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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해방된 지 80년 지났지만···여전히 차가운 일본 바다 밑에

윤영균 기자 입력 2025-11-18 17:58:39 조회수 80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던 장생탄광 갱내가 순식간에 침수됐습니다. 이 사고로 작업 중이던 183명이 숨졌는데요, 사망자 가운데 136명이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일본 당국은 ‘천재지변에 가까운 자연 침수 사고’라며 서둘러 사건을 덮었는데요, 희생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지만 보상은커녕 아직까지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돼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희생된 장생탄광 희생자와 유족들을 지원하는 특별법이 최근 발의됐습니다. 가뜩이나 수몰된 장생탄광 노동자들의 강제 동원은 오랫동안 잊힌 역사였는데 민간에서 사건을 알리고 유해 발굴에 나서면서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구시도 2025년 하반기에 관련 조례를 제정해서 피해자 지원의 물꼬를 냈고요. 국회에서도 현재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통과까지 가야 될 텐데요. 일제 강점기 위안부와 또 강제 동원 문제 피해 해결에 우리 지역에서 누구보다 앞장서고 계신 분입니다. 장생탄광 귀향 추진단 대표이기도 하신데요. 최봉태 변호사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A. 예 안녕하십니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Q. 귀향 추진단이라는 이 말에 많은 게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장생탄광 그 당시에 일하시던 우리의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됐던 분들이 아직도 그 탄광 안에 있는데 지난 여름에 다녀오셨잖아요. 그분들이 또 일본으로 갔던 그 길을 밟아서 가셨는데 어떠셨습니까? 현장 가보시니까.

A. 그러니까 장생탄광 사고라고 하는 것이 일반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데, 1942년 2월 3일 야마쿠치현에 있는 우베시라고 하는 해저 탄광입니다. 거기에서 이제 수몰 사고가 나서 많은 분이 희생되었는데, 우리 한국인들이 한 136명,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한 47명 이래서 183명이 지금 수몰사고로 이렇게 희생이 되었는데, 83년 만에 유골로서 이렇게 귀향을 해야 한다는 그런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희들이 이제 귀향 추진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해저에서 83년 동안에 일부 두개골은 발견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장화를 신고 누워 계십니다. 그래서 그 이거는 뭐 유골도 아니고 거의 유체죠. 지금 이분들을 어떻게든 모셔와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네. 83년 만에 이제 유해 수습을 위한 어떻게 보면 해저 조사가 이루어진 거고. 그렇죠?

A. 유골 조사가 이루어졌고, 유골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분 이제 두개골도 발견되어서 수거한 것도 있고, 또 아직 해저 탄광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Q. 어떻습니까? 현장 가보시니까 거기 해저에 탄광이 있다, 여기서 우리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A. 기가 막히죠. 이게 나라는 해방이 됐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희생자들은 아직까지 해방이 되신지도 모를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해방이 되었다면 당연히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해저 탄광에 지금 누워 계시는데 관심도 없다, 혹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해방되지 않지 않았나? 그래서 나를 찾고 있지 않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Q. 사고가 난 지 벌써 83년이나 됐고, 광복은 80년이 지났는데, 그러니까 누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게 직접 해저 탄광에 수습하기 위해서 잠수부가 들어가 봤더니 그 영상에서 거의 유체가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이 얘기이신거죠?

A. 그렇죠. 이게 지상에서는 비바람도 불고 이러기 때문에 풍화가 되는데 해저 탄광 같은 경우는 또 특수성이 있어서. 지금도 화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장화를 신고 그냥 누워 계십니다.

Q. 그런데 그런 유해 발굴 작업도 이번에 2025년 여름 귀향 추진단이 현장 방문했을 때가 처음이었던 건가요?

A. 이 유골 조사와 관련돼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해저 탄광 입구를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갱구를 그동안 못 찾았는데 이제 올해에 갱구를 찾았고, 그 이후엔 갱구를 찾았으니까, 잠수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갱구를 통해서 잠수도 하고 또 피어라고 해서 환기구를 통해서도 들어가서 결국은 수색 끝에 8월 25일과 8월 26일, 8월 23일에는 사람의 대퇴골이라든지 이런 걸 한 3개 정도의 뼈를 찾았고, 8월 26일에는 드디어 두개골을 저희들이 찾아냈습니다.

Q. 현재까지 그런 상황. 그런데 이게 지금 민간에서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유해 발굴한 조사라면서요?

A. 그렇죠. 지금 일본 정부도 하지 않고, 한국 정부도 하지 않으니 주권자인 우리 시민들이 해야 되지 않나 해서 일본 시민들이 지극 정성으로 하고 있고, 또 저희들은 일본 시민들의 그 지극 정성에 감동해서 우리도 힘을 모아야 되겠다 해서 저희들도 협조해서 지금 같이하고 있습니다.

Q. 그러다 보니까 90년대가 돼서야 또 이렇게 장생탄광의 존재, 그리고 희생자들이 알려지게 됐고 그러면 그런 희생자 명단이라든가 여러 가지 조사도 다 민간 차원에서 해서 지금 저희가 알고 있는 사실 관계인가요?

A. 네, 그렇습니다. 민간인들이 주도적으로 지금 하고 있습니다.

Q. 근데 183명이 1942년 겨울, 이 탄광을 집어삼킨 그 겨울 바다에 지금 잠겨 있는 상황인데, 그중에 조선인 피해자가 136명, 또 대구·경북민이 76명. 그러니까 희생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거잖아요.

A. 그렇죠. 그래서 저희들이 지금 대구·경북의 희생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구·경북 중심으로 해서 귀향 추진단도 만들어지게 되었고요.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이걸로 인해서 우리 대구·경북이 나라가 어려울 때는 꼭 앞장을 섰거든요? 국채 보상 운동을 통해서 우리가 일제 시대에 들어갈 때, 나라가 국권이 뺏길 때도 우리가 그 저항을 할 때도 선두에 섰었고, 2.28을 통해서 민주화 운동도 우리 대구가 주도했고, 그래서 지금 장생탄광 같은 일제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런 상황도 우리 대구·경북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마침 이 장생탄광을 계기로 해서 우리 아이덴티티가 서서히 발현되고 있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저는 대구인으로서 굉장히 자긍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아니, 그렇지 않아도 귀향 추진단 또 현장 방문하고 오셔서 대구시에서 조례가 제정됐습니다. 강제 동원 피해자 지원 조례라는 건데, 장생탄광 비롯해서 또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시가 나서서 지원하겠다, 이런 거예요?

A. 그렇습니다. 육정미 의원이 이제 대표 발의를 해서 이 조례가 통과됐는데, 이 조례가 통과되면 여러 가지 추도 사업이라든지 이런 것을 국가 예산을 통해서 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구시가 국민들의 세금, 특히나 대구 시민의 세금을 제대로 활용을 해서 우리 그 조상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평화를 이렇게 이끌어내는 데 우리 대구 시민들의 예산을 쓰면 대구 시민들의 자긍심이 높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시의 조례 마련되는 데도 귀향 추진단의 이런 행보가 주효했을까요? 역할을 좀 하신 것 같은데요.

A. 그렇습니다. 대구 시민들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셨기 때문에 이런 조례 통과가 가능한 것으로 그렇게 알고, 대구시 의원님들에게도 모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Q. 예, 이제는 국회입니다. 지금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인데 대표 발의한 분이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 우리 또 동구 지역구 의원이세요. 발의 배경은 좀 어떻다고 보세요?

A.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 강대식 의원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구에 특히나 동구에도 지역구에 있는 피해자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좀 나서주셨으면 좋겠다는 저희가 요청을 드리니 강대식 의원님께서 흔쾌히 '아, 이것은 정당을 초월해서 해야 할 일이다' 해서 이게 11월 6일날 대표 발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국민의힘 의원님 대구·경북의 의원님들께서 중심이 되어서 이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주신다면 우리 과거의 우리 대구의 전통이 다시 살아나지 않겠나, 저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네, 보니까 그 귀향 추진단에 갈 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함께 동행을 하셨고, 그리고 장생탄광 수몰 사고 진상 규명 촉구하는 결의안도 또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내기도 했었죠. 그러니까 지금 국회 분위기는 좀 초당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럼 통과까지도 좀 무난할까요?

A. 결의안 같은 경우에는 이제 민주당이 중심이 해서 제출한 것이고요. 그런데 이제 입법과 관련되는 법률안은 국민의힘이 주도해서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이 장생탄광 문제는 여야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이 이제 입증이 된 것이고요.또 최근에는 11월 16일입니다, 며칠 안 됐는데 한일 의원연맹에서도 이 장생탄광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의회 차원에서 우리가 협조를 하고 노력을 하자 이런 결의안까지도 공동 선언 형태로 발표를 했기 때문에, 이거는 일본의 의회 의원님들도 다 찬동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한일 간의 평화를 이끌어내는 어떤 마중물이 장생탄광이 되지 않겠나 저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이 문제가 중요하다, 또 계속해서 알려져야 한다라고 했던 양국의 민간 시민단체들이 여기까지 또 이루어냈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될 상황인데 일본 정부 입장은 좀 어떨까요, 우리 지금 한일 외교적으로 봤을 때?

A. 지금 일본 정부가 역사를 직시를 할 용기를 좀 가졌으면 좋겠는데 지금 일본 정부가 소극적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게 지금 8월 26일에 두개골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일본 경시청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죠. 지금 빨리 DNA 조사를 해서 유족들의 품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본 정부가 조금 난색을 표하는 것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부족하다는 부분도 물론 있고, 또 이게 추후 작업이 계속 이어질 거니까 그에 대한 부담감도 느끼겠지만. 뭐 이건 뭐 일본 정부는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이거는 약속을 한 바가 있거든요. 어떻게 약속했냐면 2005년 당시에 우리가 일본 정부하고 사이에서 민간인 유골 부분에 대해서도 인도주의 미래 지향, 혹은 현실주의 입장에서 이걸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을 서로 했거든요. 그런데 왜 일본 정부가 약속을 어기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도 2005년 당시의 약속을 지켜가지고 이 민간인 유골에 대해 가지고 같이 조사를 하는 데 좀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간곡히 일본 정부에게 호소를 하고 싶습니다.

Q. 자 이제는 정부가 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할 때입니다. 유족들 특별법도 지금 발의된 상태고 한데 가장 바라는 점은 어떤 거예요?

A. 지금 빨리 지금 유골을 모셔와서 고향에 모시고 싶은 것이 가장 바라는 것이겠죠. 그래서 귀향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유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고, 또 그걸 계기로 해서 지금 다른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든지 우키시마호 사건이라든지 밀려 있던 우리 과거사 문제가 평화적 관점에서 잘 해결되기를 이제 저희들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자, 장생탄광 강제 동원 피해자 우리 역사적 사건 진상 규명돼야 하고 또 우리 국회에서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까지 마련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유해 발굴, 그리고 귀향까지 좀 어떤 원칙에서 진행됐으면 하십니까?

A. 2005년 당시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약속한 원칙이 있거든요.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불가능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 하지만 가능한 요구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달라는 그런 것이 그 당시 일본하고 맺었던 원칙이거든요. 그래서 이 원칙에 따라서 일본 정부가 약속을 꼭 지키기를 바라고 싶고요. 그리고 이런 문제가 제대로 이렇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 대구 MBC가 한일 의원연맹 총회 발표 이후에 최초로, 대한민국 언론뿐만 아니라 한일 언론들 관련해서도 최초로 아마 대구 MBC가 지금 이 방송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Q. 여러분 입소문 많이 내주십시오.

A. 그래서 대구 MBC가 적극적으로 이렇게 앞에 선도 역할을 해 주시면 아마 우리 대구 시민들의 자존심도 더 높아지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2026년 2월 84주기에는 좀 더 전향적인 다른 소식이 들려와서 한 번 더 최봉태 변호사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A. 네, 감사합니다.

Q. 장생탄광 귀향 추진단 최봉태 대표였습니다.

  • # 장생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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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봉태
  • #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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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2025-11-24 18:04

    영상물 보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1975년 일본유학 가 일본사 한일 관계사 연구학 위취득. 장생탄광 조사 2000년 -강제징용 과 장생 광광 - 저술 2005년도 합천 황매산에 범연원 주지스님 100여명 무시고 현장 조사 천도제 지내고 지금도 황매산에 136명 희생자 위패 봉안 제사를 모시고 있음, 부산 KNN가 현장 조사 다큐 제작 경북일데 유족 조사했어 유족 찿고 세상에 고루 고루 알렸음 그러나 대구 mbc 는 처음 알리는듯 보,도 인터넷 조사하고 보도하세요 010-3560-7855 김문길 교수

  • 2025-11-24 17:50

    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답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