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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호계서원의 위패서열 논쟁,
즉 '병호시비'가 관련 문중과 유림의 합의로
4백여 년만에 종결됐습니다.
서열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끝이 났고,
호계서원은 제 모습을 되찾게 됐습니다.
정윤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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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호시비', 4백년 분쟁의 중심에 있었던
서애 류성룡 문중과 학봉 김성일 문중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병파 또는 호파에 속했던 영남유림도
분쟁종식에 뜻을 모았습니다.
유림은, 퇴계를 중심으로 좌측에 서애,
우측에는 학봉과 대산 이상정의 위패를
배향하는데 합의했습니다
◀INT▶:류영하/서애 종손
"(병파나 호파) 어느 쪽이라도 가담하지 않으면
양반구실을 못했어. 병호시비가 오늘로 완전히
해소됐어. (아주) 기쁜 일이야"
◀INT▶:김종길/학봉 종손
"모쪼록 이것을 계기로 영남유림이 화합하고,
유교문화를 중흥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S/U) 병호시비의 발단은, 이 호계서원의
사당에 봉안될 위패의 서열을 둘러싼 분쟁이었습니다. 벼슬이 높은 서애를 앞세울 것인지,
나이가 많은 학봉을 앞세울 것인지 하는 그런
싸움이었습니다.
1620년부터 시작돼 1800년대
영남 4현의 문묘배향과 대산의 위패봉안 등으로 확대된 이 논쟁은, 대원군과 고종도
해결하지 못한 조선 최대의 분쟁이었습니다.
◀INT▶:김관용 경북지사
"조선에서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흘렀던 갈등
의 불씨가, 유림에 남아 있는 씨앗이 오늘 꺼진
겁니다. 참 자랑스럽고"
이 병호시비로 호계서원은 끝내 훼철됐지만,
조선말엽에는 영남의병의 도소, 즉 사령부로
기능했고, 의병과 독립운동의 자금조달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현재 안동 임하에 있는
호계서원은 안동댐 한자촌으로 이설돼,
사당과 강학당을 갖춘 제모습으로 복설됩니다.
MBC뉴스 정윤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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