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11월 29일, 115명을 태운 항공기가 사라졌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2주일 정도 앞둔 1987년 11월 29일, 115명을 태운 대한항공(KAL) 858편이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췄습니다.
승객 대부분은 이역만리 중동에서 일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허술한 수색 끝에 동체는 물론 단 한 구의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한 공작원 김현희의 폭파 테러'로 결론지었지만, 김현희의 증언 외에는 제대로 된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대선 개입을 위한 공작'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유족들은 30여 년간 단 한 명의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진상 규명을 눈물로 호소해 왔습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미스터리인 이 사건은 2020년 1월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이 미얀마 안다만 수심 50미터 해저에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고민해 보겠다"고 답하며, 38년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힐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수심 50미터 해저에서 포착된 추정 동체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정부가 발표한 '인도양 한복판'이 아닌, KAL 858편의 항로와 가까운 미얀마 안다만해역 수심 약 50m 지점을 집중 수색했습니다.
세계적인 해양 구조 전문가인 이종인 씨가 총 책임을 맡은 수색에서 3차원 음파탐지기를 통해 10미터가 넘는 날개 형태의 물체와 엔진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수 수중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는 제트 엔진과 날개, 그리고 엔진과 날개를 연결하는 파일론(Pylon)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국내외 해난구조 전문가와 항공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이 잔해가 KAL 858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추정 동체의 모양, KAL 858기와 매우 유사
KAL 858기의 기종은 보잉 B707-300C로, 4개의 엔진을 가진 초기 대양 횡단 제트 여객기입니다.
촬영된 엔진 추정 물체의 크기를 측정한 결과, B707 엔진의 규격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전 민항기 조종사 출신으로 군 시절, 전투기 사고 조사 경험이 있는 김성전 씨는 촬영된 잔해에서 파일론의 경사도와 날개-엔진 간격이 858기의 설계와 유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2020년 2월, 3차 수색에서 촬영된 또 다른 엔진 추정 물체는 KAL 858기에 사용된 P&W JT 3D 엔진과 모습이 거의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구MBC는 전문가들과 미얀마 국제공항 고위 관계자,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사고 기록을 교차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잔해 발견 지역에는 KAL 858기 외 다른 대형 민항기 추락 기록이 없었습니다.
문의한 6명의 전문가 대다수가 이 잔해가 KAL 858기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동안 '폭탄 테러로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 흔적 없이 사라졌다'던 정부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된 것입니다.

의혹의 뿌리···부실 수색과 정치 공작
1. 항로 아래가 아닌 산악지대 수색
대구MBC가 잔해를 발견한 곳은 미얀마 안다만 해안에서 불과 30km 떨어진 지점이었습니다.
일반 선박으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당시 정부가 제시한 '수색 불능 지역'이라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항공기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점을 수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정부 수색팀은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KAL 858기 항로 바로 밑 안다만해역을 제대로 수색하지 않고, 오히려 미얀마와 태국 국경 산악지대 수색에 시간을 낭비한 것입니다.
2. 안기부 주도의 '무지개 공작'
수색 시작 열흘 만에 국토부 조사 요원들은 잔해 하나 찾지 못한 채 철수했고, 사고 당사자인 대한항공 관계자들만 현장에 남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사고 조사가 국토부가 아닌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했다고 지적합니다.
2007년 노무현 정권 당시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이 안기부의 정치 공작에 활용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안기부가 여당 후보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를 대선 전 국내로 압송하며 진행한 '무지개 공작'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동체와 유해를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찾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진상 규명의 핵심 열쇠···블랙박스와 동체
1. '동체 착륙' 가능성을 보여주는 추정 동체
대구MBC가 촬영한 잔해는 왼쪽 날개와 엔진뿐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수직 꼬리날개까지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추정 동체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은 사고 원인 규명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항공 전문가들은 엔진이 날개에 붙어 있는 등 동체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인 점을 근거로 '동체 착륙'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대규모 폭발로 산산조각 났다'는 정부 발표와는 크게 다릅니다.
또한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할 때까지 조종사가 조종했으며, 승객과 승무원들이 살아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고도 3천 미터에서 바다까지 추락하는 5분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온전한 동체는 유해가 남아 있을 확률도 높여줍니다.
2. 절실한 블랙박스 인양과 조사
전 건설교통부 항공사고조사위원회 사무국장 최흥옥 씨는 희미하게 보이는 수직 꼬리날개 발견을 "참 소중한 부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항공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가장 중요한 블랙박스(비행 기록 장치, FDR)가 꼬리날개 바로 아래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블랙박스를 찾으면 KAL 858기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 민항기 조종사 김성전 씨는 블랙박스 데이터 중 '기압 계통의 급격한 강압(압력 저하)' 현상이 폭파 직후 가장 먼저 나타날 것이라며, 블랙박스 조사를 통해 폭파 여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폭파 전문가들은 동체의 끊긴 면을 화학 분석하면 폭약 성분이 반드시 남아있어 폭발물 종류와 폭발 진행 방식까지 식별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1988년 팬암 103기 폭발 사건도 수만 점의 잔해를 인양해 폭발 위치와 폭발물 종류를 밝혀내고 테러범을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38년 만의 '국가 의지' 표명
KAL 858기 실종 사건의 진상 규명은 지난 30여 년간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으로만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가 공식 언급되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2020년 대구MBC가 미얀마 앞바다에서 동체를 발견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수색 합의가 코로나와 쿠데타로 중단된 상태"라며 "예산도 이미 편성된 사업이니 수색 조사를 다시 재개할 의사가 있는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예기치 않은 질문에 잠시 놀라면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얘기여서 오늘 질문을 계기로 고민을 좀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비록 '즉각적인 재개'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이 사건의 진상 규명에 대해 국민들 앞에서 '국가적 차원의 고민'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2020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수색을 지시한 이후 5년 만에 이재명 대통령의 공식적인 관심 표명으로, 유족들은 깊은 감동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KAL 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장은 "정말로 38년 동안 제가 깊은 잠을 못 잤다. 너무너무 억울해서 아무리 우리가 호소해도 이 대한민국이 저희들의 그 억울함을 보듬어주지 못했다"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유족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가족의 유해를 찾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간절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인양의 과제와 38년 만의 진실 찾기
대구MBC 특별취재단이 촬영한 동체는 KAL 858기임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와 국가적 역량을 동원한 인양과 조사뿐입니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긍정적 답변을 계기로, 정부는 미얀마 정부와의 협의를 조속히 재개하고 추정 동체 인양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합니다.
추정 동체를 인양하여 폭파의 진위, 추락 시점의 상황, 그리고 정치 공작 의혹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단순한 사고 조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국가가 외면했던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매듭짓는 역사적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38년의 미스터리, KAL 858기 실종 사건의 진실 인양 작업이 마침내 시작될지, 유족과 국민의 눈이 정부의 다음 행보에 쏠려 있습니다.
- # KAL858기
- # 대한항공
- # 이재명대통령
Copyright © Daeg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 [대구MBC 특별기획]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유족들
- [대구MBC 특별기획]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② 문재인 정부의 의지 부족이 진상 규명 기회 놓쳐
- [심층] 미얀마 깊은 바닷속의 KAL 858기 추정 동체···희망에서 다시 절망으로
- [대구MBC 특별기획]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③ KAL 858기, 비상착륙 가능성 높아
- [대구MBC 특별기획]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④ KAL 858기 수색, 지금부터 준비해야
- [심층] KAL 858기, 공중에서 산산조각?···비상 착륙 가능성 높아
- [심층] KAL 858기 수색, 이제라도 정부 나서야···어떤 준비 필요할까?
- [뉴스비하인드] KAL 858기 실종사건, 국가는 없었다
- 37주년 맞은 KAL858기 실종 사건···"진상 규명 위한 재단 설립 절실"
- 이재명 대통령 "KAL858기 동체 수색, 고민해 보겠다"···실종 사건 진상 밝혀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