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핵심 전력은 '소년병'
다부동 전투는 한국전쟁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입니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내려오자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 방어 전선을 구축했습니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서 결국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냈습니다.
이 전투에서 학도병과 소년병이 핵심 전력이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다부동 구국 전투사에는 '다부동 전투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투력으로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은 학도병과 소년병이었고 18세 이상의 학도병과 17세 이하의 병역의 의무와는 무관했던 소년병이 전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적군과 용감히 싸우다 산화하였으며, 이들은 주로 대구, 의성, 경주 소재 중학교 3~6학년 재학 중인 16~19세의 홍안의 소년들이었다’라고 기록돼있습니다.

소년병, 그들은 누구인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소년병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만 18세 미만의 나이에 한국전쟁 당시 전후방에서 근무하고 일정 기간 복무 완수 뒤 제대한 자.
이들은 학도의용군과는 다른 존재였습니다.
학도의용군은 한국전쟁 당시 대학생 등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 중에서 본인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자입니다.
학도의용군은 1951년 3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학생 학교 복귀 지시 담화’에 의해 실제로 그해 4월 해산했습니다.
그러나 소년병들은 전쟁이 끝나고서도 군복무를 더 해야만 했습니다.
소년병은 군번이 있었고 학도의용군은 군번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병율 씨는 한국전쟁 당시 만 15세의 나이로 입대했습니다.
장 씨는 대구 대건중학교 3학년이던 1950년 8월, 물지게를 짊어지고 대구 중구 덕산파출소 인근으로 가던 중 경찰에 의해 무작정 대륜중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일본으로 향했고 한 달간 군사훈련을 마친 뒤 함경남도 원산으로 파견됐습니다.

소년병,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다
한국전쟁 당시 17살 경북 경산 하양중학교 2학년이던 박태승 씨도 소년병으로 다부동 전투 등에 참여했습니다.
미성년 학생이었지만 부모 동의도 없이, 장교 설득에 넘어가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1·4 후퇴 때 다친 동료 소년병을 돕지 못한 기억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박 씨는 매일 새벽 전우였던 소년병들을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박태승 6·25전쟁 참전 소년병 (2021년 인터뷰)▶
"국군 병사 하나가 부상을 당해서 나무 밑에 신음을 내고 있는데, 아무리 잘 봐도 15살밖에 안 돼 보였어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같이 가'···"
학도의용군은 1951년 4월 집으로 돌아갔지만, 소년병인 박 씨는 휴전 뒤에도 1년 7개월 더 군복무를 해야 했고 제대 뒤 학교에 돌아가지도 못해 중학교 졸업장도 없이 어렵게 살았습니다.
소년병 박 씨와 고인이 된 장병율 씨의 유족 등 4명은 6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 국가배상 청구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국가의 위법한 아동 징집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와 명예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청구 금액은 소년병 1인당 위자료 1억 원입니다.
이번 소송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24년 7월 결정으로 가능했습니다.
과거사정리위는 박 씨를 포함한 소년병 6명에 대해 피해를 인정하고, 국가가 특별법 제정 등으로 이들의 피해를 회복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국가 배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새롭게 진행돼 박 씨 등 고령의 소년병 4명은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각 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겁니다.
◀하경환 변호사 (소년병 소송대리인)▶
"지금 생존해 계신 분들은 몇 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분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송 비용과 만약 패소했을 때 드는 제반 비용까지 변호사와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함께 내기로 했습니다.

국가가 외면하는 소년병
국가는 소년병 존재를 전쟁 뒤 약 60년 동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권고하자 2010년에야 국방부가 소년병 실체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소년병은 국가유공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참전유공자에 따라 참전유공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자원입대자'로 규정해 다른 참전유공자와 구분해 별도의 지원이나 예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3년 6월 국회 국방위원회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당시 국가보훈처와 관계 부처는 소년소녀병은 자원입대이고 어린 나이에 참전한 것 말고는 특별한 희생이나 공헌이 없다며 보상이 이뤄지면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소년병은 29,000여 명, 이 중 2,500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이제는 90세가 훌쩍 넘고, 점점 사라져가는 소년병들이 이번 재판에서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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