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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사도 열광한 만화가 박시백] ④"지금 우리를 있게 한 동력은 바로···"

박시백 화백이 대중과 처음 만난 공간은 한겨레 신문의 '한겨레그림판'이었습니다. 당시 시사 만화계의 '넘사벽'으로 평가받던 박재동 화백으로부터 넘겨받은 건데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1년 뒤 다른 화백에게 넘겨줍니다.

1컷짜리 한겨레그림판 대신 박 화백은 '스토리'가 있는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하는데요, 6년여 간의 한겨레신문 활동을 끝낸 뒤 박시백 화백은 역사 만화에 뛰어듭니다.

조선왕조실록,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과 친일파 열전, 그리고 최근에는 고려사에 대한 만화도 시작했는데요, 시사 만화가가 바라본 우리나라 역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김규종 MC]
그런데 왜 조선왕조는 개창 초기서부터 이렇게 고려실록 혹은 뭐 이런 역사책을 쓰려고 애를 썼을까요? 전 그게 궁금하네요.

[박시백 화백]
보통 우리가, 조선왕조실록도 마찬가지거든요? 조선왕조실록은 보통 한 임금이 죽고 나면 그다음 대에 가서 전 임금에 대한 사초들을 모아서 실록을 편찬하잖아요?

고려 같은 경우에도 그런 식으로 매 임금 때만은 아닌데, 한 몇십 년이 지나고 나면 앞의 한 몇 임금에 대한 실록을 편찬하게 하고 편찬하고 이런 것이 쭉 있었는데, 이게 상당히 유실이 된 거죠. 수많은 전란을 통해서.

그런데 크게 말하면 한 왕조가 마무리되고 그다음 왕조로 갔을 때 전 왕조사를 편찬하는 게 당대의 어떤 룰 같은 거였던 거 같아요. 이를테면 조선시대에 태종실록, 세종실록이 있긴 있지만 이거를 있긴 하지만 볼 수는 없는 거였어요, 그 당시에.

우리는 흔히 사초만 못 보게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가령 세종실록을 그 이후에 정조 때 정조 임금이나 당시 신하들이 볼 수가 없습니다.

이건 언제를 위한 거냐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마무리되고 난 그 이후에 새로운 나라가 건설됐을 때를 위해서 남겨놓은 기록이거든요?

다만 고려는 이거를 시기별로 촘촘하게 남겨놓지 않아서 조선이 개국하자마자 곧바로 고려사 전체를 그동안에 있었던 사료들을 모아서 고려사를 만든 것이고. 또 조선왕조실록은 왕별로 쭉 이걸 했다는 차이는 있는 거죠.

[서상국 MC]
네, 새로운 사실을 또 알게 됐네요. 그런데 역사라는 게 아무래도 승자의 기록 아니겠습니까? 좀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으셨을 거 같아요.

[박시백 화백]
예, 맞습니다. 가령 대표적인 게 조선사로 다시 넘어가서 말씀드리면, 단종실록 같은 경우에 단종실록에서는, 원래 실록이라고 하는 거 자체가 사관이 임금이 있는 곳, 임금이 있는 공적 자리에서 임금이 하는 행동, 말, 신하들과 나누는 대화, 신하들이 올리는 뭐 상소문, 보고문, 이런 게 다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단종실록인 경우에는 수양대군이 대군 시절에 한 명이랑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버젓이 들어 있다니까. 이런 건 누가 봐도 사후에 조작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거죠.

사관이 개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의 말만 듣고 사관이 언급 받았음, 이런 거라는 거죠. 그런데 고려사를 보면 가령 이성계의 어떤 전투 장면, 이것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멋있게 묘사를 합니다. 이런 거는 틀림없는 승자의 이런 게 맞습니다.

그런데 가령 뭐 이성계의 라이벌이었던 그럼 최영에 대해서 굉장히 폄하하냐면 그렇지 않아요. 최영이 갖고 있는 장수적인 재질, 그의 장점들, 다 하고요.

뭐 정몽주에 대해서도 정몽주가 마지막까지 이성계를 괴롭혔습니다만 정몽주에 대해서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그의 행보들이 쫙 기록이 돼요. 그래서 보면 '아, 이거는 있었던 일이구나'라고 하는 거는 보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매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것은 팩트겠구나라고 하는 판단은 좀 서는 것 같아요.

[서상국 MC]
아무래도 새로 건국을 했잖아요? 개국을 했는데 시시한 인물들을 제치고 건국을 한 것보다는 괜찮은 인물들을 제치고 건국을 하는 게 더 있어 보이지 않겠습니까?

[김규종 MC]
예, 그 고려사에서 선생님 만화로 이렇게 옮기시면서 '야, 이 사람은 정말 독자들이 관심 있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하는 분 계십니까, 혹시?

[박시백 화백]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는데, 가령 외적이 침입해 왔을 때 중앙정부에서는 이미 다 포기한 거를 한 성 차원에서, 성주 차원에서 끝까지 싸워내는 장수들, 뭐 그런 경우들이 꽤 있는데요.

그건 뭐 거란과의 싸움에서 있었고, 몽골과의 싸움에 있었고, 심지어 결국 왕의 사신이 가서 왕이 이미 항복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그럼 항복해라, 나 그거 못 믿겠다, 끝까지 싸워요.

[김규종 MC]
그럼 삼별초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그리셨겠어요?

[박시백 화백]
그거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삼별초는 원래 최 씨 정권의 거의 준 사병 집단, 또 다른 사병도 있습니다만 하여튼 최 씨 정권에 의해 만들어지고 키워지고 약간 특별 우대를 받아왔던 조직이고, 그리고 이 무신 정권 자체가 강화돼서 버티는 자체가 이들이 항복하고 개경으로 환도하게 될 경우에는 자신들이 갖는 역할이 원나라에서 대체돼 버리거든요? 이때의 무신 정권은 사실상 왕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이지만 원나라에 항복한 이유를 보면 원나라가 그거를 하게 되죠.

무신 정권의 담당자들 이걸 잘 알았고 그래서 가급적 항복하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개경으로 환도하는 것을 반대하는데 결국 사안이 다 마무리돼서 항복하기로 다 끝났는데 그중의 일부였던 삼별초가 반대를 하거든요?

그러면 이거는 삼별초들 자신의 어떤 그동안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수가 있고, 어찌 보면 몽골에 대한, 원나라에 대한 항쟁은 좀 명분일 가능성이 저는 더 크게 보입니다.그리고 주로 이후에 활동하는 것들도 진도나 제주로 가서 하는 것들도 조운손을 공격해서 약탈한다든가 해안을 턴다든가 이런 식의 방식으로 자기들에 필요한 것들을 확보해 가는 이런 모습을 보여줬을 때 스스로도 끝까지 갈 수 없으리라는 건 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좀 우발적으로 시작했고,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 고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측면이 크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서상국 MC]
그런데 근본적인 질문이 되겠습니다만 우리가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시백 화백]
그거는 정말 제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게 사실 역사를 본다고 해서 역사 속에서 뭐 교훈을 얻는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실제 교훈을 얻는다는 게 어떤 한 개인의 처세를 얻는 건 아니거든요?

처세를 얻는다고 한다면, 수많은 친일파, 각 시대에서 어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개인의 어떤 사적 이익을 추구했던 데서 성공한 이런 사람들부터 얻는 게 자기를 위해서는 사실 가장 좋잖아요.

[서상국 MC]
그렇네요.

[박시백 화백]
그런데 우리가 역사적으로 교훈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제대로 맞는 말인데, 우리 일 개개인, 일반인들한테서는 역사적인 안목을 키우고 아주 자기의 아주 소소한 결정이죠.

하다못해 우리 현대로서 말하면 투표를 한다든가 이런 소소한 결정, 어떤 거에 대한 지지 여부를 표명한다던가 이런 것들이 그런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옳은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준거는 되어준다. 그런 역사적 안목이라고 하는 게 그런 생각이 들고요.

뭐 살아가는데 의식주를 더 풍성하게 하고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대한민국의 국민의 일원이고 그리고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이런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어떤 마땅한 교양이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김규종 MC]
아까 선생님 말씀하신 것 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게 고려요, 중앙정부에서 '야, 손들어' 그러는데 '우리 끝까지 싸워'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던 그 맥락이 김대건 신부를 다룬 영화에서도 똑같이 반복이 되거든요?

왕하고 가진 자들은 다 도망쳐도 우리 백성들은 목숨 걸고 끝까지 싸워, 니네 우리 못 이길 거야, 이 대목이 나오거든요? 저는 그건 진짜로 오랫동안 우리한테 그 면면부절하게, 대 이어 가지고 내려오는 우리 혈관 속에 뛰어가는??? 어떤 내려오는 하나의 전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런 맥락에서 역사가 어떻게 보면 '유방백세 유취만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뭐 꽃다운 이름은 뭐 이렇게 그런 맥락에서 아마 역사가 그런 교훈을 우리한테 주지 않았을까?

[박시백 화백]
굉장히 제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선조 편 임진왜란 편에서 제가 묘사한 거랑 굉장히 흡사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는 의병들의 항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거는 마치 나라가 나라로부터 받은 건 없는데 나라가 힘들 때면 벌 떼같이 일어나서 맞서 싸우는 어떤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특성들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었는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고비 고비마다에서 보면 진짜 나라로부터 혜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거잖아요? 그런 게 역사의 힘이고 또 우리를 있게 한 동력이지 않나.

[김규종 MC]
그러니까 그런 전통이 중국에도 없고요. 일본에는 아예 없거든요? 그러니까 한중일 흔히 삼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독특한, 그러면서 저항정신이 어디보다도 뛰어난 그런 맥락에서는 우리들이 남과 북 문제만 제대로 잘 처리가 된다면 전 동북아 쪽에서는 정말로 큰소리 땅땅 치면서 선진국의 선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맥락 요즘 보면 아주 답답한 느낌을 좀 많이 받습니다.

[서상국 MC]
선생님 모시고 뭐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 얘기 나눠봤는데 마지막 질문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청취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좀 전해 주시고 마무리해 주시죠.

[박시백 화백]
너무나 사적인 말씀을 드린다면 조선왕조실록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또 많이 보아주셨고 한데 이제 그 이후의 작업이 아까 지금 말씀 중에 나왔던 35년과 지금 하고 있습니다만 35년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정말 우리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말 가까운 시대 사이고 그리고 저는 항상 역사를 얘기하면서 후손 된 도리, 이런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그 정말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맞서 가지고 독립을 위해서 모든 걸 걸고 싸웠던 사람들한테 해방 이후에 부여된 혜택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 사람들은 다 걸고 싸웠고 집안도 망했고 목숨도 잃었는데 그러면 우리가 그 사람들을 기억해 주고 하는 것이라도 이 후손 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고 반대로 그 대의보다도 어떤 개인적인 이익, 뭐 집안 가세, 이런 걸 생각해서 친일파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도 후손들이 선배 선조인 친일파들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서 이후에 떵떵거리고 살았잖아요? 그걸 이제 우리가 와서 지금 와서 그걸 도로 내놔라 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선 최소한 당신들의 조상이 이러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당신이 그 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 사람이 알게 해 주면 더 좋고, 또 그러지 못한 일반인들도 아는 게 좋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풍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35년이 꽤 소개가 되어 있으니까 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김규종 MC]
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 거 같은데요. 아까 부끄러운 줄 알라 이게 다니구치 지로 만화에 나오는 것인데 메이지인들이 그때 처음으로 가지게 됐던 일본인의 특성 중의 하나가 부끄러운 줄 알다라는 개념이 100년쯤 전에 만들어졌는 그 얘기를 하는데 우리 한국에는 아직도 그런 인물들이 적죠. 조상들 자랑이나 할 줄 알았지 일본 일제강점기 우리 뭐 했고 이런 대목인데 지금 말씀하신 그 대목, 그 영광스러운 투쟁을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고 더러운 역사, 더러운 인물에 대해서 우리 끊임없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는 그 대목이 만화 35년, 그다음에 아까 밀정물들만 따로 다룬 친일파들만 따로 다룬 그런 만화, 그다음에 우리 기억에서 많이 사라져 버린 고려 역사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서상국 MC]
네, 오늘은 특별히 박시백 화백 모시고 박시백의 역사적 순간 진행을 해 봤고요. 차경호 선생님 그리고 박시백 화백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인의 저녁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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