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대한민국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된 '정보 과잉' 시대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전 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뉴스의 외피를 쓴 허위 정보, 즉 가짜뉴스는 단순한 오류를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고 개인과 공동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탈진실(post-truth)'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구문화방송은 가짜뉴스의 실태와 뿌리, 배경 등을 심층 분석하고, 한국 민주주의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는 기획 뉴스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탈진실'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 현실을 진단해 봅니다.

현실을 뒤흔든 가짜뉴스···'피자 게이트'와 '코로나 19 인포데믹'
하버드 셔넌센터의 클레어 워들 연구원은 2019년 4월, TED 강연에서 가짜뉴스를 "바이러스처럼 퍼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도구"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피자 게이트' 사건을 꼽았습니다.
이른바 '피자 게이트'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온라인에서 퍼진 대표적인 가짜뉴스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민주당 인사들이 워싱턴 D.C.의 한 피자 가게에서 아동 성 착취 조직을 운영한다는 터무니없는 허위 주장이었습니다.
이 가짜뉴스를 맹신한 한 남성이 실제로 해당 피자 가게에 총기를 들고 난입해 총격을 가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가짜뉴스가 단순히 온라인상의 소문을 넘어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충격적인 사례이자, '탈진실' 시대의 위험성을 상징합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코로나 19 인포데믹'을 들 수 있습니다.
인포데믹(Infodemic)은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 잘못된 정보가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져 사회적 혼란과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포데믹을 겪은 시기로 기록될 만합니다.
"메탄올 마시면 코로나 예방", "백신에 마이크로칩 삽입" 같은 황당한 허위 정보와 음모론이 온라인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습니다.
이러한 인포데믹은 단순한 혼란을 넘어, 잘못된 예방 및 치료법으로 인한 실제 사망 사고, 백신 불신으로 인한 접종률 저하,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갈등 조장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불확실성과 확증 편향이 결합할 때, 허위 정보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중요한 사례입니다.

한국도 가짜뉴스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러한 가짜뉴스들로부터 한국 사회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주요 정치 이슈마다 반복되는 허위 정보의 확산은 가짜뉴스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7년 3월, 한국에서 가짜뉴스로 인한 연간 경제적 비용이 무려 30조 원에 달한다고 추정했습니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합리적 의사결정'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선관위 간첩단' 사건···기성 언론과 유튜버의 위험한 공모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표적인 가짜뉴스 사례가 바로 스카이데일리의 '선관위 중국 간첩단' 보도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 해커 90명이 체포됐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가짜뉴스의 생산과 확산 메커니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2024년 12월 25일 '신인균의 국방TV'라는 유튜브 채널이 시사인의 선거연수원 관련 보도를 왜곡 해석하며 "민주당과 선관위가 감추려던 사실이 폭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루 뒤인 12월 26일, 스카이데일리는 "수원 선관위연수원의 90명 중국인 해커부대"라는 주장을 제기했지만, 이에 대한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2025년 1월 2일 스카이데일리는 '대한민국 국가원로회'라는 단체의 성명서를 인용해 "중국 전산 조작 요원 90명이 체포돼 미국 정보요원에게 수사를 받는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2018 지방선거, 2020 4.15 총선, 2022 대선, 2024 4.10 총선 원격 개표 조작을 벌였다"는 주장을 그대로 유포했습니다.
다음 날 유튜브 '강신업 TV'는 스카이데일리의 보도를 인용하며 이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는 12.3 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 있던 것은 승진 및 보직 교육을 받던 선거연수원 직원 98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극우 유튜버와 언론의 '복잡한 협업'을 통해 '90명 중국인 해커부대'로 조작되었고, 급기야 "미군 정보당국이 수사 중"이라는 허위 정보로까지 확대됐습니다.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주한미군, 중국 정부 등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상황까지 연출됐습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스카이데일리 기자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고, 기사의 출처가 블랙요원을 사칭한 자칭 '캡틴코리아'였다는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일부 유튜버들은 여전히 "조만간 미국이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음모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가짜뉴스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며, 집요하게 진실을 부정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재까지···가짜뉴스의 끝나지 않는 역사
가짜뉴스는 디지털 시대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는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짜뉴스 유포자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 람세스 2세입니다.
그는 기원전 1274년 히타이트와 벌인 카데시 전투에서 실제로는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적진을 누비며 승리했다고 과장하여 기록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등 이집트 전역의 건축물에 이 허위 승전 기록을 새겨 넣어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짜뉴스 사례로 평가받으며, 후에 히타이트 측 기록이 발견되면서 람세스 2세의 기록이 의도적인 과장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실제로는 16년간 전쟁이 지속된 후 평화조약을 체결한 무승부였던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또 다른 고대의 가짜뉴스 사례로는 로마제국의 정치 선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제국 전체를 로마화(Romanization)하는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예술, 건축, 화폐, 문학 등 모든 가능한 매체를 통해 정치 선전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화폐는 각 황제의 권력과 정당성을 묘사하는 간결한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고, 건축물과 조각상을 통해 황제의 업적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조작해 로마제국이 정복한 민족들을 로마의 가치관으로 동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로마의 정치 선전은 현대 미디어 전략의 원형으로, 조작, 설득, 선전 등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체계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가짜뉴스로 템플 기사단을 몰락시킨 사례가 꼽힙니다.
14세기 초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기사단에 진 막대한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우상숭배, 동성애, 이단 행위 등의 거짓 혐의를 조작했습니다.
그는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현재 '검은 금요일'의 어원) 기사단원 138명을 일제히 체포하고 고문을 통해 거짓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압력에 굴복하여 기사단 해산령을 내렸고, 많은 기사단원들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근대에는 19세기 '위대한 달의 사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이 사건은 1835년 8월 25일부터 뉴욕 선(New York Sun) 신문에 6회에 걸쳐 연재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가짜뉴스 사건입니다.
이 사기는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셜(Sir John Herschel)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강력한 망원경으로 달에 생명체와 문명을 발견했다고 허위 보도한 것입니다.
그는 날개 달린 박쥐 인간('베스페르틸리오 호모'), 두 발로 걷는 비버, 유니콘 등의 환상적인 생물들이 달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자들이 이를 진짜로 믿어버리면서 의도하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고, 9월 16일에야 신문사가 이것이 조작된 기사임을 인정했습니다.
이 가짜뉴스는 상업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첫 기사가 발행된 날부터 신문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사기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오히려 발행 부수가 1만 5천 부에서 1만 9천 부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영국의 더타임스를 누르고 세계 최대 발행 부수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가짜뉴스는 현대 가짜뉴스의 원형으로 여겨집니다.
권위 있는 인물의 이름 도용, 기술적 세부 사항을 통한 신뢰성 연출, 선정적 내용으로 대중의 관심 유도 등 오늘날 가짜뉴스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종 학살을 야기한 가짜뉴스로는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방화했다"는 가짜뉴스가 꼽힙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방화를 저질렀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확산했습니다.
이러한 가짜뉴스는 지진과 화재로 인한 혼란 속에서 민중들의 분노를 조선인에게 전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유포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일본 당국은 공식 전보를 통해 조선인 방해 공작설이라는 허위 정보를 적극적으로 유포했으며, 이는 계엄령하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6,000여 명의 한국인들이 일본 민간인들에 의해 학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가짜뉴스가 어떻게 집단 광기와 결합하여 대규모 인종 학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탈진실'을 부추기는 요인들···돈, 심리, 기술, 그리고 협업
그렇다면 이처럼 강력한 가짜뉴스와 '탈진실' 현상은 어떤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일까요?
첫째 경제적·정치적 동기입니다.
가짜뉴스는 광고 수익, 정치적 이익 등 명확한 동기에서 비롯됩니다.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플랫폼의 '조회수 경제'는 자극적 허위 정보 생산을 부추깁니다.
스카이데일리의 경우 윤석열 정권 들어 정부 광고가 2.4배 급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집권 세력과의 유착 관계가 의심받고 있습니다.
선거 등 정치 이벤트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여론을 조작하는 도구로 악용됩니다.
둘째 인간의 심리의 취약점입니다.
가짜뉴스 확산의 배경에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특히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강화합니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이런 확증 편향을 더욱 심화시켜, 사용자가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히게 만듭니다.
셋째 통신 기술 발달에 따른 정보 홍수로 생기는 '인지 고갈'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가짜뉴스 확산의 '연료'입니다.
클릭 한 번으로 정보가 퍼지고, 소셜 봇과 알고리즘이 허위 정보를 추천하며 확산을 가속합니다.
정보 과부하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압도해 '인지 고갈(cognitive exhaustion)'을 유발하고, 사용자는 헤드라인만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넷째 극우 유튜버와 기성 언론의 '협업'입니다.
스카이데일리 사건에서 보듯, 극우 유튜버가 제기한 의혹이 기성 언론을 통해 '권위'를 얻고, 다시 유튜버들이 이를 인용해 기정사실화 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누구나 정보 생산자가 될 수 있어 정보의 출처가 불분명해지고 진위 판단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의 위기···그 해법은?
가짜뉴스는 단순한 정보 오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합리적 토론'과 '다양한 의견의 조율'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여론 조작, 정치적 혐오 조장, 선거 결과 왜곡 등으로 민주적 과정 자체를 무력화합니다.
스카이데일리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선거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훼손했습니다.
또한 언론 보도 형식을 모방해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고, 언론의 감시·정보 전달 기능을 약화시킵니다.
그리고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사회 구성원 간 신뢰를 붕괴시켜 극단적 갈등과 분열을 초래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짜뉴스는 주가 조작, 기업 평판 훼손 등 경제적 손실과 국가 안보 위협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적지 않은 고민이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딜레마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치 세력의 재정 지원까지 등에 업은 가짜뉴스와 그 추종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마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대구문화방송은 다음 순서에 이러한 '탈진실' 시대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과 시민들의 역할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가짜뉴스의 위협을 넘어 건강한 정보 생태계를 구축하고 합리적인 공론장을 회복할 수 있을지, 끊임없는 논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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