다. 인간은 지난날과 지금이라는 존재의 영역과 미래라는 비존재의 영역을 모두 소유하는 특별한 변종인 셈이다. 그런데 생물학적 연속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만이 특출나고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고 한다. 다윈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과 고도로 발달한 동물의 지적 능력 차이는 그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41쪽)
다윈의 결정적인 발견인 생물학적 연속성의 원칙은 미생물과 코끼리, 유칼립투스와 바퀴벌레,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를 하나로 이어준다. 왜냐면 세균과 곰팡이, 식물과 동물은 불멸의 유전자라고 불리는 500개 정도의 공통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과 바나나의 DNA는 50%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인류를 제외한 모든 피조물이 지금과 여기 혹은 과거에 형성된 존재로 머물러 있다면, 인간은 미래를 발명한 지적 능력 덕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
절대적인 변종, 인간?!
<미래 중독자>에서 다니엘 밀로는 다채로운 인용문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 가운데서 인간을 규정하는 몇몇 구절을 살펴보자.
“많은 것들이 대단하다. 하지만 인간만큼 대단한 것은 없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인간은 전쟁의 잔혹성에 발을 담그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노예적인 예속성과 복종심도 인간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유일하게 종교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마크 트웨인)
“생명의 첫새벽을 울음만으로 여는 피조물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은 태어난 지 40일은 되어야 웃음을 알게 된다.” (플리니우스 <박물지>)
지극히 연약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인간이지만, 더욱이 그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더딘 인간이지만 인간만큼 대단한 존재는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여타 동물들에게 결석한 노예적인 굴종과 예속성을 소유하고 있지만, 인간은 전쟁광이며 동시에 종교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을 설명하는 인용문이 뒤따른다.
“인간의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인간은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천사의 발가락을 간지럽게 할 수도, 짐승의 수준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조반나 미란돌라)
“인간은 타고난 것에서 학습한 것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인간은 진화의 첨병이며, 추가적인 진보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줄리안 헉슬리)
“인간만이 추억과 희망, 후회와 환상을 가진다.” (쇼펜하우어)
“인간은 약속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니체)
호기심 하나로 진화의 사다리 정점에 오른 인간은 그 본성에서 보면 천사와 악마라는 야누스의 속성을 가진다. 비상과 추락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존재 인간. 그럼에도 인간은 태어난 본모습에 머물러 있는 여타 동물과 달리 학습을 통해서 천변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진화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는 절대적인 종 인간.
인간에게 그런 속성을 가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내일이다.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희망, 지난날의 회한(悔恨)과 다가올 날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인간. “내일 보자!”고 약속할 수 있는 유일자 인간의 위대성을 예찬하는 서책이 <미래 중독자>다.
글을 마치면서
밀로는 인간이 가져온 놀랄만한 변화를 직시한다, 그에 따르면 신석기 혁명이후 종의 진화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연선택의 비중을 넘어선다고 한다. 여타 동물들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뇌를 가진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이며, 지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자라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만성적인 불만에 사로잡힌 호모 사피엔스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는 숱한 잉여(剩餘)가 발생한다. 그 단적인 본보기가 세계전역에 퍼져있는 고양이들의 변종이다. 우리가 예찬하는 자연은 혁신과 창의성을 싫어하며 진보를 증오한다고 밀로는 말한다. 그래도 진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자연의 뜻과 무관한 인간의 개입에 따른 것이다.
인간개입이 초래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진화의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미래를 발견한 이후 인간은 지금과 여기의 구체적인 존재와 삶에 대해서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미래의 수인(囚人)이 되어 찡그린 얼굴로 오늘 하루도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 중독자>, 다니엘 밀로 지음, 양영란 옮김, 도서출판 추수밭,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