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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낙동강 페놀 사태 ② '페놀 수돗물' 피해자의 53.8%는 임산부 | 시민의 품격


'활활 타는 불덩어리' 페놀···당시 대구시 수돗물의 페놀 수치는 WHO 허용치의 110배
페놀이 살에 닿으면 살이 타버립니다. 이 때문에 염산에 비교하기도 하고 활활 타는 불덩어리라는 표현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이런 페놀의 잔류 허용치를 극히 낮게 책정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대구 수돗물의 페놀 수치가 최고 0.11ppm으로 우리나라의 최대 허용치인 0.005ppm의 22배였고, 세계보건기구(WHO) 허용치인 0.001ppm의 110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그렇다면 염소와 페놀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클로로페놀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신재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클로로페놀, 염소화페놀은 안 그래도 분해가 안 되는 페놀에 염소까지 붙어서 더 분해가 어려워진 물질입니다. 어떤 물질이든지 염소가 붙게 되면 분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환경에서 분해되지 않는 PVC 같은 플라스틱이나 잔류성이 긴 농약에 이런 염소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덩어리 같은 페놀에 염소가 붙어서 잘 분해되지도 않는 겁니다. 이놈들은 우리 몸 세포의 지방에 끼어들어 가기가 쉬워지고 DNA에도 영향을 크게 미쳐서 강한 발암성을 띠게 됩니다. 수돗물에 이런 발암물질이 있다는 것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수돗물은 가정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음식점처럼 장사하는 곳에도 들어갔습니다. 당시 수족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일, 아파서 한약을 달여 먹었는데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 일, 수돗물로 김치와 장을 담갔는데 악취가 심해 다 버린 일, 콩나물에서 악취가 나서 다 버린 일 등 당시 대구시에 신고된 페놀 피해 보상 신고 건수는 4월 말까지 1만 3,455건, 금액으로는 무려 160억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OB맥주 쏟아버리기 대회'···두산 제품 불매 운동 벌어져
시민들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1991년 3월 29일에는 3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수돗물 페놀 오염 시민단체대책협의회'' 소속 회원 50여 명이 두산빌딩 앞에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당시 두산 계열의 OB맥주 40병을 길바닥에 쏟아버리는 'OB맥주 쏟아버리기 대회'를 10여 분간 가졌습니다.

OB맥주뿐 아니라 두산의 전 제품 불매 운동도 벌어졌는데요, 전국 슈퍼마켓 연합에서는 두산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고, 피해 사례 접수와 보상 서명 운동, 관계기관 및 기업 고발 조치 등 두산그룹 전체에 대한 전 국민의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재미있는 부분은 이런 상황에서도 혜택을 보는 이는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OB맥주가 엄청난 매출 감소로 타격을 입자 당시 만년 2등이었던 하이트 맥주가 1등을 차지합니다. 지하 150m의 100% 암반 천연수로 만든다는 광고를 내걸고 틈새시장을 공략한 거죠. 우리는 깨끗한 물 쓴다, 이걸 내세운 겁니다"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접수한 피해 건수는 1,617건···임산부 피해가 53.8%
페놀 피해 보상 신고 건수 중 131건은 임산부들이 신고한 내용인데요, 당시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로 인해 유산을 하거나 기형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공유산을 한 임산부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4월 30일까지 접수한 피해 신고도 있었는데요, 모두 1,617건이었는데 임산부 피해가 663건이었고, 그중에 유산이 225건이었습니다. 전체 피해 건수의 53.8%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대부분은 복통, 설사, 구토, 유산, 목이 타는 듯한 통증, 피부 가려움 등이었고 정상이던 아이가 산달에 사산되거나 기형아를 출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그전까지만 해도 환경운동이 특히 지역에서는 생소했고, 정부 기관이나 기득권 세력에게는 '사회악' 취급을 받았거든요? 그러던 중 1991년 페놀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환경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3월 21일 '대구시 수돗물 사태 시민단체 대책회의'가 그 시작인데요, 대구경실련, 대구YMCA, 함께하는주부모임 등 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구로 대구 공해 추방 운동 협의회(대구 공추협) 준비 모임이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페놀 쇼크'는 2개월이 못 돼 잦아들게 됩니다. 5월 들어 페놀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시들해지자 서울과 대구의 시민대책회의도 사실상 활동을 중단하게 됐어요. 제가 당시에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임산부들은 대책회의나 시민단체의 지원이 끊기자 7월 4일 '페놀 피해 임산부 모임'을 결성해서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요. 시위도 하고, 불매 운동도 하고, 그 눈물겨운 투쟁을 대구 공추협이 지원을 하게 됩니다"


'페놀 수돗물' 임산부 유산·사산 변상금은 50만 원?···지루한 법정 공방 이어져
집단소송을 낳을 중대한 사건을 행정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갈등을 사전에 중재하는 제도인 '환경분쟁조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구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 배상을 신청한 임산부는 800여 명이었는데요, 1991년 11월 16일 유산과 사산에 대해 50만 원 실비 변상이라는 조정안이 내려집니다. 이에 불복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재신청을 하게 되는데, 그때 숫자가 800명에서 60여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 조정안 역시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자 결국 16명만 남아 1992년 10월 28일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2년여의 지루한 공방 끝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결국 1995년 2월 28일 대구지방법원의 조정판정으로 종결이 됩니다. 재판부는 '두산전자는 대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감안해 대구시를 통해 1억 2천만 원을 페놀 피해 임산부 모임에 지급하고 대구시는 위로금 조로 2천만 원을 지급하라. 단 두산전자와 대구시가 페놀 사태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시인한 것은 아닌 만큼 당사자 쌍방은 물론 어느 누구도 조정 결과를 가지고 페놀 사태의 법적 책임의 조건부 범위에 대한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건 당시 수돗물의 페놀 및 클로로페놀의 농도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이것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결론이었던 겁니다.

신재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법률적 판단의 근거는 당시 피해자들이 마신 농도를 알 수 없으니 태아에게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인 거 같은데요, 법체계는 제가 거의 모릅니다만, 과학에서는 이런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과학에서는 '명확한 수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해야지 '알 수 없다'를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에서는 이 경우에 피해자들이 섭취한 페놀의 양을 알아내는 정량 분석이 불가능하다면 피해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실제로 수돗물에 페놀이 존재했는지 아닌지 O, X로 판단하는 정성 분석을 해야 하고, 그 O, X 결과와 피해자들의 유산율, 그리고 평소의 유산율 통계를 가지고 판단하면 됩니다. 이미 시간이 지나고 샘플이 존재하지 않아서 정량 분석이 불가능한데, 그래서 유해 물질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어서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적어도 과학적인 논리는 아닙니다. 과학계에서는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는 원칙을 가르칩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피해를 알 수 없다고 할 것이 아니고 정량적인 분석이 불가능하다면 여러 가지 대안적인 연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소송까지 간 임산부들은 인공 유산자, 자연 유산자, 기형아 출산자 등이었는데, 사회가 이분들을 외면하고 심지어 비난까지 더해져서 힘들었습니다.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오해도 받았고요,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도 '그만하라'는 압력을 받고 이혼을 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그분들은 사회적 압력, 가족의 압력을 극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끝까지 소송에 임하면서 5년이라는 시간을 싸워야 했습니다. 존경하는 마음과 가슴 아픈 마음이 함께 했습니다"

* '시민의 품격', 대구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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