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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청송에 황성옛터 노래비 건립

홍석준 기자 입력 2009-11-25 17:39:47 조회수 1

◀ANC▶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노래한
'황성옛터'의 작사가가
청송에 묻힌 사실 알고 계십니까?

왕평 이응호 선생의 황성옛터 노래비가
왕평 묘소 인근에 세워졌습니다.

홍석준 기자
◀END▶
◀VCR▶
effect...황성옛터 음원

이애리수를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가수 반열에 올려 놓은 '황성옛터'.

일제 강점기 시절,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의 만월대에 빗대, 나라 잃은
설움을 표현한 노랫말은 당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SYN▶이응린/작사가 왕평 동생
"(공연을 보고) 서울 시민들이 야단났습니다. 울고 불고 땅을 치고..일본 순사가 가만보니 큰일 났거든... 그래서 이 곡이 일제때 금지곡."

해방 이후 조용필.이미자 등
수많은 이들이 다시 불러 이제는 국민가요가
되버린 '황성옛터'의 노랫말은 당시
공연단을 이끈 왕평 이응호 선생이 썼습니다.

◀SYN▶이응린/왕평 동생
"고려가 망해서 만월대가 풀 속에 들어가 버렸다. 우리 인생도 일본놈 한테 당해서 우리가 이렇게 방랑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왕평 선생이) 중얼 거렸던 게 황성옛터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연과 아픔을 간직한 황성옛터의
노래비가, 왕평 선생의 묘소가 있는
청송에 세워졌습니다.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로 숨진
왕평 선생은 당시 일제의 감시를 피해서,
아버지가 주지로 있던 청송의
한 사찰 앞산에 묻혀 해방을 맞았습니다.

◀SYN▶황하동/청송 향토문화발전회
"국민들이 다 즐겨서 부르던 노래고 하니까,
(묘소)올라가는 도로도 포장하고, 공원을 해서
전국적으로 홍보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신파쟁이란 냉대 속에도,
암울했던 시대의 상처를 노랫말로 보듬은
왕평 선생의 정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청송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mbc 뉴스 홍석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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