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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존폐 기로에 선 한국패션산업연구원···"설립 목적 달성 불가" vs "내부 고발한 노조 때문?"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해산 위기에 놓였습니다.

2024년 말 이사회에서 더 이상 기관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데 이어 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청문회만 남겨놓고 있는데요.

노조는 연구원을 활성화해야 할 정부와 대구시가 책임을 저버렸다며, 해산 결정을 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섬유 패션 도시' 대구에서 영세 봉제업체·패션업계 지원하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해산 위기 맞아
1월 15일 오전, 취재진은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 있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패션연)을 찾았습니다.

동구 봉무동에 있던 본원 건물과 토지가 2024년 8월 경매로 넘어가면서 분원이 있던 이곳으로 옮긴 겁니다.

건물 2층, 교육장으로 쓰던 사무실에는 전동 미싱과 특수 봉제 장비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한때 전문 봉제 인력을 교육하기 위해 쓰던 장비지만 3년째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이상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부지부장 "일단은 원장님이 없으시고, 그다음에 대구시의 지원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완전히 끊어버림으로 인해서 이제 지원 사업이 안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국내 유일의 패션·봉제산업 연구기관인 패션연은 한국패션센터와 봉제기술연구소를 통합해 2010년 설립됐습니다.

주로 산업통상자원부나 대구시의 보조금 사업과 위탁 사무를 받아 영세한 봉제업체와 패션업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2018년 보조금 일몰제로 정부 지원금이 끊긴 데 이어, 2022년부터는 연간 40억 원 안팎의 대구시 지원도 중단됐습니다.

2019년부터는 원장 자리도 비어 있습니다.

경영난으로 3년째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면서, 한때 65명까지 늘었던 직원 수가 지금은 11명으로 줄었습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이사회에서 "목적 사업 달성 불가" 결정···노조 "책임은 산자부·대구시에 있어"
산자부와 대구시는 2024년 11월 당연직 이사 3명(산자부 1명, 대구시 1명, 경상북도 1명)과 임시 이사 3명 등 6명의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고 더 이상 목적 사업 달성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적 사업 달성이 어렵다'는 것은 패션연의 설립 근거인 산업기술혁신촉진법에 따라 허가 취소, 즉 해산 사유에 해당합니다.

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인 청문회가 남아 있지만, 시한부 판정을 내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경영난으로 3년째 월급도 못 받으면서 책임감만으로 일해왔던 직원들은 허탈함을 넘어서 분노가 치민다고 했습니다.

박희주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오래전부터 섬유 쪽에 종사를 했었기 때문에 현장의 열악한 상황이라든가 업계의 힘든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산자부와 대구시의 결정)에 대해서 이해도 할 수 없고···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살아야 하거든요."

14년째 패션연에 근무하고 있는 박 선임연구원은 관련 업계 종사자만 5천 명에 이른다며 사양산업 취급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박희주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패션산업연구원은 서론, 본론, 결론 중 결론의 결과물이 나오는 기관이거든요. 섬유 쪽에서 원단을 제작하고 나서 과정을 거치고 패션산업연구원에서 완성도를 이루는 곳이거든요. 섬유만 만들어 가지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멋스러움이 없잖아요. 그 멋스러움의 완성 단계를 만드는 게 패션산업연구원이거든요."

노조는 연구원의 당연직 이사를 맡고 있는 산자부와 대구시가 정상화를 할 수 없도록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해산 사유라고 말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산자부와 대구시가 '목적 달성 불가' 결정을 내린 사유로 들었던 장기간 원장 부재, 다수 직원 퇴사, 실질적 사업 수행 활동 부재 등에 대해서도 당연직 이사를 맡고 있는 산자부와 대구시 등에 책임이 있다며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이상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부지부장 "해산 사유로 말씀하셨던 그런 부분들이 기본적으로 이사들이 원장을 내려줘야지 저희 직원들이 원장을 뽑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지금 21년도 이후로 그러니까 정확히는 19년도 이후로 원장을 내려달라고 지속적으로 계속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장님이 없으면 저희가 사업을 수행을 한다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정부 사업을 수탁을 하든 외부에서 용역 사업을 수탁을 하든 사업을 하려면 원장님의 결제와 그 사업 관련해서 계약을 진행을 해야 하는데 그 계약 권한 자체가 원장에게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300억 원이 넘던 패션 연의 자산이 100억 원 미만으로 쪼그라들었고, 남아 있는 자산도 위태로워졌다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산자부와 대구시 등 관계기관이 패션 연을 고사시키려고 했다는 건데요.

정부와 지자체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이상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부지부장 "많은 분들이 봉제업이라든가 섬유 패션업이 대구의 대구 산업의 뿌리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오래 그 사업들이 지속이 되고 그 안에서 자기들 나름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정말 영세하고 힘없는 업계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어드는 그런 상황에서 이제 저희 패션 연 같은 경우에 제일 그 섬유 패션업에서 제일 밑바닥에 있는 그런 업종들을 주로 지원을 하다 보니까 거기서 오는 이제 부조리라든가 문제라든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이제 변화 요구를 좀 많이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데서 이제 위에 정치권들과 뭐 맞닿아 있는 좀 힘 있는 업체들이라든가 이런 분들이 보시기에는 좀 눈에 거슬리는 그런 행동들을 좀 많이 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노조 주장의 근거를 좀 더 들여다보려면, 패션연의 전신인 한국패션센터가 설립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비리로 점철된 섬유패션업계···시민단체와 함께 문제 제기했던 노조, 미운털 박혔나?
패션센터 초대 이사장인 임 모 씨는 대구 출신에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경북고 동창입니다.

검찰은 2002년 밀라노프로젝트 추진기관인 패션센터의 예산 유용 및 전용 등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회계 책임자가 횡령 혐의로 구속됐고, 임 이사장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긴 했지만 임 이사장은 이후 사직서를 냈습니다.

2대 이사장인 최 모 씨는 2006년 사업 예산을 부풀리거나, 정부와 지자체 연구과제를 수주한 뒤 인건비를 허위로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보조금 수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이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3대 이사장 김 모 씨도 억대의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고, 불법 결혼식장 대여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010년 한국패션센터가 봉제기술연구소가 한국패션연구원으로 통합한 뒤에 취임한 원장들도 공금 사적 사용, 직원 폭행 등으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이런 내부 부정행위가 있을 때마다 문제 제기를 한 것 때문에 내부 고발자로 지목돼 보복당한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사장, 원장 선임 과정에 대구시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선임돼 갈 때마다 노조 때문에 문제가 생기니 미운털이 박혔을 거란 얘기입니다.

패션 연 소속 직원들은 여러 제보와 증빙 자료를 모아 더불어민주당 공익제보자 권익보호센터와 국회 해당 상임위 의원실에 공익 제보를 하기도 했습니다.

산자부 "조직 관리 문제, 수익 창출 어려움 등 고려해 지속 가능성 낮다고 판단"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설립을 허가한 주무 부처이면서 당연직 이사를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어떤 입장일까요?

노조 등이 주장한 이른바 '기획 해산'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왜 정부가 잘 굴러가는 기관을 기획 해산으로 없애겠다고 하겠냐"고 반문하며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도 했습니다.

이사회에서 '목적 사업 달성 불가능' 결론을 내린 것도 여러 측면을 다각도로 고려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저희 이사회에서 그동안에 여러 차례 이 상황에 대해서 논의를 이렇게 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패션산업연구원이 지금 직원도 사실상 원래 65명이 정원인데 11분밖에 안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20% 이하로 줄어든 것 같고, 원장도 장기간 공석이고 무엇보다도 이게 지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또 아니어서 지속 가능성이 굉장히 어렵지 않느냐···"

패션연 같은 전문생산기술연구소가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에 많이 의존하는데, 패션 연은 그런 수익 창출 방법이 끊겨 있고 그 책임이 패션 연에 있다고도 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지금 정부 사업 같은 경우에도 정부 R&D에 참여 제한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부 사업 같은 경우에는 참여할 수도 없고 대구시나 이런 사업 같은 경우에도 사업비 부당 사용 이런 사유 같은데 그런 걸로 인해서 사업도 중단이 되어 있고··· 여러 가지를 종합해 이사회에서 판단하기로는 앞으로 수익 구조가 계속 지속 가능성이 이 어려워서 운영 정상화는 어렵지 않는가 하고 이렇게 판단을 했고"

유사 기관과 통합이 가능한지도 살펴봤지만, 14개 기관에 공문을 보내 물어봐도 통합할 의사가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1월 16일 열리는 청문회에서 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사회 결과까지 종합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패션 연 설립 허가 취소, 즉 해산을 할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월급 못 받아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100만 원 지원받고도 고맙다고 하는 분들"
월급이 3년째 밀려도 끝까지 떠나지 않고 패션 연을 지켜온 직원들.

이들에게 왜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왜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기업 지원 업무를 맡았던 이상성 노조 부지부장은 패션 연이 지원하는 패션 봉제 업계 대부분이 영세기업이라며, 그들이 눈에 밟힌다고 했습니다.

이상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부지부장 "봉제하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까 계단을 못 올라다니시니까 그 계단을 좀 더 오르기 좋게 한 100만 원, 200만 원 투자를 해가지고 지원해 드리고 그것만 가지고도 너무 좋아하시고 너무 고마워하시고··· 그전에 제가 울산 쪽에 테크노파크에서 근무를 할 때는 3천만 원 5천만 원 지원을 해줘도 그런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분들을 지원하는 걸 계속 한 2년 정도 이렇게 하다 보니까 거기서 너무 보람이 컸던 거예요."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이렇게 패션 연 경영 정상화가 오래 걸릴 거란 생각은 못 했다고 합니다.

이상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부지부장 "어쨌든 끝나면 우리 하던 그 사업을 물려받을 다른 기관에 넘겨주고 좀 마음에 짐을 좀 덜고 나가겠다, 그 생각으로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됐고 좀 뭐 예산이 끊겼어도 정부 지원 예산은 계속 나오고 있으니 우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이렇게 지원을 받으시면 된다... 우리가 디자인 지원을 못 해 드리고 샘플 제작을 못 해 드리지만 대구에 있는 디자인진흥원이라든가 테크노파크 내에 있는 어떤 파티에서 이런 사업들을 진행을 하니 그것도 좀 해보시고 받아보시라. 사업 계획서 제가 어떻게 씁니까? 그 초안 주시면은 저희가 좀 다듬어서 보내드릴게요. 그런 작업 하고 이러면서 버틴 게 1년 처음에는 한 6개월 정도면은 정상화되거나 해산이 되겠지 1년, 내년 되면은 정상화되거나 해산이 되겠지 1년 반, 2년, 2년 반, 3년, 그분들한테 솔직히 너무 미안하다 보니까 손을 못 떼는 거예요."

입사 이후 계속 기업 지원 업무를 맡았던 한 선임연구원은 자비로 다니면서 업체를 방문해 다른 기관의 지원사업을 알려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노조 "해산 결정 나면 행정소송 제기"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는 만약 산자부가 설립 허가 취소, 즉 해산 결정을 내린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원장 부재와 직원 퇴사, 사업 수행 활동 부재 등 허가 취소 사유가 산자부와 대구시 등 책임 있는 유관기관들의 직무 유기 등 위법한 직무 집행 때문이어서 얼마든지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패션 연의 주요 사업인 지역 패션봉제산업 육성 사업이 지금처럼 중단된다면 지역 경제의 뿌리산업 중 하나인 섬유패션산업의 최종 공정에 해당하는 패턴과 재단 등 공정의 일부를 무료로 지원받던 업계와 종사자들의 피해가 클 것이라고 했습니다.

2019년 기준 통계청 자료만 봐도 대구 지역 패션 봉제 업계 종사자 수가 5천 명에 이르고, 하청 구조에 지하경제의 형태로 분포된 실제 종사자 수는 5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39개 업체, 512명의 업계 관계자가 패션 연을 살리기 위해 서명까지 하며 기관 정상화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다시 정상화될 수 있을지, 아니면 산자부와 대구시의 방침대로 해산의 길을 걸을지는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도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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