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3월, 경북 산불 뒤 지역 청년들은 피해 주민들과 연대에 나섰는데요.
재난이 개인이 겪는 아픔이 아니라 공동체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지속적인 지지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김서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방 구조부터 농기계가 놓인 자리, 나무가 심긴 위치, 길이 난 방향까지···.
서툴지만 마치 사진처럼 선명합니다.
◀김숙자 안동시 남선면 토갓마을▶
"상방, 중간방, 이제 큰 방으로 들어가는데요. 여기는 부엌으로 해서"
안동 토갓마을 어르신들이 지난 3월 산불로 불타기 전의 집을 떠올려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아래 '며느리 시집올 때 받은 편지', '영감님 월남 사진', '가족 앨범'처럼 산불이 집과 함께 앗아간 어르신들의 소중한 물건들도 글로 남겼습니다.
◀김숙자 안동시 남선면 토갓마을▶
"아끼는 거요? 아, 언제나 그냥 우리 집은 항상 무엇인지 아끼고 보호하고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뭐 옛날이나 아니나 옛날 터전이 항상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아끼고 항상 터전을 지키고 이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회를 연 건 지역에서 사진 모임을 운영하는 청년들입니다.
산불 피해 마을을 찾아 재난의 흔적을 기록하고, 주민들의 모습을 화보로 담으며 일상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조순자 안동시 남선면 토갓마을 이장▶
"우울하게 이렇게 분위기가 처져 있잖아요. 그런데 젊은 분들이 막 왁자지껄하게 와서 사진 찍고 식사 대접하고 이렇게 밝은 기운을 줘서 너무 행복했죠."
청년들은 산불로 상실한 것 중에는 고향과 추억 같은 무형의 가치도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과 함께 감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최민지 기획자 ('로컬그라피 오월')▶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셈해질 수 없는 어떤 기억이나 가치, 그리고 나의 평생을 살아왔던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왔던 그런 공간인데요. 사실 집이 모여서 마을이 됐고 그 집들이 사라지면 사실 마을 공동체는 굉장히 힘들어지거든요. 밥도 같이 먹고, 항상 옆에서 듣는 이가 있다는, 그리고 아직 귀 기울이고 있다는 어떤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의성 고운사 산문에서는 농가 직거래 장터가 열렸습니다.
산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농산물이 장터에 올랐습니다.
◀고정희 의성군 점곡면▶
"불탄 그곳(밭)은요. 콩도 잘 안 올라왔어요. 우리 사과나무 그거 다 베고 거기다가 콩을 심었거든요. 불탄 자국, 자리 있잖아요. 재 앉은 자리. 거기는 잿물이 엄청 독한가 봐요. 이름 모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셔서 거기에 힘을 받아서 일어서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요."
이 장터를 기획한 청년 문화 기획가 이현숙 대표는 3년 전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 의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산불 나흘째 되는 날 들려온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의 전소 소식은 이 대표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현숙 의성 두두랩 대표▶
"의성에 '뭐 볼 거 있어? 의성 마늘 말고 더 있냐' 막 이렇게 하면 '우리 고운사가 있다.' 서울 사람들에게, 혹은 한국 사람들에게 경복궁은 너무 상징적인 거잖아요. 그게 탔다고 했을 때 우리가 상실할 수 있는 그런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의성 사람들에게 저는 고운사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순간 이제 체감이 된 것 같아요. '아, 우리가 이전처럼 살 수는 없겠다'"
이 대표는 피해 주민들의 고통과 마을의 위기를 목격하면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고민한 끝에 직거래 장터와 비닐하우스 짓기 강좌를 기획했습니다.
주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회복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이현숙 의성 두두랩 대표▶
"어려움을 얘기하실 때보다도 고마움을 얘기하실 때 되게 많은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세요.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도 안 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만큼이니 내가 이만큼이라도 보탤게요'라고 했을 때 마음을 다잡으시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회복의 길은 충분히 열려 있고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산불은 한순간의 사고가 아니라 수개월째 지역사회 전체에 경제적,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재난 이후의 지난한 회복 과정에서 피해 주민들이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고립되지 않도록 공동체의 지지가 계속돼야 합니다.
MBC 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차영우,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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