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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니] ‘잊혀진 계절’의 잊혀지지 않는 남자 이용

1980년대 조용필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못해 절대적이었습니다. 연말 TV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조용필은 1980년부터 1986년까지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최고 인기 가수상을 차지했습니다. (1987년은 조용필이 수상 거부를 선언하면서 지금과 같은 축제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단 한 번, 조용필을 밀어내고 1982년 가수왕을 차지한 가수가 '잊혀진 계절'이 담겨 있던 1집을 발표한 이용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이 흘러나오듯 '잊혀진 계절'은 10월이 되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들을 수 있는 '연금송'이 됐습니다. 2007년 10월 31일에는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138번 방송되면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사랑받던 가수 역시 코로나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요. 올해로 데뷔 41주년을 맞은 이용 씨가 2022년 5월 25일, 코로나 이후 지방에서는 첫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열기로 가득했던 대구 콘서트 현장에서 ‘잊혀진 계절’의 주인공을 만나봤습니다.

Q. 코로나 이후 대구 첫 공연인데 감회는?

코로나로 가수들이 정말 너무 힘들어졌었고, 그리고 제가 대구에 가서 비록 작은 콘서트지만 콘서트를 한다고 그러니까 결과를 알려 달라고 그러는 사람이, 그런 후배 가수들이 지금 굉장히 많아요.

어쨌든 모든 가수의 희망이 서로 개척해 나가는, 새로 재기하는 그런 시발점이 되는, 그런 공연을 대구에서 하게 돼서 아주 너무 기쁩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울산 불패, 대구 불패라는 말이 있거든요? 여기가 반응이 원래 좋은 데예요, 대구가.

Q ‘잊혀진 계절’ 원래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는데?

원래는 그 잊혀진 계절이 저한테 오는 곡이 아니라 조영남 씨가 곡을 받았던 건데 그게 갑자기 저한테로 그냥 아주 퀵턴을 한 거예요.

그때 거의 동시에 신곡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지구레코드 B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조영남 씨는 A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데, 저는 고등학교 때 그분 열팬이었거든요? '어? 이 형님이 신곡 녹음을 해?' 그러고 휴식 시간마다 A 스튜디오에 가서 이렇게 '팬이에요' 하고 있는데 노래가, 피아노로 시작된 노래가 너무 좋더라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제 녹음 거의 끝나가는데 한 곡을 더 넣으라는 거예요, 임정수 회장님이.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그 전에, 얼마 전에 그 형님이 부르던 그 노래더라고, 피아노 그 노래.

그런데 그때는 9월의 마지막 밤이었는데 저는 악보를 보니까 10월로 바꿨어. "9월이었는데?" 그랬더니 "야, 판이 늦어지니까 10월로 바꾸라우" 이래서 갑자기 10월로 바꾼 거예요, 악보 이렇게 지우고.

Q ‘잊혀진 계절’의 인기는 어느 정도?

'바람이려오' 한 곡 가지고··· 대학 축제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초대 가수로 가고 그러는데, 어디 축제를 갔는데 어떻게 부르냐면요, 히트곡이 '바람이려오' 하나뿐인 사람이니까 먼저 팝송을 막 불러요. 부르고 난 다음에 "여러분, 뭐 또 듣고 싶은 노래 없어요?" 그러면 이제 제 히트곡을 아니까, "바람이려오" 이렇게 그걸 유도하는 거였죠. 서로 간에 다 뻔한 얘기지만. 그런데 그 대학생 중에서 "잊혀진 계절" 막 이래요. 이게 판이 나오고요, 방송도 아직 안 했어요. 라디오 한두 번 나왔을 때인데. TV도 한 번도 안 했을 때인데···

그래서 신기해서 "네?" 그러니까 "아, 10월 그거···" 대학생 중에 아직 진짜 뜨지도 않은 노래가 이렇게 신청 곡이 오네? 그리고 요새 막 뜨고 있는 '바람이려오' 보다도 이게 더 뜨네? 이건 크게 뜨나 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Q ‘잊혀진 계절’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는데?

오래됐어요. 한 10년 넘었을 건데 그때는 요새 같이 이제 음원으로 트는 시기가 아니에요. 레코드판 가지고 방송국에서 레코드 라이브러리에서 대여을 해서 PD들이 가져가서 그거를 이제 트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10월 마지막 전날이나 전전날쯤 되면 그걸 다 뽑아가잖아, 이미. 그리고 라디오 PD들은 그걸 대여했으면 쓰고서 바로 그다음 날 반환해야 하는데 자꾸 사람들이 작년 10월 마지막 날에도 없단 말이에요. 작년 10월 마지막 날에도 못 틀었어. 그러니까 미리 막 일주일 전, 열흘 전부터 그걸 다 해놓고서 그러니까 없는 거예요.

그렇게 된, 그렇게 어려운 레코드판 시절에 138회니까 그거참 큰 숫자예요. 그래서 단일 국가, 단일 곡, 그 기록을 그 당시에···

요새는 그 기록이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음원으로 얼마든지 무제한으로 틀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게 없어졌는데 그때는 레코드판 가지고 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거는 어려운 거구나, 더군다나 인구 오천만, 그 당시엔 오천만이 안 됐던 시절인데 거기에 어떻게 138회가 나오지? 해서 이제···

Q 많은 후배 가수가 '잊혀진 계절'을 리메이크했는데?

잊혀진 계절은 너무 R&B 스타일로 불러도 안 되고 그리고 그걸 무슨 랩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니가 나를 사랑하고 시월의 밤 만나서~" 이렇게 하는 게 있어요. 그거는 원래 오리지널 정서가 너무 사라져버려서 그런데 아이유가 노래한 건 정말 잘했다고. 저도 좀 충격받은 게 그 나이에 통기타를 잘 못 치거든요?

그런데 일부러 그 노래가 좋아서 일부러 그 키 가지고 통기타로 그걸 일부러 배우기 시작했대요.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 세대, 우리 세대는 처음 나왔을 때 150원 주고 악보를 사요. 그거 가지고 피아노도 연습하고 통기타도 연습하고 해서 노래 부르는데 지금 그런 세대가 아닌데 아이유가 기타도 그래서 샀어요. 악보도 그래서 샀어요. 그리고 이순신인가 무슨 드라마에서 PD가 그거 좀 부를 수 있겠냐? 해서 자기가 연습하다 보니까 너무 좋아서 자기가 취입까지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보니까, 제가 보니까 아이유가 부른 노래가 제일 꾸미지 않았어요. 멋도 안 부리고 아주 담백하게 불러서 참 잘했다. 이 생각을...

Q 원조 '연금송'이라는 건 어떤 의미?

저도 어떻게 보면 '연금송'이라고 할 수도 있고 10월이 달력에서 없어지지 전까지는 저는 아직도 활동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어떻게 보면 10월에, 잊혀진 계절이 저한테는 수혜곡이자 피해곡이라니까요?

왜냐하면 다른 곡들이 많이 있는데도 다 10월의 마지막 밤 얘기만 하니까. 그리고 신곡을 내놔도 요즘 그 ‘자유여’가 뜨고 있는데, 반응이 참 좋아지고 있는데 또 거기서 어 이거 좋긴 좋은데요. 잊혀진 계절보다는 못하대요. 이러면 제가 이게 수혜자가 아니구나, 이제는 피해를 볼 때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Q 성악 전공하시다 가요로 전향한 이유는?

성악은 뭐 아시다시피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그거는 레슨비가 굉장히 비쌉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그해에 월남에서 하던 사업이 잘되다가 갑자기 부도가 났어요. 아버님이 부도가 나고 망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성악 레슨이 아니라 그냥 고등학교 등록금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 돼서 그걸 갑자기 이제 바꿨고, 또 그 꿈을 우리 아들이 지금 이루어서 성악 교수가 됐어요.

노래는요, 노래 원래 잘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다가 아니에요. 많이 연습을 해야 되고 많이 발성을, 베이식을 가지고 기초를 다듬은 사람이 오래가고 또 듣기 좋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성악에 그 기초가 있었던 걸 지금 아주 굉장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Q 기억에 남는 대구의 추억은?

대구는 사실 제가 데뷔해서 처음 내려온 지방도 대구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사실은 길옥윤 선생님의 문하생 시절에 처음으로 그분의 색소폰, 무거운 색소폰 들고서··· 그때는 이런 KTX 이런 것도 없을 때잖아요? 특급 열차라는 걸 처음 타보고 그리고 대구역에, 거길 내렸어요. 여기 무슨 서울역보다 그렇게 차이 안 나는데? 그러고 처음 내려온 게 대구고···

내려와 보니까 사람들이 진짜 서울 말씨하고 다 다른 말을 하네? 그걸 처음 느꼈고, 그리고 다 공연 끝나고 올라갈 때 다시 그 대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시간이 안 맞는다고 거기 정면으로 약간 왼쪽으로 선술집 비슷한 게 서너 개가 있었어요, 옛날에.

거기를 간 게 제가 지방에서 처음으로 그런 술집을 가서 한 두세 시간을 그 선생님 모시고서 거기서 가볍게 맥주 한 잔씩 먹고 그랬던 데가 있어서 대구는 여러모로 저한테 처음입니다.

Q 가수 이용에게 10월 31일은?

10월 자만 들어도 저는 좀 설레기도 하고, 그리고 뭐든지 저를 이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든지 하면은 사람들이 이제 10월 얼마 안 남았네요? 이러기도 하고 10월 지나면 또 만났을 때 10월이 지나서 이제 뭐 하세요? 이런다고요, 다.

저는 모든 화재의 중심이 다 10월로 연관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10월만 활동하는 가수는 아닌데 왜 전부 다 10월로만 이렇게 얘기만 하실까?

그리고 또 요새 코로나 터지고 난 다음부터는 10월에 제가 집에 있고 어저께도 제 차가 안 나가는 걸 봤는데, 10월달인데도 오늘도 이용 차가 안 나가고 있네? 어떤 때는요, 너무 스케줄이 10월에 없으면 창피해서 일부러 차도 뭐 다른 데다 대고 그럴 때도 있었는데. 이게 코로나 터지고는요 10월에도 스케줄 없었죠. 재작년 10월에는 10월 마지막 날도 놀았다니까? 재작년 10월에도 굉장히 코로나가 극성이었거든? 그런데 작년에는 이제 그게 조금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의 전당, 큰 공연이 한 번 대박을 쳤고 그리고 이제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분위기가 좋아져서 오늘 같은 이런 공연도 하게 된 거고. 그게 또 더군다나 대구라서 참 좋습니다.

Q 앞으로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제가 아직도 41년 전의 그 노래를 그 키로 부르고 있단 말이에요? 목소리는 많이 늙었고 체력도 그때보다 좀 달리는데도 그 키로 아직 부르고 있기 때문에 제가 키를 낮추지 않으면 그 노래를 못 부를 정도로 그럴 때까지는 꾸준히 노래를 할 겁니다.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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