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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의 라스트 댄스] ④ 대표팀 공격을 이끈 '최저 연봉' 월드컵 득점자

출처:대한축구협회
출처:대한축구협회

대구FC 소속으로 A대표팀과 올림픽 대표를 동시에 뛰었던 최초의 공격수 이근호. K리그에서의 흔적만큼 대표팀 소속으로도 값진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요. 20세 이하 대표팀을 시작으로 올림픽 무대를 품었던 U-23 팀에 성인대표팀까지··· 모두 112경기에서 27득점을 기록했던 이근호의 대표팀 역사, 대구MBC의 이근호 은퇴 특집 기획 기사, '이근호의 라스트 댄스'에서 짚어봅니다.


대구FC 소속 '대표팀 공격수'의 득점
청소년 대표팀부터 국가대표 무대를 경험했던 이근호는 프로 입단 전인 2003년 2004 AFC 청소년 선수권 예선 몽골전에서 3골을 기록한 기억이 있습니다. 청소년 무대에서 모두 9경기에 나서 3득점을 기록한 이근호, 축구 팬들이 기억하는 대표팀의 흔적은 2006년 당시 올림픽을 준비하던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었는데요. 인천 소속으로 만난 올림픽 대표팀이라는 가능성은 2007년 대구에서 꽃을 피웁니다.

리그에서 득점 행진을 이어가던 이근호는 결국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 무대를 누볐고, 결국 2007년 6월 UAE를 상대로 한 조별 예선 홈 경기에서 멀티 골을 쏘아 올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8월에 펼쳐진 우즈베키스탄과의 조별 예선에도 득점을 기록하며 올림픽 대표팀 2경기 연속 골을 기록한 이근호, 그사이 치렀던 A대표팀 첫 데뷔전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며 우리 대표팀 공격라인의 희망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당시의 활약은 대구에게도 대표팀 공격수가 있다는 자부심을 함께 안겨줬습니다. 

대구 떠난 이근호···쉽지 않았던 대표팀의 시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친선경기에서 연속 경기 득점을 올렸던 이근호, 비록 올림픽 무대에서는 조별 예선 3경기에서 침묵했고, 대표팀도 예선에서 탈락해 아쉬움을 삼킵니다. 

비록 올림픽 대표팀의 끝은 아쉬웠지만, 성인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이어졌는데요. 올림픽 대표팀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우즈베키스탄과 UAE 상대로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인정사정이 없었습니다. 친선경기였던 우즈벡전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UAE전에서 멀티 골을 기록한 이근호, 대구FC 소속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말 그대로 이근호의 당시 몸값을 상징하는 또 다른 표현이었고, 결국 2008시즌을 끝으로 대구와 이별합니다. 

공교롭게도 대구를 떠난 이후 대표팀에서 이근호의 시간에도 과거와 다른 기류가 자리하기 시작하는데요. 유럽 추진 실패와 팀 이적에서의 어려움은 대표팀 경기력에도 영향을 끼쳤고,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아픔으로 이어집니다. 이후, 반년 넘게 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던 이근호는 2011년 3월 온두라스와의 친선 경기로 복귀했고, 이 경기에서 바로 득점까지 기록하며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표팀 사령탑은 지금 이근호 선수의 소속팀인 대구FC 조광래 대표이사가 맡았는데요.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았던 이근호는 이어지는 최강희-홍명보 감독의 대표팀에서 꾸준하게 공격진의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영원한 기록' 월드컵 본선 무대 득점
대표팀을 꾸준히 지켜온 이근호는 결국 지난 2010 월드컵의 아쉬움을 극복하며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합니다.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이근호의 발끝엔 절실함이 있었는데요. 승리 없이 1무 2패, 예선탈락으로 끝난 대회였지만 이근호는 가치 있는 기록을 썼습니다. 바로 월드컵 첫 출전인 러시아와의 1차전, 세계 축구 팬들의 뇌리에 이근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순간을 만들었는데요. 후반전 박주영과 교체 투입된 이근호는 중거리 슛으로 이 대회 우리 대표팀 첫 득점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당시 상주상무 소속이었던 이근호는 월드컵 무대 최저 연봉 득점자라는 진기록도 씁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합류를 이어왔던 이근호, 비록 신태용호를 끝으로 인연은 멈췄고, A매치 100경기 출전자 명단인 센트리 클럽에 16경기를 남겨둔 84경기 출전은 다소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A대표팀에서의 화려한 시간, 그 시작을 맛봤던 대구에서 이제 은퇴를 결심한 그의 흔적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의 기억은 강렬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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