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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2·28 63주년···'야당 도시'에서 '보수의 심장'이 되기까지

◀앵커▶
우리나라 첫 민주운동, 대구 2·28입니다.

부패한 독재 정권에 정면으로 맞선 2·28은 2023년으로 63주년을 맞습니다.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이 가려져 있고, 역사적 평가도 미흡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대구mbc 취재진은 2·28 역사를 추적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여러 귀한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관련 보도를 이어갈 텐데요, 먼저 민주의 봄 2·28이 왜 대구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재한 기자와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2·28이 자유당 말기 1960년이니까 벌써 63년이 지났군요?

◀기자▶
네, 1960년은 자유당 이승만 정권 말기로, 무능과 부패가 극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그해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었는데, 당시 민주당 조병옥 후보는 유세 기간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관심은 대통령 선거가 아닌, 부통령 선거에 쏠렸습니다.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변고가 생기면 부통령이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인데요.

당시 대구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야당 도시였습니다.

4년 전 1956년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장면 후보가 무려 82%의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렇죠. 지금은 대구가 보수의 심장이라 불립니다만, 당시만 하더라도 정반대 상황이었죠?

◀기자▶
그런 가운데, 2월 28일 일요일이었는데, 대구에서는 민주당 장면 후보 연설회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야당 유세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걸 막기 위해 8개 국공립학교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습니다.

일요일 등교 이유는 예정에 없던 시험이나 영화관람, 토끼사냥 같은 어이없는 것들이었는데요.

2월 말이니까 3학년은 졸업했고, 곧 3학년이 되는 2학년을 중심으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긴박하게 움직인 당시 상황을 다 설명하기는 시간상 힘들 것 같고요.

대략 1,200명 이상의 학생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고, 220명 이상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앵커▶
가장 기본적인 2·28의 큰 줄기입니다만, 사실 시민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기자▶
두류공원에 2·28 기념탑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촬영차 가서 시민 여러분을 만나 물어봤는데요.

물론 2·28에 대해 아주 자세히는 아니지만 설명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은 전혀 모른다거나 배운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3·1운동과 연관 지어 알고 있는 분도 있었고요.

◀앵커▶
대구에서도 사실 확인이나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왜 그런 걸까요?

◀기자▶
2·28은 마산 3·15와 4·19로 이어져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냈습니다만, 1년 뒤 경북 구미 출신의 박정희 소장이 5·16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군사 정권은 5·16을 혁명으로 미화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1년 전 있었던 2·28이나 4·19 의미는 축소하게 된 겁니다.

군사정권의 논리는 이런 거죠.

혁명이란 게 작년에 하고 1년 지나 올해 또 하고, 이런 게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운동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내지 폄훼하게 된 겁니다.

◀앵커▶
박정희 정권이 끝난 뒤에도 군사정권이 이어졌는데, 그런 부분도 적잖은 영향이 있다고 봐야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박정희 집권 18년이 끝난 뒤에도 대구·경북 출신이 정권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대구·경북은 점점 보수의 중심으로 굳어져 갔고, 2·28 의미는 퇴색되고 역사적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의 윤순갑 명예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윤순갑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우리 고향 사람이 나라를 한번 잘해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분위기가 정부가 잘못 한 데 대해서 엄하게 꾸짖고 저항해야 한다는 2·28 정신을 그냥 쓸려나간 거다 생각하죠."

그리고 2·28이 부정부패한 이승만 보수 정권을 정면 겨냥한 민주운동이라기보다 일회성 돌발 사건으로 인식하려는 경향도 있었는데요.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채장수 교수의 말입니다.

◀채장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28이 보수세력에는 국부로 일컬어지는 이승만에 대한 저항이라는 거죠. 이것에 어색함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1960년 대한민국 민주의 봄을 시작한 2·28의 많은 중요한 사실은 지금도 보수화된 지역 정서에 묻혀 있는 겁니다.

취재진은 2·28 취재를 하면서 이런 보수 정서에 묻힌 사실이나, 외신이 바라본 2·28 등 여러 귀한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12월 8일과 25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특집 다큐 '1960 대구, 민주의 봄'을 2부작으로 방송합니다.

또 17일 저녁 뉴스데스크를 시작으로 다음 주까지 뉴스를 통해서도 집중해서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조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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