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 사기가 전국 곳곳으로 퍼지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는 피해자 대다수가 극심한 우울함에 빠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고 있어 나날이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도 17가구가 한꺼번에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있는 도시형생활주택에 사는 오 모 씨는 최근 날벼락 같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원, 월세 20만 원에 계약을 했는데 건물 주인이 소유권을 가진 신탁회사의 동의 없이 자신과 임대차 계약을 했다는 겁니다. 건물 주인이지만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임대 계약 자격도 없고 전세금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오 모 씨(피해자) "신탁(회사)에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었대요. 그래서 계약하신 분들은 전부 다 불법이라는 거예요. 살고 있는 거는 불법이라는 거예요. 저희는 이게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세금을 구제받는 게 최우선이죠"
이런 사실은 건물 주인이 4억 원가량의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아 5월 2일 같은 건물 다섯 집이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에 넘어가면서 드러났습니다. 피해 가구는 모두 17곳으로 전세보증금은 15억 5,000만 원에 이릅니다.
김 모 씨(피해자" "자기(임대인)는 신탁회사와 이미 얘기를 다 했다. 거기서 동의를 다 했다. 내가 이 사람들 하고 거래하고 계약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동의를 다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건물 주인은 2017년 6월 부동산신탁회사와 부동산담보신탁 계약을 맺고 대구 모 신용협동조합으로부터 24억 원가량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건물 주인 "지금 입장이 많이 난처해졌어요. 세입자들 하고 나하고 전부 다 이 계기로, 은행에서는 다 협조적으로 나왔는데 지금 현재로는 안 되니까 오히려 세입자들이 피해를 더 보고 있거든요. (변호사가) 자세한 건 얘기하지 말랍니다"
부동산신탁회사는 문제가 발생하자 자신들과 관계없는 임대차 계약이라고 밝혔고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공매를 중지시켰습니다. 하지만 건물주에게 돈을 빌려준 신용협동조합은 건물에서 나가달라는 명도 소송에 들어가겠다고 피해자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정 모 씨(피해자) "저희한테는 법대로 명도 소송과 변호사 선임을 해서 명도 소송을 진행할 테니 너희가 나갈 준비를 해라. 이렇게 저희한테 이야기하더라고요"
대구 북부경찰서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허점투성이 '부동산담보신탁'을 통한 전세 사기, 어떻게 이뤄졌나?
대구 북구 전세 사기 의혹의 중심에는 '부동산 담보 신탁'이 있습니다. 먼저 부동산 신탁회사는 부동산 신탁업을 하는 금융투자회사를 말합니다. 여기서 '신탁업'이라는 것은 고객이 재산을 맡기고 그 대가로 신탁보수라고 하는 수수료를 받는 금융 서비스업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신탁은 ‘부동산담보신탁’으로 원래 소유주가 부동산신탁회사에 소유권을 넘기고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상품입니다. 부동산신탁회사는 위탁자인 원래 소유주에게 수익권증서를 교부하고, 원소유주는 이 수익권증서를 근거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습니다.
문제는 원래 소유주는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겼기 때문에 세입자와 임대차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신탁회사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는 가능하고 이럴 경우에도 전세보증금을 '신탁회사의 계좌'에 입금해야 합니다. 신탁회사의 동의를 얻지 못한 원래 소유주와 임대차 계약을 하는 것은 집주인이 아닌 사람과 계약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세입자들은 임대차 계약을 하기 전에 등기부등본을 떼서 근저당이 있는지 확인하기 마련입니다. 집주인이 개인 임대업자인 경우에는 대출 등으로 인한 근저당이 잡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사나 시행사 같은 회사가 직접 전세를 놓는 경우에는 집이 신탁회사가 소유권을 갖는 신탁등기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신탁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간 경우, 등기부등본에 근저당이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있다는 사실만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위탁자인 원래 주인과 수탁자인 신탁회사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했는지 알아야 주인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 금액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주인과 신탁회사의 계약 내용을 담은 것이 '신탁원부'인데요. 신탁회사는 소유권을 넘겨받으면 법원 등기국에 신탁등기를 합니다. 따라서 집에 금융기관 대출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등기소에 가서 신탁원부를 떼야 합니다.
제 역할 못 한 공인중개사···불법 임대차 계약 함정에 빠진 세입자
집 주인과 소유권자가 다르면 임대차 계약을 하기 전 찜찜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세입자들도 계약 전 공인중개사에게 문제가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공인중개사들이 기본적인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동산신탁회사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할 때는 임대인이 신탁회사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신탁회사가 소유권을 넘겨받아서 원래 소유주는 임대차 계약을 할 권리가 없기 때문인데요. 원래 소유주가 임대차 계약을 하려면 반드시 신탁회사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계약 때도 동의서 같은 관련 서류와 신탁원부를 세입자에게 제공해야 하고 전세보증금은 신탁회사 계좌로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대구시 북구 집단 전세 사기 의혹 사건의 경우, 이런 것들이 모두 무시됐습니다. 피해를 당한 17가구 세입자들은 대부분 각자 다른 공인중개사들을 통해서 계약을 맺었지만 이런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김 모 씨(피해자) "처음 계약을 할 때 아는 지인분 부동산을 통해서 해서, 자기(건물주)는 신탁회사는 이미 얘기를 했다. 거기서 다 동의를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제가 그 부분도 또 확인을 했어요. 제 지인 분(공인중개사)한테···"
특히 전세 세입자 중에는 집에 융자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공인중개사의 괜찮다는 말에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경우도 있습니다. 세입자 중 유일하게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를 받은 오 모 씨는 융자금 1억 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공인중개사에게 문제가 없냐고 물었지만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건물 전체 가격은 이십몇억 원하는데 거기에 1억 원이 잡혀 있는 거는 아주 작은 소액이라서 괜찮다고 계약을 부추긴 것입니다. 나중에 일이 터지고 난 뒤에 보니까 17가구 모두 1억 원 이상의 대출이 있었습니다. 해당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연락조차 닿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공인중개사들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 모 씨(피해자 대표) "동의서 발급해 주기로 한다는 특약 사항 자체가 계약 후에 이루어지는 거지, 계약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면서 그런 것까지 상세하게 얘기할 거면 협회를 통해서 소송을 하시라 이렇게 나옵니다."
신탁원부 확인해도 대출 규모 알 길 없이 '누락'···고통받는 전세 피해자들
대구 북구 집단 전세 사기 의혹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신탁원부를 확인해도 원천적으로 대출 규모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법원이 발행한 신탁원부에 건물주가 신협에서 받은 대출 규모를 알 수 있는 수익권 증서 발행 금액 38억 900만 원이 기록된 별첨 부분이 누락됐기 때문입니다.
수익권 증서 발행 금액은 등기부등본의 근저당권 채권 최고액처럼 대출 금액의 130%를 잡기 때문에 건물주는 약 30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신탁원부에 이런 내용이 빠졌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처음부터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신탁회사는 약 6년이 지난 5월 12일 신탁원부에서 누락된 부분을 다시 등기를 했습니다. 신탁회사의 등기 업무를 대행했던 법무사 측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무사 측 관계자(부동산신탁회사 등기 업무 담당) "꼭 들어가야 할 사항들이 빠지게 되면 그러면 등기관이 저희한테 다시 올려달라고 이렇게 보정 요청을 하는데 이게 등기법상 반드시 기재가 돼야 하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법무사 측의 설명과 달리 신탁원부와 똑같은 내용이 법원에 등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태근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장)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게, 우선수익권 내용은 누락되고 공시가 된 거죠. 실제로 우선수익권 내용이 누락된 것이 어떤 법률적 효력이 있느냐 그게 쟁점이지···"
대구지방법원도 이런 사실을 확인 안 하는 등 신탁원부 등기에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대구지방법원 등기국은 신탁원부에 적힌 페이지 숫자와 실제 페이지 수가 다른데도 버젓이 등기한 것입니다.
대구지방법원 등기국 관계자 "그런 부분이 이제 장 수가 그게 아마 대량으로 했는지 모르겠는데 매 수는 당연히 맞다고 보고 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 당시에···"
6년 동안 신탁원부가 잘못 등기된 사이 건물주는 신탁회사의 동의도 없이 전세 세입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임대차 계약을 해 왔습니다. 만약 신탁원부에 대출 금액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누락되지 않았더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태운(전세 피해자 대표) "애초에 신탁회사에서 신탁원부를 제대로 법원에 등록했다면 계약 전 또는 계약 시 신탁원부를 본 우리 모든 계약자들은 이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과 재발 방지 대책은?
신탁등기로 인한 전세 세입자들의 피해를 막으려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신탁등기와 관련한 전세 사기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신탁등기와 관련한 피해 상담 건수는 2018년 212건, 2019년 343건, 2020년 348건, 2021년 297건, 2022년 354건으로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매년 많은 서민이 함정에 빠져서 전세보증금을 날리고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김태근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장) "그러니까 이런 사건이 많이 터지면 결국은 신탁 제도도 개선하자라는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실제로 만약에 이걸 원칙대로 했으면 그냥 주택 소유자가 주택 신협을 상대로 대출을 받았으면 세입자들은 분명히 선순위 담보권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거에 근거해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지 말지 그다음에 임대 보증금을 얼마나 줄지를 판단을 할 수가 있다고요. 그런데 현행 신탁 제도가 그걸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신탁등기를 악용한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신탁등기 관련 정보를 직접 표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부동산 신탁등기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습니다. 현재 부동산 등기부등본에는 신탁원부 번호만 확인할 수 있고 신탁회사의 대출 규모 등 구체적인 정보는 나오지 않고 있는데요. 대법원은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향후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신탁등기 관련 정보를 직접 표기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입니다.
정부는 전세 사기로 억울한 죽음이 잇따르자 피해자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돕는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부산시는 지난 4월 전세 피해지원센터를 열고 법률 상담과 행정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울산시는 피해자 지원 TF를 구성하고 임시 거처 27채를 마련하고 피해자들에게 제공할 계획입니다. 보증금 없이 시세의 30% 임대료에 최장 2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했습니다. 또 4인 가구를 기준으로 162만 원의 생계비도 긴급 지원합니다.
그러나 대구시는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 '임대차 사이렌'에 따르면 대구의 전세 보증 사고는 2023년 1분기 34건에 피해액은 94억 8,200억 원에 이릅니다. 비수도권 가운데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습니다. 이는 대구도 하루빨리 전세 사기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상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당한 시민들을 돕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하지만 대구시가 지금처럼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다면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와 대구시는 억울하게 길거리로 쫓기게 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돕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