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기름값이 가장 저렴하기로 유명했던 대구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중동 전쟁 여파로 대구의 휘발유 가격이 전국 평균을 앞지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정부가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초강수까지 꺼내 들며 진화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이번 폭등 사태가 단순한 외부 요인을 넘어 국내 유가 결정 구조의 고질적인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00원 싸던 대구가 어쩌다…'낮은 마진'이 부메랑 됐다
그동안 대구는 치열한 가격 경쟁 덕분에 서울 대비 리터당 100원가량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대구 주유소 업계에선 이번 사태에서 이 낮은 마진 구조가 오히려 가격 폭등의 불씨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평소 마진을 최소화해 운영하던 대구 주유소들이 정유사의 급격한 공급가 인상을 흡수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3월 12일 오후 2시 기준, 대구의 휘발유 평균가는 리터당 1,910.49원으로 고점 대비 사흘째 소폭 하락 중이지만, 전국 평균(1,900.25원)보다는 여전히 10원 이상 비쌉니다.
전국 최고가 지역인 서울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국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합니다.
"가장 저렴했던 곳이 가장 비싸진"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유소 업계의 항변 "폭리 아닌 생존"…불신 키우는 '사후정산'
소비자들은 "재고를 비싸게 판다"며 분통을 터뜨리지만, 업계는 특히 정유사와 '사후정산(월평)'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자영 주유소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기형적 대금 결제 구조를 원인으로 꼽습니다.
한 달간 공급받은 기름값을 다음 달 말에 정산하는 방식 탓에, 공급가가 급등하면 이들 주유소는 원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적자를 피하기 위해 소비자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본사의 지침을 받는 직영 주유소나 물량을 들여올 때마다 가격을 확정하는 '현가' 거래 주유소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결정이 명확하지만, 지역 내 가격 경쟁과 재고 확보 전쟁 속에 동반 상승 압력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실제로 대구 지역 주유소들은 전쟁 불안감에 소비자가 몰리며 10일 치 재고가 닷새 만에 바닥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주유소 사장 A 씨는 "우리는 대기업 정유사가 통보하는 가격에 마진을 붙이는 소매점일 뿐"이라며 "폭리를 취한 적이 없으며, 고유가로 판매량이 줄고 전기차 이탈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 기름값이 오르는 게 우리에게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알뜰'의 배신과 생계 절벽에 내몰린 운전자들
물가 안정의 보루여야 할 알뜰주유소마저 일부에서 하루 새 606원을 올리는 행태가 벌어지자, 석유공사 사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등 민심은 흉흉합니다.
직격탄은 물류 현장에 떨어졌습니다.
25톤 대형 화물차주들은 일주일 사이 한 번 주유 시 10만 원의 추가 비용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작년 계약 당시보다 수익이 월 200~300만 원씩 줄어든다는 화물차 기사 B 씨는 "적자 운행을 피하려 해도 계약 취소 우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30년 만의 정부 개입, '응급 처방' 넘어 근본 대책 될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라"며 '석유 최고가격제' 전격 시행을 주문했습니다.
이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첫 사례입니다.
정부는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800원 선으로 안정될 때까지 이 제도를 유지할 방침입니다.
이에 대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종민 의원은 "최고가격제는 응급처방일 뿐"이라며, 정유사가 가격을 결정하는 사후정산 관행과 독과점 구조를 깨는 '실거래가 거래제' 도입 등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 유가가 급등락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정부의 강수가 공급망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넘어 민생 경제의 실질적인 완충 장치가 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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