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옛날 조상님들은 좋은 묏자리를 찾기 위해
음택풍수의 변화를 짚어보고
이른바 '명당' 자리에 조상 묘를 썼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묏자리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무리하게 명당을 차지하려다
소송을 당하는 '산송'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 호 영
◀END▶
조선시대의 좋은 묏자리를 잡는 일은
집안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안동 김택룡 선생이 남긴 조성당 일기를 보면
그의 나이 71살 때인 1617년 3월
지관 이자정을 초대해 아들과 함께
좋은 묏자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려는 욕심에
남의 땅에 몰래 시신을 묻는 '투장(偸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1721년에 작성된 권상일 선생의
청대일기에는 투장자를 잡는 데 수령이
늑장을 부렸다거나, 투장한 무덤을 파서 옮기게
했다는 기록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묏자리 갈등으로 법정분쟁도 빈번했으며 땅 주인이 산송을 걸지만 관청에서는
이장을 집행하도록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권세가들은 투장을 하고 산송에서 지고도
권력을 이용해 버티는 사례도
비일비재했습니다.
◀INT▶임노직 자료부장/한국국학진흥원
"이러한 갈등과 분쟁은 지역 주도권 다툼과
연계가 되어, 사족 간의 소송 뿐만 아니라 유력 명문가와 지역 관아와의 향쟁이 일어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조선후기 가문들의 명당과 투장, 산송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의 웹진 담談 9월 호에 상세히
들어있습니다.
(S/U)조선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면서 묏자리 명당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은 크게 줄었습니다.
이번 추석 명절 동안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가족 간 화목을 나누는 '마음 속의 명당'을
찾으면 어떨까요?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Copyright © Daeg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