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모아 꽃 피움'
대구 중구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희움'이 개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시실과 사무실에는 누수가, 수장고에는 기록물이 켜켜이 쌓였습니다.
운영난이 닥쳤지만 정부의 지원은 없습니다.
발 디딜 틈 없었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지금은 뜸한 발길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009년 일본군위안부자료교육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2010년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순악 할머니가 '기억해 달라'며 5천만 원을 남겼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시민단체는 정부와 지자체를 찾아 건립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나서지 않았습니다.
단체는 모금에 나섰고, 2013년 '희움'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순악·심달연 할머니의 압화 작품을 모티브로 휴대전화 케이스, 가방 등을 판매했습니다.
그렇게 시민 성금 8억여 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대구시와 여성가족부, 중구청이 4억 5천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역사관이 대구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시실은 발 디딜 틈 없었고 함께 역사를 기억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개관식에는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과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등 정치인들이 몰려들었고, 학생과 기관 등 단체 관람도 줄을 이었습니다.
9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2021년 희움을 찾은 관람객은 2,075명이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컸는데요.
2021년 11월 단계적 일상 회복, 위드코로나에 접어들면서 2022년 관람객은 5,419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관심은 반짝, 2023 4,644명으로 다시 줄었습니다.
황혜원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연구원 "작년도에 비해서는 한 달에 평균 100명 정도는 준 것 같습니다. 정말 안 온다 하는 날에는 10명도 채 안 오는 것 같습니다."
취재진이 역사관을 찾은 8월 20일 오전 동안 이곳을 다녀간 관람객은 1명뿐, 할머니들의 사진만이 역사관을 지킵니다.
사무실도 전시실도···물 '뚝뚝'
사무실 바닥에 양동이 2개가 놓였습니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벽면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는 위안부 역사관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데요.
물이 흐른 흔적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1920년대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을 고쳐 쓰다 보니 누수가 생긴 겁니다.
누수는 2023 여름부터 심해졌습니다.
서혁수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건물 노후화도 있고 지금 인근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공사로 인해서 누수가 더 악화하였습니다. 수리는 온전히 저희 예산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재정비할 예산이 없습니다.
상근하는 직원은 단 두 명, 전시기획부터 기념품 포장까지 도맡습니다.
서혁수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재정 상태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정부 지원 없이 저희가 후원금으로 운영하려다 보니까 지금 여기에 근무하시는 활동가분들에게도 정말 급여를 드리기가 좀 어려울 정도로···"
역사관은 후원비와 관람료, 기념품 판매 수익으로 운영됩니다.
매년 6천만 원 남짓.
직원 급여와 관리비로도 부족한 수준입니다.
열악한 재정난을 겪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은 없습니다.
대구시가 기림의 날 행사비로 해마다 5백만 원을 지원할 뿐입니다.
그 이상의 지원은 없다며 이제는 '민간단체가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해놓고 해결 못했으면 이 역사관이라도 똑바로 좀 하나를 해 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조차도 아무것도 해준 게 없습니다."
위안부 기록물 4천여 점 있는 수장고 들여다보니···
대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좁은 복도 한 편에 놓인 책장에는 비디오테이프가 가득합니다.
세상을 등진 할머니들의 피해 증언이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김옥선 할머니(1999년) "짐작은 하지요. 그렇지만 어머니요, 여기가 찢어지고 곪아지고 그 소리를 할 수 없더래요. 부모한테."
영상 속 고 심달연 할머니가 새하얀 도화지 위에 하나씩 꽃을 붙이고, 이름을 써내려 갑니다.
마음에 깊게 남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할머니들은 미술치료를 받았습니다.
김순악 할머니의 작품에는 '내 하나 죽어가, 나라가 잘되면 좋겠다'는 문구가 선명히 새겨졌습니다.
김경남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기록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과 구조,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움 역사관은 일본군 위안부를 지내셨던 할머니들의 역사성을 담은 기록들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할머니들이 사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장고에는 피해 할머니가 생전 쓰던 안경과 신분증, 먹던 약이 남았습니다.
유품 상자는 하나둘 쌓여가고, 위안부 관련 기록물들도 가득합니다.
피해 증언 녹취록을 비롯해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관련 회의록도 있습니다.
대구·경북 피해 할머니 25분의 유품과 위안부 관련 기록물 등 4천4백여 점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960여 점은 국가 지정기록물입니다.
보존은 절실한데 기록물을 온전하게 영구히 보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김경남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습도가 80%가 넘어가거든요. 이건 습도를 60%까지 낮출 필요가 있는데···"
실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항온항습기를 마련할 돈이 없어 에어컨과 제습기를 24시간 가동하고 있습니다.
수장고 2층에 켜켜이 쌓인 압화 작품과 유품도 걱정입니다.
김경남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쌓아두면 기록물이 훼손이 됩니다. 이것도 조금 더 넓게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록 전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회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체가 역사고요. 그것이 지금까지 전개돼 온 과정도 역사고 앞으로도 역사가 되어 가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피해자들께서 한 분 두 분 돌아가셔서 지금 생존하고 계신 분 숫자가 매우 적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욱 이 문제에 관한 기록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보존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일을 책임지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조직 기관이 필요하고요."
위태로운 위안부 역사관···대구시는 "민간이 하는 일"
위안부 역사관에 대한 지원 계획이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구시는 선을 그었습니다.
대구시 관계자 "건립부터 해서 이게 이제 사단 법인에서 운영하는 상황이고··· 서울이나 경기도나 이렇게 이제 민간이 운영을 다 하고 있고요."
여기서 말한 서울은 서울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경기는 경기도 나눔의 집을 말합니다.
희움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후원금으로 운영하는데, 이 후원금마저도 수도권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지역에 있던 위안부 역사관, 지금 상황은 어떨까요?
부산에 있던 위안부 역사관은 고 김문숙 선생이 운영해 왔습니다.
2021년 김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오갈 데 없던 기록물을 두고 부산시는 이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고, 역사적 가치가 낮다며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자료들은 부산을 떠나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공모 사업을 통해 자료를 보관, 정리하고 아카이빙을 하고 있습니다.
1차 공모에 선정된 창원대가 2022년 6월부터 1년간 사료 정리, 전시를 했습니다.
이후 강원대와 아카이브 전문 업체가 자료를 넘겨받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방 남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대구뿐입니다.
역사관 희움은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서혁수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할머니들은 대부분 임대주택에서 사셨습니다. 돌아가시면 할머니와 관련된 모든 공간의 흔적들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적어도 지금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의 공간이라도 똑같이 전시관에 옮겨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간을 통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황혜원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연구원 "보통은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데요,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좀 이어 나가기 위해서 할머니들의 삶 자체를 다루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김창록 전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회장 "일본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들께서 다 돌아가시면 다 끝난 게 아닌가 혹은 이미 할 만큼 한 게 아니냐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요."
역사관 운영에 대한 여러 대안이 나오지만, 무관심 속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습니다.
서혁수(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온전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식 박물관 등록을 하고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명의 학예사가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김경남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위탁 관리 방식으로 지원을 받고 나중에 대구광역시에 대구 기록원이 만들어지게 되면 거기에서 전문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9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분이 별세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8명이 됐습니다.
이용수 할머니 "제발 할머니들 숨 떨어지기 전에··· 저도 마찬가집니다. 기운이 점점 떨어지고 이래서 할 말도 다 많이 많이 다 잊어버리고 못 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함께 만든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민간단체가 운영하면 정부는 수수방관해도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