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5월 24일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문제작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에서 생각하면 좋은 몇 가지

1) 영화를 만든 감독도 영화 제목도 상당히 낯설다. 설명을 부탁한다.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은 1974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출생한 여성 영화감독. 2006년 장편영화 <그르바비차>로 데뷔하여 그해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받음. 보스니아 내전 중에 세르비아계가 보스니아 주민들을 감금-강간-살해한 수용소. 이 영화에서 시작하여 즈바니치 감독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희생당한 무슬림 사람들과 가해자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쿠오바디스, 아이다>라는 제목은 헨리크 셴키예비치의 장편소설 <쿠오바디스>에서 따온 것으로 네로의 박해를 피해 달아나던 베드로가 예수의 환영을 보고 던진 질문 “쿠오바디스 도미네”에서 유래한다.

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도 있었나?! 처음 듣는데, 어디에 있는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말하려면 유고연방을 먼저 알아야. 유고연방은 2차 대전 당시 불세출의 레지스탕스 이오시프 티토가 1945년에 발칸반도에 세운 나라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의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 그 외에 코소보와 보이보디나 등 2개 자치주가 유고연방에 소속되었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하고,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유고연방도 해체 위기에 이른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먼저 독립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1992년 2월 독립을 선언. 그러나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가 독립에 반대하여 내전에 돌입. 1995년 12월까지 25만의 사망자 발생. 당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무슬림 43%, 크로아티아계(가톨릭) 18%, 세르비아계(정교) 35% 분포. 1995년 평화협정으로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의 연방과 세르비아의 독립으로 분열.

3) 영화에서 다루는 시공간과 아이다에 대하여 말해달라!

내전이 한창인 1995년 7월 11일 세르비아계의 지휘관 라트코 믈라디치가 보스니아 무슬림의 마을 스레브레니차에 탱크를 몰고 진입하면서 영화가 시작. 2만 5천에 이르는 마을 주민들이 인근 지역에 주둔하던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로 대피. 그 가운데 5천은 영내 진입, 2만은 기지 밖에서 대기. 아이다는 학교 교사로 영어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통역하던 통역사.

남편과 아들들을 찾던 아이다는 영내로 들어온 작은 아들 세요를 만나고, 기지 밖에 있던 남편 니하드와 장남 함디야마저 영내로 들어오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여성이자 어머니, 아내가 바라보는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그려내는 영화가 <쿠오바디스, 아이다>.

4) 영화에서 그려지는 장면들 가운데 전쟁과 전쟁이 불러오는 비극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고?!

믈라디치가 마을 대표들에게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대목 -> 실제로는 남자들, 10대 아이까지 포함한 비무장 남자 전원 8,572명 살해! 암매장. 남자의 이름으로 장군의 이름으로 보장한다!

아이다가 끝까지 살리려 한 남편과 두 아들 역시 희생되는데, 훗날 그들의 유골과 유품을 통해서 신원을 확인하고 통곡하는 장면!

5) <쿠오바디스, 아이다>에서 영화감독 즈바니치가 전달하고자 한 주제는 무엇인가?!

영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 무슬림들이 살해당한 학교 강당에서 열린 어린이 재롱잔치에서 아이들의 환하고 다른 표정과 얼굴 생김생김, 피부색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마을에서 자랐던 사람들이 종교와 인종을 이유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자. 그러하되 어린아이들은 밝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