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던 대구 경제의 위상이 갈수록 흔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회복될 경기 부진’이 아니라, 저성장이 일상처럼 굳어져 버린 도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우리 경제의 4% 넘게 차지하던 대구의 비중은 이제 2%대까지 떨어졌고, 성장률은 10년 넘게 전국 평균을 밑도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는 대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산업 생태계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소비·서비스 의존 도시···'성장엔진'이 식었다
대구는 광역 경제권에서 소비와 거주의 중심지로, 제조업 비중은 낮고 서비스업과 소비 비중이 전국 최고 수준인 도시입니다.
그런데 민간 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2002년 6.3%포인트에서 2024년 0.1%포인트까지 줄었고,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도 크게 떨어지면서, 내수 기반 자체가 약해진 모습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소비가 식으면 곧바로 성장률이 꺾일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2016년 이후 대구의 연평균 성장률은 1.2%에 머물며 오랫동안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습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 19 때마다 대구의 성장률은 전국보다 더 크게 떨어지고 회복은 더 더뎠습니다.
이런 흐름이 3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에서 대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 4.3%에서 2024년 2.9%까지 내려갔습니다.

성숙기 접어든 주력 산업···영세 구조가 '발목'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손윤석 과장은 2월 2일 발표한 '대구 경제 성장잠재력 점검 및 발전 방향' 보고서에서 그 배경에 무엇보다 성숙기에 접어든 주력 산업과 영세한 제조업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대구 경제는 주력 산업의 성숙에 따른 성장 동력이 약화했고 산업구조 고도화가 지연되는 상황 속에 이를 뒷받침할 혁신 역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섬유는 인건비와 국제 경쟁력 악화, 생산기지 해외 이전 이후 장기 부진에 빠져 있고, 자동차부품과 기계·금속 가공업은 전기차 전환, 설비투자 둔화, 건설 경기 부진 등 악재가 겹쳐 있습니다.
대부분이 부품·중간재를 납품하는 소규모 공장이다 보니, 업황이 흔들릴 때마다 투자 여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종업원 10명 미만 사업체가 제조업의 90%에 육박하는 88.5%에 이르고, 기업들은 설비가 이미 과잉이라고 보는 반면 채산성과 가동률은 장기간 부진해, 설비투자 확대에 매우 신중한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본 투입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어렵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 고도화 지연과 부족한 혁신 성과
산업의 질적인 전환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통틀어 고도화 지수가 높은 업종일수록 대구에서는 종사자 비중이 낮게 나타나고, 소매·음식점·교육·운송·보건·사회복지 같은 전통 서비스업이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부가가치 업종으로의 전환과 업종 내 고도화가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다는 뜻입니다.
혁신 여건만 놓고 보면, 고등교육·인터넷 인프라 등은 전국 상위권이지만, R&D 투자와 벤처, 지식기반산업 고용, 첨단 수출 비중은 모두 평균에 못 미칩니다.
기반은 갖췄지만, 실제 혁신 투자와 산업 구조 개편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약하다는 평가입니다.

저출생·청년 유출···노동시장도 '빨간불'
인구와 고용 측면에서는 저출생과 청년 인구 유출이 대구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출생아 수는 1995년 38,779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어, 2023년에는 9,410명으로 처음 1만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생산가능인구(15세 이상)는 2001년 180.5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들어섰고, 2020년 이후에는 취업자 수 증감률에 대한 기여도가 음(-)의 수치로 돌아서 노동 공급 측면에서 성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순유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3년 이후 대구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인구 가운데 ‘직업’ 때문에 떠나는 비중은 38.4%에서 2024년 41.4%까지 높아졌고, 그 결과 2015년 이후 청년층 취업자 비중은 3.1%포인트 줄어들었습니다.
청년 일자리는 줄고, 고령층 고용만 늘어나는 구조에서 취업자 수는 2016년 124.7만 명을 정점으로 정체를 이어가고 있고, 2024년에는 전년보다 3.1만 명이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전국과 다른 광역시는 서서히 회복세를 보였지만, 대구는 2024년 한 해 동안 경제활동참가율이 1.7%포인트, 고용률이 1.8%포인트 떨어졌고, 실업률은 2.9%에서 3.4%로 올라 전국(2.8%)과 특별·광역시 평균(3.0%)을 모두 웃돌았습니다.
일자리 수요와 공급을 잇는 구인·구직 매칭 기능마저 매끄럽지 않습니다.
베버리지 곡선만 보면 2020년대 들어 결원율 대비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겉으로는 매칭 효율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돌봄을 제외한 다수 직종에서 구인배율은 전국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2022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업을 요인별로 나눠보면, 마찰적 실업 비중(5년 이동평균 기준)은 2021년 9.0%에서 2024년 14.7%까지 뛰고, 구조적 실업 비중도 함께 높아지고 있어,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을 제대로 못 찾고, 사람도 일자리를 못 찾는’ 비효율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숫자로 확인됩니다.

‘잠재성장률 1%대’가 던지는 경고···돌파구는 생산성·신산업·사람
이런 구조적 제약을 반영하듯, 대구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3%를 웃돌던 수준에서, 이제 1%대 중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정합니다.
노동·자본·총요소생산성 어느 쪽에서도 과거와 같은 성장 기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말 그대로 “성장할 체력 자체가 줄어든 도시”라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보고서는 해법으로 세 가지 축을 제시합니다.
첫째,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제고입니다.
스마트공장 확산과 고도화, 노후 산업단지 재정비를 통해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고, 플랫폼 데이터를 활용해 자영업의 사업 모델을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둘째,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신산업 생태계 구축입니다.
모빌리티, 반도체, 로봇, 헬스케어, AI·빅데이터·블록체인 등 대구의 5대 미래 신산업과 경북의 스마트 제조·바이오·에너지 전략을 연결해, 광역권 차원의 가치사슬을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과 전통 서비스에 쏠린 자금과 낮은 R&D 비중을 신성장 분야로 돌리는 금융·세제 개편이 전제돼야 합니다.
셋째, 청년·여성·고령층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 재편입니다.
청년이 떠나지 않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여성의 일·생활 균형을 개선해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며, 고령층 일자리도 단기·단순 업무를 넘어 지속 가능한 일로 바꿔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산업 전환기에 필요한 전직·재교육과 지역 일자리 플랫폼 고도화를 통해, 지금 높아지고 있는 구조적·마찰적 실업을 줄이는 과제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대구 경제.
보고서는 단기 부진이 지나가길 기다리기보다는 산업과 인구, 노동시장을 함께 바꾸는 구조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1%대 성장이 ‘새 정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 대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도시의 다음 10년, 20년 성장 경로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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