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작가와 예술가, 철학가들이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랜 세월을 이어오며 현대 문명에까지 다양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의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겠죠. '그리스·로마 신화'에 얽힌 다양한 의학 이야기의 세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신경과 전문의 유수연 교수와 떠나보시죠.
[유수연 신경과 전문의]
마지막 하나가 더 있는데요. 기억의 여신에 대한 건데요. 이거는 또 저와 관련된 질환군이 되겠습니다.
기억의 여신이라고 하는 여신은 사실 조금 이름이 낯설 거예요. 기억도 여신이 있나 하실 수 있는데, 사실 기억도 담당하는 여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게 되면 '므네모시네'라고 하는 티탄 신족, 제우스 이전에 살던 신족들인데, 우라노스와 가이아라고 하는 하늘의 신과 땅의 여신 사이에 태어난 딸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담당하고 있고, 사실은 므네모시네 자체는 이름을 들어도 누구야 하는데 이분의 딸들이 유명합니다. 이분의 딸들이 바로 예술을 담당하는 뮤즈 여신들이거든요. 므네모시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는데 무사 여신이라고 해서 9명의 딸이 있고, 모두 서사시·춤·애정신 이런 것들, 여러 가지 예술을 담당해서 뮤즈 여신이라고 불리게 되고. 요즘도 이제 영감을 받아 '나의 뮤즈다.' 이런 표현을 쓰잖아요. 딸들 때문에 덩달아 같이 유명한 분이 되겠습니다.
이분의 역할은 결국에는 보면, 이분의 이름이 사실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는데요. 기억 자체는 굉장히 중요한 게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거든요. 기억이 있어야 저희가 학습한 게 저장이 되고 결국 인간의 문명을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데요. 기억이 상실되는 질환을 저희가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게 되고 그게 영어로는 사실 암네시아(Amnesia)라고 하게 됩니다. 여기 암네시아 자체가 이 여신의 이름하고 관련이 되는데요.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사 ‘A’가 앞에 있고, 아니다는 뜻이고, 그다음에 여신의 이름에서 온 어근인 'Mne’가 나오는 거죠. 그다음에 상태,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sia’라는 전미사가 있거든요. 그래서 다 더하게 되면 '기억이 없는 상태, Amnesia'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기억상실증의 원인은 보통은 치매나 뇌경색 같은 신경계 질환 같은 게 생겨서 오는 기질적 기억상실증이 있게 되고요. 약간 심리적으로 어떤 충격이나 좀 힘든 것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게 되는, 기억이 없는 상태가 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억상실증의 어원이 므네모시네라는 여신하고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고요.
기억의 여신이 이렇게 있는데, 또 재밌는 게 망각의 여신, 망각에 관련된 요소도 신화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더 보여드리면 저희가 망각의 여신이라고 부르는 '레테'가 있습니다. 이 레테는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의 딸이기도 하고, 혹은 말에 따라서는 하늘 혹은 대기, 창공의 신 아이테르와 가이아 사이의 딸이라는 그런 설도 있습니다. 이 여신의 이름에서 기원된 단어가, 레테에서 나온 게 'lethargy'거든요. 약간 잠들어 있고 무기력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인데, 어떻게 보면 망각의 신인데 단어는 무기력한 상태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왜 lethargy가 됐을까 생각을 해 보면 이게 망각의 강을 나타낸 거거든요. 망각의 여신이기도 하지만 또 강의 이름도 레테라고 있어요. 망각을 담당하는 강인데, 아까 말했듯이 저승에 가는 길에 여러 가지 강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기억을 다 잃게 하는 강이 하나 있거든요. 그러니까 죽은 사람들이 다음 생으로 가기 전에 이 강물을 마시면 이번 기억들이 다 사라지는 거, 이번 생의 기억은 다 사라지고 약간 멍멍하고 멍한 상태가 되거든요. 그게 늘어진 상태가 약간 lethargy 기면, 무기력증 상태와 비슷해서 그 이름이 lethargy의 어원이 되고··· 어쨌든 기억을 잃게 되는 이런 강물도 있다고 한번 알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성 이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