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흔적 곳곳에 남아 있는데···문화재 조사 없이 죽곡산 관통 도로공사 벌인 대구 달성군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대구 죽곡산 일대는 선사시대 문화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입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공간정보서비스에 유형 문화재로 등록된 것만 죽곡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돌무덤인 고분군 2기와 삼국시대 산성 등 3개입니다.
과거 이 지역에 살던 조상들의 모습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유적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 터에 2023년 11월 말, 달성군이 도로공사에 착공했습니다.
죽곡산을 관통해서 강정보 일대 마을과 산 너머 죽곡2지구를 잇는 연결도로를 만드는 겁니다.
달성군은 강정보와 디아크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 우회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사업 추진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달성군이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지 않은 채 공사를 해버렸다는 겁니다.
매장 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건설공사를 할 때 공사할 땅에 문화재가 분포돼 있는지 확인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죽곡산 일대처럼 과거 매장 문화재가 발견됐고, 문화재가 더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지표조사', 그러니까 땅을 파지는 않고 땅 위에 나타난 유적과 유물, 지질, 생태 등을 확인하는 조사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지자체장과 문화재청에 보고한 뒤 심의를 거쳐 공사를 해도 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담당자 바뀌며 지표조사 빠뜨렸다" 황당 해명한 대구 달성군
달성군의 해명은 황당합니다.
문화재 담당과에서는 2018년 도로 설계 단계에서 지표조사 대상이라고 확인하고 통보했지만, 건설과로 넘어가며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다 보니 빠뜨렸다는 겁니다.
달성군청 문화재 담당 부서 관계자 "실제로 삼국시대 토기 파편이나 이런 것들이 쉽게 확인이 되거든요? 명백하게 '매장문화재 유존 지역'으로 봤고, 그래서 지표조사를 하도록 조치를 했었죠. 협의는 다 나갔습니다, 2018년에,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갔죠, 저희 쪽에서는. 그런데 안 한 거죠. 놓쳤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가 잘 없는데, 담당자가 계속 바뀌고 하는 과정에서 놓친 모양이에요."
그러는 사이 문화재가 남아있는 산에 나무가 잘려 나가고, 굴착기로 땅이 파헤쳐지고, 암석은 쪼개지고 부서졌습니다.
지표 조사 없이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근처에 살고 있는 생태학자가 달성군에 지표조사를 했는지 확인해 보며 드러났습니다.
이종원 전 계명대 교수 "12월 초인데, 아파트 단지 길가에 펄럭이는 현수막 하나가 있더라고요. 나무를 다 밀고··· 무슨 도로공사를 한다고 해놨길래··· 오래전부터 제가 이 산을 다니면서 시민들을 상대로 역사 교육할 때 중요한 거점으로 이용했어요. 거기서 발견한 유물이나 유적도 있고 해서 굉장히 소중하게 여겼던 산입니다. 그런 산을 가로질러서 길을 낸다고 하니까 찾아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역사성이 크고 아주 귀한 내용이 있는데, 증거물도 있는데, 이것을 다 무시하고··· (달성군에) 지표 조사했느냐고 물어봤더니 지표조사 하지 않았다고 회신이 오더라고요."
'기우제 유물' 윷판형 암각화 잇따라 발견
이후 학계와 시민단체가 죽곡산을 찾았습니다.
연구 가치가 높은 '윷판형 암각화'가 여럿 발견됐습니다.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쪼개진 바위 표면에 여러 개의 둥근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깊게 파여 있는데, 선사시대 조상들이 별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점치고 풍년을 바라며 기우제를 지냈던 흔적입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하늘의 별자리를 땅에다 표현해 놓고 그것의 이치를 알고 또 항상 하늘에 경건하게 예를 지키면서 농사와 농경이나 먹고사는 것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해달라고 하는 이런 기원적인 제사 형태의 유적도 되는 거죠. 이게 한 36cm가량, 깊이가 1cm가 넘어요. 이 유적은 굉장히 대형에 속한다, 굉장히 중요한 유물이다··· 대구 이북 지역에서 윷판 유적이 나온 건 제가 알기로는 이게 처음입니다. 보통 이런 윷판이 나오면 한 판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판이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문가들끼리 한 번 현장 조사를 공동으로 해보자고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전문가들은 죽곡산 일대가 청동기 시대 거대한 제사 유적지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죽곡산 일대에 암각화가 집단으로 매장돼 있을 거라는 겁니다.
또 산성의 석축을 조사해 보면 중요한 암각화 유물들이 발견될 거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유적들을 들여다보면 대구 지역 민족의 기원까지,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구 가치가 큰 암각화와 유물들이 달성군의 도로공사로 밟히고 부서진 겁니다.
대구 달성군, 뒤늦게 "정밀 조사하겠다"···혈세로 유적 훼손한 꼴
달성군은 2023년 말, 부랴부랴 공사를 멈추고 문화재 지표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대구 달성군 관계자 "지금 사업 면적이 15,761.6㎡거든요?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서 시굴 조사 대상 구역이 13,236.6㎡고요. 그리고 발굴 조사를 해야 하는 대상 구역이 1,415㎡, 이렇게 두 가지 구역으로 나눠서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질 겁니다. 정밀 조사라고 보시면 돼요. 발굴조사를 진행하라고 저희가 행정적인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시굴 조사나 발굴 허가는 따로 문화재청에 허가를 받아서 진행을 해야 해서 거기에 따른 행정 처리 등등 하면 거의 여름~가을 정도까지 계속 조사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비용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많이 듭니다. 몇억 대가 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발굴조사는 최소 6개월 이상, 비용만 수억 원이 들 전망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유물과 유적을 보전하며 공사를 이어갈지, 현상 그대로 지키기 위해 사업을 아예 없던 일로 할지 정합니다.
이미 토지 보상비와 공사 설계비로만 15억 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기약 없이 공사가 중단돼 피해를 본 시공사에 보상도 해줘야 합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무지몽매한 행정에 혈세를 들여 중요한 유적만 훼손한 꼴이라며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규탄했습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행정 기관에서 건설공사를 할 때 당연히 거쳐야 하는 문화재 조사를 안 했다? 이건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이상하고. 문화재 정밀 발굴에 들어가서 훼손한 부분이 확인되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고. 문화재청도 강력하게 직권조사를 해서 유적을 보존 조치해야 합니다."
또 시민사회는 죽곡산 일대를 도로 건설로 망가뜨릴 게 아니라 유물을 잘 찾아 모아서 선사인들의 흔적을 탐방하거나 교육할 수 있는 미래 세대를 위한 학습 공간으로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