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인건비 2억 7,800만 원 빼돌려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연구과제에 참여한 학생 연구원들에게 연구 인건비 전부를 지급할 것처럼 산학협력단을 속여 연구원들로 하여금 연구비를 지급받게 한 뒤 이들로부터 약 2억 7,800만 원을 현금으로 회수해 개인적으로 유용한 경북대 50대 정교수를 사기죄로 구속기소 했습니다.
해당 교수는 지난 2017년 5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자신이 수행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한 학생연구원 22명에게 연구 인건비가 지급되면 그 가운데 일부를 현금으로 회수해 자신이 임의로 사용할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구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할 것처럼 연구 인건비를 신청한 뒤 이에 속은 대학교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연구 인건비 명목으로 2억 7,800만 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습니다.
수사는 어떻게 이뤄졌나?
검찰에 따르면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재단이 고발한 연구원 1명의 연구 인건비 1,350만 원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전면적인 계좌추적, 사건관계인 추가 조사 등 검찰의 직접 수사를 통해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범행의 전모를 밝혔다고 했습니다.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해당 교수는 연구사업에 참여한 학생연구원에 연구 인건비가 지급되면 일정 금액만 사용하도록 하고(석사 70만 원, 박사 140만 원 등), 나머지 초과한 돈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석사 연구원은 140만 원의 연구 인건비를 받으면 교수 35만 원, 등록금 35만 원, 연구원 70만 원으로 쓰는 것으로 종용받았습니다.
박사 연구원은 240만 원의 연구인건비 가운데 교수 60만원, 등록금 40만원, 연구원 140만원으로 쓰는 것으로 지시받았습니다.
행정직원은 산학협력단에서 학생 연구원들에 지급한 연구 인건비와 학생 연구원들에 허용된 사용 금액 및 현금으로 회수할 초과 금액을 엑셀로 정리해 주기적으로 해당 교수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교수는 행정직원에게 회수할 금액(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 쌓인 학생연구원으로부터 현금을 받아오라고 지시해 행정직원을 통해 학생연구원들이 인출하여 가지고 온 현금을 전달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월적 지위 이용한 집요한 요구 이어져
해당 교수는 현금을 교부하지 않는 학생연구원들에는 아래와 같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연구 인건비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한 학생연구원에는 "현금을 안 뽑아주면 앞으로 연구도 못 하고, 연구비 입금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또 다른 학생 연구원에는 "졸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 징계를 주겠다"라고 하면서, 흥정하듯이 "얼마까지 마련할 수 있겠냐"며 집요하게 요구해 받아냈습니다.
특히 학생연구원들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연구 인건비를 교수에게 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당시 인건비를 교수에게 줄 수밖에 없었던 비참했던 심정을 검찰 조사에 토로했습니다.
해당 교수는 이렇게 회수한 현금 중 극히 일부분만 연구실 야식 비용 등으로 사용하고 대부분을 자신이 임의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구개발사업 고질적인 병폐 근절해야
학생연구원들의 연구 인건비와 관련된 교수의 전횡은 우리나라 연구개발사업과 관련된 고질적인 병폐로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관련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범죄행위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 기준'의 제33조 연구개발비 사용액 부당 회수 등 금지 조항에는 "연구개발기관 소속 임직원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이하 인건비 부당 회수 등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참여 연구자에게 지급된 인건비 또는 학생 인건비를 회수하여 관리 또는 사용하는 행위"라고 명확히 적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 연구원들의 연구 인건비 회수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이를 관행으로 치부하려는 인식과 함께 각종 학사, 진로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열악한 지위가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수사 기관들은 지적합니다.
교수가 부당한 행위를 하더라도 저항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교수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연구 인건비를 회수하는 행위는 명백하게 금지되는 행위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를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