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브리핑 시작합니다.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해저 탄광 갱도가 무너지며 많은 노동자들이 바다에 갇혔습니다.
‘조세이 탄광’으로도 부르는 장생탄광의 비극은 우리 지역의 아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희생자 183명 중 조선인은 136명, 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대구·경북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간 장생 탄광은 바다 위 어선 소리가 들릴 만큼 천장이 얇고 위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해저탄광이었습니다.
장생탄광 희생자 김원달 씨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마치 포로수용소와 같은 곳’이라는 표현과 함께 당시 참혹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1942년 2월 3일, 갱도가 무너지자 일본 탄광 회사는 2차 피해를 막겠다며 갱도 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작업자들은 산 채로 수장되었고 일제는 노동자를 구조했다는 허위 보도를 내며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생탄광의 비극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일 양국 시민단체가 장생탄광 추모집회와 유해 발굴 작업을 공동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이처럼 민간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24년 9월 갱도 입구가 다시 발견돼 유해 수색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2월 초에는 장생탄광 희생자 84주기 추도식이 열렸고 해외 잠수사들의 합동 수중 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 시작 3시간 만에 두개골이 발견되는 성과도 있었지만 다음 날 자원봉사로 참여한 대만인 잠수사가 유골 발굴 작업 중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예정되었던 유해 발굴 일정은 전면 중단됐고, 현장은 또 다시 비통함에 빠졌습니다.
올해 1월 한일 정상이 장생탄광 희생자 유골의 DNA 감식에 협력하기로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었는3데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장생탄광의 진상 규명과 유해 발굴을 민간의 자발적인 희생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일 양국 정부가 강제동원의 역사를 바라보며 84년을 기다린 희생자들의 귀향을 위해 전면에 나설 때입니다.
◀조덕호 장생탄광 한국 추모단장▶
"(수중 조사를)주로 일본의 '역사에 새기는 모임'에서 주도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고로 인해 일본 시민단체들이 상당히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물론 일본 정부나 대한민국 정부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지만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저희들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해서 일본이나 일본 시민단체가 주춤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와 유족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하고 특히 대한민국 정부와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에서 다른 시민단체를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최봉태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 대표▶
"강제 동원할 때 누가 강제 동원을 했냐면 일본 정부가 자기들이 전쟁하는 데 필요해서 동원을 한 것이고, 우리나라는 국가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을 지켜주지도 못했던 것 아닙니까?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양국 정부가 국민에게 정말로 책임의식이 있다면 유골 조사를 "우리가 직접 양국 정부가 최선을 다해가지고 수습해 내겠습니다. 여러분들, 민간인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정부가 할 테니까 기다려 보십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지 국가의 격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한일) 양국 정부 정상이 이야기했던 것이 고작 민간인들이
위험을 감수해 수습해 오면 그 유골에 대해 DNA 감정을 하겠다는 이런 정도의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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