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특히 예민해하는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어렸을 적부터 지속되어온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성을 본다. 변호사들이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내가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본분을 다하는 것일 텐데, 어찌 막을 수가 있을까.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해야만 할 일이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p.25
[김규종 MC]
크게 어떤 삶의 의미를 확인하신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였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임 검사께서 이번에 펴내신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 정말 다 사실이냐, 아니면 약간의 과장이나 어떤 극적인 사건들이 미화된 거 아니냐 이런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임은정 검사]
책을 처음, 원고를 쓰고 여러 번 퇴고를 했는데 원고 쓸 때 너무 고통스러웠던 게 뭐였냐면 제가 안 힘든 게 아니잖아요? 내부 고발자가 얼마나 힘들어요? 너무 힘들잖아요?
이게 저는 검찰 실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사초에 해당하는 비망록, 일기, 검사 게시판에 썼던 것들, 국가 배상 소송이나 아니면 징계 취소 소송에 대한 자료가 어마무시하니까, 이걸 쓰면서 실명이 대거 많이 나오고요. 사실상 실명들도 많잖아요? 우리 검사들은 이게 누구인지를 다 알아요.
그때 부장이 이 성이면 누군가 보면 한 명이 특정되는 상황이니까, 몽땅 실명이라고 생각하셔야 하는 상황이니까, 이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서 저는 다 각오하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예컨대 여기 책에도 김웅 검사, 국회의원도 나오는데 이렇게 민·형사를 걸 예상을 해야 되니까, 비망록에 김웅 선배와 2016년인가요? 7월인가? 그때 대화를 비망록을 뒤져서, 그 문구에 토씨가 바뀌면 소송에서 증명을 해야 되니까 그거를 찾아서 하고 검사들이 댓글에 뭐라고 비난했는가를 찾아서 다시 보니까 너무 고통스러워서, 상처를.
그래서 자꾸 울컥울컥해서 초고 쓸 때는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이거는 제가 민·형사 각오하고, 뭐가 사실인지 따져보자고 하는 검찰 실록이니까 그런 자부심은 있습니다.
[김근우 MC]
앞서서 무죄 구형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만 저도 나름대로 몇 년 기자 나부랭이로 일을 하면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는 것 자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만 논고 같은 경우에도 사실은 좀 딱딱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돼서, 사실 판결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법조계에 쓰는 단어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 부장님께서 쓰신 논고 같은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또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런 얘기들이 많은데 사실 이렇게 쓰시는 검사님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죠?
[임은정 검사]
논고는, 법정에서 구두로 이루어지는 논고는 어떻게 하는지 다른 검사들은 몰라요. 각자 자기 기준으로 하는 건데 제가 쉬는 시간에 재판 휴정할 때 다른 방 가거나 기록에서 봤던 논고는 저 같은 유형이 없는 것은, 솔직히 저도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법정에 피고인과 방청해 주시고 있는 피고인 가족,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 사건이나 치사 사건들이 있으니까 영혼에 바치는 제 위로와 충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나름의 노력으로 제가 사람에게 법률 문장 말고, 법률 모르시는 분들이 태반이잖아요? 법조인들이 앉아 있는 거 아니니까 들으시는 사람이, 판사한테 맞추는 게 아니라, 판사한테도 맞춰야 하지만 모든 특히 피고인은 들어야 하고, 피해자는 들어야 하고, 누구한테 말할 것인가에 약간 초점을 두면 그걸 감안해서 쓰는 게 검사의 도리이고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김규종 MC]
책에서 한 구절을, 한 문장을 제가 인용을 해보겠습니다. 임 검사가 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법은 개인의 양심을 깨우고 이 시대와 우리 사회의 따뜻한 정의를 일깨워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쓰셨는데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사법은 냉정하고 차갑고 가혹하고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임 검사가 생각하는 사법은 따뜻한 정의를 구현하는 기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임은정 검사]
그런 자부심이 없으면 제가 검사를 못 했겠죠? 그 법률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거라서 인간과 함께 분노하고 인간과 함께 아파하고 인간과 함께 고통받는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체온이 사람화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체온이 당기는 거고요. 그렇다면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위로해 주고 다독이는 손길이 되고 잡아주는 손길이 되고 그런 게 제가 아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딱딱한 법이라고 하면 나쁜 법조인을 만났다 내지는 불친절한 법조인을 만났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규종 MC]
그런데 일반적인 검사상은 임은정 검사가 생각하시는 그런 검사상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어 보이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검사들 내부에서 어떤 대화나 어떤 반성의 그런 기미 같은 건 있는지 모르겠어요?
[임은정 검사]
그게 검사들이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 불친절해지잖아요? 제가 예전에 대학 후배가, 하숙집 후배가 너무 배가 아파서, 결과는 맹장염이었는데, 응급실에 갔을 때 제가 의사들을 보면서 결심했는데, 응급실 의사들은 환자들이 다 응급실에서 난리가 나잖아요? 막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피곤해 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이해는 하면서 그런데 내 친구, 내 후배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데 의사가 보니까 말도 안 나오는데 너무 고통받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내가 언젠가 법조인 되면 나는 안 저래야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일이 너무 많으면 짜증이 나요. 그러면 불친절해져요. 그러니까 이게 검사들이 불친절한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정말 일이 너무 많아서 메말라지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이런저런 것으로, 나쁜 사람들도 있고, 중복되는 것 같습니다.
[김근우 MC]
사실 기자로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저도 사건, 사고 현장을 나가보면 건건이 제가 하나하나 다 공감을 해서 100% 몰입을 하게 되면 제 스스로의 멘탈이 좀 힘든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사실은 검사로 일을 하시면서도 많은 여러 사람이 메말라 간다고 아까 말씀을 해 주셨는데 좀 이런 부분도 영향이 있지 않겠습니까?
[임은정 검사]
그러니까 제가 논고문은 제가 자랑할 만한, 열심히 한 것들을 뽑은 거잖아요? 제 책을 보셨으니까 알겠지만 저한테 게시판에 글 쓰지 말라고 몰 배당을, 일로 괴롭히니까 한 달에 550건씩 줄 때는 불친절해져요. 전화 안 받지. "면담 좀 하고 싶습니다", 면회할 시간 없어요. 한 달에 550건인데 어떻게 면회를 해요? 안 되죠. "조사해 달라", 조사할 시간 없어요. 기록 보고 벌금 매기기가 바쁘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배당 구조가 잘못인데, 이 사람들이 국민 인권 하면서 이 한 건 한 건의 무게와 고통을 헤아리지 않고 가벼운 형사부 사건, 저 검사 엿 먹어야지 이러면서 주는, 이렇게 되면 그 검사가 엿 먹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엿 먹는 건데, 윗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배려가 역시 메마른, 나쁜 사람들이 위로 잘 가니까, 그런 거라서 제가 불친절할 때도 많았고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늘 부끄러운데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건 한 건도 중요하지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저도 다 친절할 수도 없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 늘 고민하려고 하기 때문에 제가 게시판 투쟁을 시작한 거예요.
[김근우 MC]
그 구조에 대한 내용이 결국은 검찰 개혁 비슷한, 그런 쪽 관련된 내용들이 많을 것 같은데, 사실은 앞서서도 한번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마는 사실상 실명으로 쓴 책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쪽 업계, 법조계 또는 검찰 쪽에 있는 분들이 보면 가명으로 쓰건 익명으로 쓰건 대충 누군지 다 알 수 있다는 말씀이신데, 사실은 저희 입장에서는 이걸 출간하시고 나서 조금 더 곤란해지시지는 않을까, 약간 걱정도 되고, 워낙 그동안 여러 가지 평지풍파를 겪어 오셨기 때문에 괜찮으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좀 되는데 이런 부분은 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임은정 검사]
각오하고 쓴 거고요. 우리 검찰은 제가 느끼기에 무죄를 두려워하는 조직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던지기 기소를 한 번씩 하는 것을, 예컨대 과거사에서도 PD수첩 사건은 무죄 날 줄 알면서 기소를 강행하라고 하는 조직이니까, 찍히면 몰아가기 수사라든지 털어보자 이렇게, 지구 끝까지 찾겠다, 이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부 고발자로 제가 10년 동안 점심시간, 중식 시간도 발발 떨었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각오는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 변호사님들과 원고를 출판하기 전에 이미 변호사님들과 좀 상의를 조금 했었고요. 하게 되면 오히려 잘 됐다, 무엇이 사실인지 따져보자, 그래서 비망록이라든지 이런 걸로 대조하면서 한 거니까. 문제가 되더라도 해일은 밀려올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해일은 밀려왔으니까. 해일이 밀려와도 저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으니까 떠밀려가지 않고 꿋꿋하게 지키면서 무엇이 사실인지 따져볼 생각입니다.
[김규종 MC]
지금 임 검사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제가 상당히 놀랍다고 생각되는 게 검사이고 부장검사인데, 사건이 생기니까 변호사하고 상의를 했다, 이건 저로서는 굉장히···
[임은정 검사]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요. 이게 자기 사건이 되면 객관화가 덜 되잖아요?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민·형사 하게 되면 저도 제가 재판을, 공익 신고한 것도 여러 건 있고 국가 배상 소송 등등 등 해서 여러 가지, 한 6개 정도가 이것저것 공수처라든지 계류 중인데, 제가 제 일도 해야 되기 때문에 변호사님들을 다 선임했어요. 변호사비로 많이 드리지도 못하면서 등골이 빠지고 있는 상황이고요.
여러 명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찾는 게 좋고요. 다음에 이렇게 크로스 체크를 해야 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변호사들이 공격 포인트가 다르니까 크로스 체크하는 차원에서 좀 여러 명이랑 의논해 보면서. 그리고 만일 하게 되면 작전 계획의 하나인데 그렇게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나름 저한테는 거대한 조직과의 싸움이잖아요?
[김규종 MC]
유비무환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아까 말씀하신 2012년 12월 18일 날짜를 특정하셨는데, 그 날짜가 임은정 검사 인생에서 가장 실질적인 전환점이라고 우리들이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임은정 검사]
실질적인 전환점이라기보다 저를 시험했고요. 제가 무죄 구형을 할 수 있을지 저도 잘 몰랐잖아요? 정말 진짜 무죄 구형을 할까 봐 무서웠고 안 할까 봐도 무서웠거든요? 미쳐버리겠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알면 안 되잖아요? 막을 거니까.
일주일 동안 '해야 해' '해야 해' 하면서, 그런데 떠는 걸 들키지는 않아야 하는데 그 순간이 너무너무 괴로웠었는데 전환점이라기보다는 '아, 내가 주제넘지만 나를 이겨냈다', 공포를 이겨냈다는 그런 점에서 그다음부터는 힘들긴 힘들어도 그때만큼 무섭지는 않아요. 그때는 죽을 줄 알았는데 안 죽네? 이런 거죠. 그러니까 해볼 만하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도와주러 사람들이 오고 있다. 이런 느낌이 있어서···
[김규종 MC]
그러니까 10년 전의 임은정하고 2012년 12월 18일 이후의 임은정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군요, 그러면?
[임은정 검사]
그렇죠. 그리고 그때는 제가 한 60년 뒤에 무죄, 그러니까 제 억울함이 밝혀질 줄 알았어요.
[김근우 MC]
60년을 보고 계셨어요?
[임은정 검사]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윤길중 사건이 60년 뒤에 무죄 난 거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사육신, 생육신처럼 수백 년 뒤에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고, 그런데 살아생전에 못 볼 수도 있어서,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바뀔 거야라고 하면 실망하면 죽을 때 너무 슬프잖아요? 그래서 죽을 때 슬프지 않기 위해서 죽으면서 삼일장 무덤, 관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억울함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고 죽으려고 제가 한 60년 잡았는데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바뀌는 걸 제가 봐서 이게 승리의 DNA가 저한테 새겨지더라고요. 견디면 바뀌어, 나는 견딜 수 있어, 이런 자부심이 저를 계속 견디게 하는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