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경북 동해안에서는
6·25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
보도 연맹으로 몰려
경찰과 군인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습니다.
당시 가족을 잃었던 분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박성아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END▶
◀VCR▶
나무가 우거진 낮은 산등성이.
1950년 7월, 당시 16살이었던 이상열씨는
이곳으로 아버지 시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INT▶이상열/ 영덕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군인들이 우리를 보고 막 사격을 하는데, 우리가 다시 쫓겨서 집으로 갔죠."
총격에 쫓겨 도망갔다,
3일 뒤 다시 찾은 산 골짜기.
손이 묶인 채 살해당한 시신들 속에서
아버지를 겨우 찾아냈습니다.
◀INT▶이상열/ 영덕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구덩이를 파놨는데 피가 많고 시신은 부패가 돼 있고... 그 얘기 하지 마세요. 70년 지났는데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마을 주민들이 갇혀 있던 소금 창고로 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INT▶이상열/ 영덕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약을 지어주고 돌아서서 소금창고로 다시 들어갔단 말입니다."
"그게 아버님 보신 거 마지막이에요?"
"마지막이에요."
(S/U)1950년 7월 15일, 이곳에서만 민간인
1백 6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영덕군 지품면과 강구항 앞바다,
울진군의 어티재 등지에서 희생된 사람만
270여 명.
명확한 이유도 모른채 수백명의 국민이
국가에 의해 숨을 거둔겁니다.
◀INT▶김금연/ 영덕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어머님이 하는 소리가 늘 (시아버지가) 감자 캐러 갔는데 그 길로 가서 안 왔다고 많이 해요."
◀INT▶김정옥/영덕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그때 당시에는 보도연맹 그런 것도 모르고. 돌아가시고 그걸 이유로 삼았다고 해요."
◀INT▶원용한/ 영덕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죄라도 있어 죽었으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아무 죄도 없는데 와서 죽여버렸으니... 억장이 무너지죠."
지난 5월 제 20대 국회를 통과한
과거사법 개정안.
유가족들은 이제라도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규명돼, 위령비라도 세워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INT▶임홍규/ 영덕군유족회 총무
"약 한 100명(희생자 가족)만 소통이 되고 연락이 되는데 나머지 200명(희생자 가족)은 소통이 안 돼서 저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7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
진실과 화해를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MBC 뉴스 박성아입니다.
Copyright © Daeg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