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시민 반대에도 대구에 '박정희 동상'···대구시의회 조례 통과
대구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2개를 건립하려는 계획이 뜻대로 이뤄지게 됐습니다.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에도 조례는 결국 대구시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지난 5월 2일에 열린 대구시의회 제308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에 관한 조례안’과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기 위한 예산 14억 5천만 원이 최종 의결돼 통과됐습니다. 본회의에서 시의원 32명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육정미 의원만 반대 의견을 냈고 표결에서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나머지 31명은 찬성 의견으로 압도적으로 통과됐습니다. 앞서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지난 4월 26일에 해당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습니다. 당초 3줄짜리 조례안에 대해 시의원들도 부실한 조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 기념 사업을 심의하는 기념 사업추진위원회 설치 조항을 새롭게 추가하고 심의 과정에 필요한 경우 여론 수렴,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했습니다. 또 위원회는 15명 이내로 구성하되 민간위원이 과반수가 되도록 정했습니다.
공론화 부족 질타에도 결국 '홍준표식 밀어붙이기'
이 문제를 두고 늘 나왔던 말 중 하나가 ‘공론화 부족’이었습니다. 비록 조례를 통과시킨 의원들이지만 상임위에서는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고 질타하는 의원들이 많았습니다. 시의원들은 조례가 부실하고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며 ‘홍준표식 밀어붙이기’라고 비판했습니다. 김대현 의원은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고 군사 작전하듯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홍준표 시장의 방식이 과연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따졌습니다. 김 의원은 “의안을 제출해 놓고 이게 공론화의 시작이라고 하는 궤변이 어디 있느냐”며 “의회에 대한 눈곱만큼의 배려도 없고 존중도 없다, 앞으로 있을 홍 시장의 2년이 더 우려스럽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성오 의원도 “대구시민의 세금으로 동상을 건립한다면 충분히 공론화를 거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홍준표 시장이 공론화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독단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류종우 의원은 “대구시가 긴축재정으로 가고 있는데 동상을 세운다는 기조가 맞지 않고 예산이 쓰여야 할 데 안 쓰이고 여기에 쓰인다는 부분에서 시민들이 반대할 수 있다”라며 “대구시가 너무 미흡하고 미성숙한 행정을 집행한다고”고 말했습니다.
임인환 위원장도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추진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굉장히 안타깝다"라며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는 행정을 보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는 지속해서 반발···대구시의회는 퇴장시킨 후 조례 통과
시민단체들의 반대와 반발은 조례 통과를 앞두고서도 이어져 왔습니다. 조례가 통과되는 날인 2일 오전에 대구시의회 앞에 모인 시민단체들은 대구시의회가 부결시켜야 한다며 촉구했습니다. 100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시의회를 둘러싸고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박정희 동상 반대와 지원 조례 반대를 외쳤습니다. 본회의가 시작되자 일부는 방청석에서 지켜봤는데 조례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의원석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며 조례안 통과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이만규 의장은 이들을 모두 퇴장시킨 후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조례가 통과될 즈음 대구시의회 앞에서는 인혁당재건위 후손 등으로 구성된 (사)4.9 인혁열사계승사업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몰린 아버지의 감금과 죽음으로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누명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시절 벌어졌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법살인입니다. 이들은 “박정희 동상을 건립한다니 무슨 가당찮은 일이냐?”며 “제발 동상 건립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조례가 결국 통과되자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수막을 펼치고 우리의 주장을 말하고자 했지만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끌려 나왔다”라며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오늘은 대구시장과 대구시의회가 존립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린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홍준표 시장과 1대 1 토론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제안했는데, 동상을 세우면 안 되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박정희는 ‘다카기 마사오’로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고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쓴 친일파라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해방 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발각되자 수많은 동지의 이름을 적어낸 공산주의자였고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무한 권력욕의 소유자였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무고한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투옥하거나 고문한 것은 물론이고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을 조작했을 뿐 아니라 8명을 사형시켜 유신 독재 시절 한국의 인권 수준은 세계 최하위였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구시가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이유로 산업화를 들었지만, 이정우 교수는 박정희의 경제 모델의 핵심은 만주국 모델로 만주국을 통치한 일본에서 배운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만주국의 고성장은 파쇼독재에 기반을 둔 총동원 체제에 의한 양적 성장이고 이런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고성장을 달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양적 성장은 쉽지만, 질적 성장하려면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많은 뇌물을 받아 부도덕했고 부동산 투기로 전국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오르게 했을 뿐 아니라 도덕적이지 않았고 포악성마저 보였다고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 "정치적인 이유로만 반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박정희 동상 건립을 둘러싼 논란을 부른 홍준표 시장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홍 시장은 지난달 25일 자신의 SNS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화의 출발인 대구에 산업화 정신을 기리자는 동상을 건립하는 것은 대구시민의 뜻과 자기 뜻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에 대해서는 ”늘 반대만 일삼는 그들의 억지를 받아준다면 이것이야말로 대구시민들의 뜻에 역행하는 처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홍 시장은 “정치적인 뜻도 없는데 정치적인 이유로만 반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지난달 22일 열린 대구시의회 본회의에서 ‘박정희의 산업화 정신을 대구가 기리지 않고 일부 좌파 단체가 주장한다고 거기에 매몰돼 우왕좌왕하는 것은 대구의 산업화 정신과 2.28 자유 정신을 훼손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치적 뜻이 없다면서 좌파니, 뭐니 하며 스스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번 대구시의회의 결정으로 조례와 동상 건립비가 모두 통과된 상황입니다. 앞으로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변경하고 3m 높이의 동상을 세울 예정입니다. 또 남구 대명동에 건립 중인 대구 대표도서관 앞 공원도 박정희 공원으로 명명하고 6m 높이의 동상을 세웁니다. 홍준표 시장은 지난 3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 조금 작게 세우겠다고 했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의 높이는 6.5m니까 이보다 약 50cm 정도 작습니다. 하지만 구미에 있는 동상은 높이가 5m인데 이보다 1m가 더 큽니다. 시민단체들은 하지만 대구시가 동상을 건립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막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② 여전히 '위험한 일터'···대구 노동자 실태조사
5월 1일은 세계 노동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터에서 위험을 느끼며 일을 하고 있다는 조사가 발표됐습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지난 2일부터 19일까지 ‘대구 노동 안전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지역 건설업, 제조업, 공공 부문 노동자 858명이 답변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일하는 노동 현장이 ‘위험하다’라고 느낀 노동자는 65.4%였고 안전하다고 느낀 노동자는 35.54%였습니다. 이중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절반 이상인 54.08%가 작업 현장과 노동환경이 위험하다고 응답했고 건설업을 제외한 노동자 중 위험하다고 답한 비율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41.62%로 50인 이상 사업장 38.74%보다 높았습니다.
또 위험한 작업인 것을 알면서도 일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 수준인 48.65%가 그렇다고 답했고 특히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73.48%가 ‘위험한 작업인 것을 인지하면서 일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32.56%가 위험한 작업인 것을 알면서도 일했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는 59.49%가 위험한 작업을 해야 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 처리해야 하는 데 개인적으로 해결을 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질문에 ‘개인적으로 해결하거나 참는다는 답변이 37%로 가장 높았습니다. 또 회사와 이야기해 공상 처리한다는 답변은 35%, 산재 신청을 한다는 답변은 28% 순이었습니다.
산재 처리하지 않는 이유는 ‘불이익 걱정’이 40%로 가장 많았고 '산재 신청이 되는지 몰라서' 라고 응답한 노동자도 22%나 됐습니다. "산재 신청 방법을 몰라서"라고 답한 노동자도 13%였습니다. 이외에도 경미한 부상이거나, 회사가 어려워서,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 산재 처리하지 않았다고 답한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50인 미만도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하는데 안전보건관리계획이 미 구축된 사업장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 중 56.4%(96명)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등 소규모 사업장은 노동자 안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월 27일부터 산업 재해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안전 관리 기준 등이 지켜지지 않고 있단 평가가 많았습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계획이 구축돼 있지 않다'고 답한 노동자의 비율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12.6%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39.4%에 달했습니다. '안전 업무 담당자를 선임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비율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49.7%로, 50인 이상 사업장(11.4%)보다 38.3%포인트 높았습니다. 이처럼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확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느끼는 일터에서의 불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대구MBC 이태우 기자, 조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공동 취재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