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3월 22일 영화 <미나리>


1)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영화 같지 않은 영화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영화는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지극히 현대적인 예술형식이다. 대본이 준비되고, 감독이 정해지면 크고 작은 돈줄을 찾아서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은 상업성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감독과 자본가, 제작자가 상업성을 아예 배제하고 만드는 일도 있다. 예술영화라는 호칭). 매표구에서 판매되는 입장권이 즉시 돈으로 바뀌는 특수한 예술형식이 영화이기 때문에 상업적 성공 여부는 영화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여타 예술형식이 제공하지 못하는 속도감, 긴장감, 시공간의 자유자재한 변화 가능성, 극한의 상상력이 모두 동원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형식이 영화다. 그런 영화의 특성이 <미나리>에는 완전히 결석한다. 2) 이번에 할리우드에서 진행되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미나리>가 여러 부문에 지명됐다는 사실은 사실 적잖게 낯설다! 1959년 <벤허>, 1973년 <대부>, 1988년 <마지막 황제>, 1995년 <포레스트 검프>, 1996년 <브레이브 하트>, 1999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 2001년 <글래디에이터>, 2004년 <반지의 제왕>, 2007년 <하트 로커> 같은 작품을 생각해 보세요. 거의 모든 영화가 이른바 블록버스터에 속하는 대작 영화입니다. 엄청난 제작비와 물량공세, 오락성으로 무장한 흥행성이 강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그런데 <미나리>는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느낌을 주는 소품이거든요. 긴장과 속도감, 오락성 같은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된 영화인데,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단 말이죠. 3) 영화 <미나리>가 다루고 있는 사건과 시공간에 대해서 조금만 얘기해 주신다면?!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10년 넘게 일한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칸소에서 자신의 꿈인 농장주가 되려고 한다. 그의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바퀴 달린 이동주택과 황량한 이곳을 떠나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들의 아들 데이빗은 심장이 좋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모니카의 엄마(윤여정)가 이들과 함께 살려고 아칸소에 온다. 그녀는 한국을 떠날 때 고춧가루, 멸치, 한약, 미나리 씨앗, 화투 같은 걸 가지고 왔다. 여기서부터 사건이 일어나면서 크고 작은 갈등과 애환이 일어난다. 영화가 다루는 시공간은 1980년대 레이건의 ‘위대한 미국의 재건’ 시대이며, 1년에 한국에서 3만의 이민자가 미국에 몰려들었던 때다. 공간은 주로 아칸소의 후미진 초지의 이동주택. 4)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딱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대개 영화를 보고 나올 때, 특히 마음에 들거나 좋다고 여겨지는 영화에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대사나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나리>에서는 그런 게 거의 없다. 딱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제이콥과 모니카가 충돌하는 장면이다. 데이빗의 심장이 점점 나아가고 있어서 수술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온다. 판로 때문에 괴로워하던 제이콥은 한국 식당 주인과 새로운 거래계약을 체결한다. 이 지점에서 모니카가 이혼을 말한다. 남자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 5) 작년에 우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기생충>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다. 두 작품을 살며시 비교한다면?! 봉준호의 <기생충>은 그야말로 받아야 할 상을 받은 걸작이다. 영화의 장르에 충실한 서사와 적절한 사회비판, 그리고 오락성까지 갖춘 전천후 폭격기 같은 영화다. 반면 <미나리>는 극적인 반전이나, 사회비판 의식 혹은 놀라운 상상력이나 시대를 초월하는 강력한 메시지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일가족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격렬한 갈등이나 기막힌 서사도 없이 115분을 끌고 가는 감독의 연출력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