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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을
한양 밖 지방에서 치르기도 했습니다.
전국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기 위한
일종의 지역할당 선발인데요,
200여년 전 안동 도산서원에서 열렸던
과거시험 '도산별과'가 재연됐습니다.
홍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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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과 도포를 갖춰 입은 시객 200여명이
안동 도산서원 앞마당에 모였습니다.
파발행렬이 도착하고, 정조임금이 써보낸
시험 주제, 시제가 발표됩니다.
이 날 시제는 옛 선현을 추억한다는 뜻의
'아사고인'. 퇴계의 묘비명에서 가져왔습니다.
즉석에서 시험관이 발표한 다섯자의 압운을
반드시 포함시키고, 운율에 시제까지 잘 살려,
여덟 줄의 '칠언율시'를 지어야 합니다.
◀INT▶이영순/경북대 대학원 한문학과
"특히나 오늘같은 경우는 '운자'가 너무 어렵게
나와서 어떻게 지을지, 시상이 떠오르지가.."
◀INT▶홍심두/한문교육원 대구강원
"그래도 한시 만의 멋이랄까? 그런게 있으니까
함축된 의미라는 것도 굉장히 많고.."
2백년 전 정조가 과거시험을 굳이 한양 밖에서
치른 건, 영남의 남인 선비들을 등용해
집권 노론세력을 견제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지역인재 할당과 탕평책이 결합된
조선시대 판 '특별전형'인 셈입니다.
◀INT▶권진호 박사/한국국학진흥원
"'별과'에 맞게 정조대왕께서 '초시'와 '해시'
를 생략하고, 바로 급제자를 낸 것 같습니다."
무려 만 여명이 응시했던 조선 후기
최대규모의 지방 과거시험 이었지만, 급제자는
단 두 명 뿐일 정도로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MBC 뉴스 홍석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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