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시작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홍준표 의원은 2021년 7월,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과 함께 문희갑 전 대구시장을 찾아갑니다. 인사 겸 조언을 구하러 간 자리에서 문희갑 전 시장은 홍준표 의원에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안 되거든 대구시장에 나오면 안 되겠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홍준표 의원은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는데 이때의 일이 해프닝처럼 ‘홍준표 의원한테 시장 나가라고 했다고?‘라는, 그러니까 진짜 출마를 권하기보다는 ‘홍 의원 물 먹인 것 아니냐‘는 식으로 조롱 섞인 소문이 나돌게 됩니다. “대통령 하겠다고 후보 경선 나선 사람한테 시장 나가라고 한 것은 그냥 비아냥 아니냐“, “홍준표 의원, 소금 뿌려야 하는 것 아니냐“, “역시 문 전 시장 독설은 여전하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말 그대로 해프닝처럼 돌던 소문은 곧 사그라집니다.
사실상 이 자리를 주선한 이진훈 전 구청장은 꽤 난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전 구청장은 홍 의원 대통령 후보 만들기에 더 열심히 나섰습니다.
도와주면 밀어줄게?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 결과 윤석열 후보로 결정된 직후인 2021년 11월 초, 대구 정가에는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의원에게 대선에서 도와주면 대통령 당선 후 총리직을 주겠다“, “지방선거 공천권을 주겠다“라고 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당사자 외에는 알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일은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총리직은 고사했고 돕기는 돕는다고 했다더라“라는 식의 소문들이 꼬리를 물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정가에서는 홍준표 의원의 차기 행보를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청문홍답(청년이 묻고 홍준표가 답하다)‘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사실상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선대위를 비판해온 홍준표 의원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게 두드러지면서 “뭔가는 하려 할 것이다“라는 말들이 나돌았습니다.
그런데 홍의원은 고시 합격해서 ‘모래시계 검사’ 했지, 국회의원 했지, 경남지사도 했고 당 대표하고 대통령 후보까지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려 할까? 라는 물음표들이 많았습니다. ‘실상 남은 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정도인데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국회에서 의장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고 대통령이야 경선에서 떨어졌으니 이제 할 것도 없네‘라는 식으로 다시 소문은 흔적을 감춥니다.
당신밖에 없다
그러다가 지난달 그러니까 2021년 12월 30일, 홍의원이 지역원로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이진훈 전 구청장과 함께 다시 문희갑 전 대구시장을 찾았을 때, 문 전 시장은 “대구는 더 이상 망할 데도 없고 더 이상 망해서도 안 된다“라며 홍의원에게 강력하게 대구시장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당신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매우 강한 톤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홍준표 대구시장 출마설‘이 속도감 있게 퍼지기 시작합니다.
1월 3일 홍준표 의원을 만났을 때 “대구시장 정말 나갈 거냐?“라는 질문에 홍의원은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대구는 정말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고 지역이 똘똘 뭉쳐서 발전적인 변화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대구시장이라는 자리가 칭송받기보다는 욕 얻어먹기 쉬운 자리이다 보니 광역단체장을 이미 한 사람이 굳이 시장 자리를 맡아서 그런 상황을 원할까?
일주일 뒤인 1월 10일 즈음에는 대구 정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기자들조차 “그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냐?“면서 회의적인 반응이 더 많았습니다.
내가 홍 대표랑 어떻게 싸우겠나?
1월 13일 이진훈 전 구청장이 대구 중남구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자리에 꽤 많은 기자가 모여들었습니다. 대구시장 나간다던 이진훈 전 구청장이 갑자기 중남구 보선으로 선회한 것도 궁금했지만 홍준표 의원과의 연관성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전 구청장의 출마 선언 직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아니나 다를까 “대구시장 준비하다 왜 중남구로 가나?” 라는 질문이 나왔고 이진훈 전 구청장은 “제가 대구시장을 두고 홍 대표와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아마 말실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어진 질문들을 얼버무리다시피 대답을 한 이진훈 전 구청장은 관련된 사안에 더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홍준표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한 채 대구 수성을에 출마했을 때 당시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이인선 후보를 누르고 홍의원 당선에 큰 공을 세운 이 전 구청장의 말이었기 때문에 ‘뭔가 있긴 있구나‘로 이어졌고 홍준표 의원이 차기 지방선거에 대구시장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당권? 아니면 대구시장?
홍준표 의원 대구시장 출마설은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올해(2022년) 초 매일과 영남일보 대구시장 여론조사 때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아니면 중남구 보궐선거“라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세 군데 모두 여론조사 대상으로 할 수 없으니 한 곳을 정해달라는 해당 신문사 기자의 요청에 대구시장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던 김재원 최고위원은 하필 홍의원 대구시장 출마설이 확산하던 시기에 대구시장 출마를 접고 중남구 보궐선거 출마로 급선회합니다. 꼭 이 시기와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김 최고위원 이외에도 당시 여론조사에 포함됐던 사람 가운데 몇몇이 시장 출마 포기 의사를 밝히거나 활동이 뜸해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정말 대구시장에 출마한다는 말인가?
홍의원에게 몇 차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이제 정치를 마무리해야 할 때“라면서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 바로 밑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둘 다 검사 출신에 나이로 보나 고시 기수로 보나 한참 선배인 홍준표 의원이 새까만(?) 후배인 윤석열 후보 밑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후배가 검사장이 되면 승진에 늦은 선배 검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는 검찰 내부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대선 처음 본다“라고 했는데, 두 거대정당의 후보 둘 다 사실상 ‘자격 미달‘로 보고 있다고 해석이 됩니다. 그렇다면 홍준표 의원은 정권교체에 기여하기 위해 자당 후보를 돕되, 그렇다고 3월 9일 이후 들어설 새로운 정부에서 무언가 자리를 맡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대구의 A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 시장은 이제 어렵다고 봐야 한다. 재선 현직 시장이 시민 지지율이 20%가 안 되지 않느냐, 대구에 뭔가 해보려면 홍준표 의원이 제일 낫다.”
중진 B 의원은 “홍준표 의원은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면 대구시장에 나갈 테지만 만일 진다면 당권을 노릴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 밖에도 홍의원에게 대구시장 나갈 것을 권유한 대구의 몇몇 의원들도 중진의원 B와 같은 인식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각이 맞는다면 상당 부분 물음표가 해소됩니다. 홍준표 의원은 이미 두 차례 당대표를 맡았고 지난 ‘탄핵 대선’ 때는 후보로 나갈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 후보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20% 넘는 득표를 한 홍준표가 안철수와 만약에 단일화했더라면 보수가 이길 수 있었다“는 비판도 홍의원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일로 홍의원은 “총대를 메지 않겠다.“, “국힘 내부의 ‘내시‘들은 일이 잘되면 다 자기들 공이고 잘못되면 사라져 버리고 나중에 덤터기 씌운다“고 한 말처럼 정당보다, 보수의 가치보다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당 개혁에 대한 생각이 아주 강합니다.
만일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고 홍준표 의원이 다시 당 재건에 나선다면 국민의힘은 재창당 수준의 변화를 겪을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윤석열 후보가 이긴다면 본인이 말한 대로 “윤석열 밑에는 못 들어가니까” 또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대구시장에 출마할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불과 몇 달 사이 각 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이 사람들 전혀 다른 캐릭터지만 공통분모도 있구나’ 였는데, 홍준표 의원과 이재명 후보는 ‘실적 위주‘라는 점에서 닮은 부분도 있습니다. 50대 50, 절반의 확률이지만 홍준표 의원이 대구시장에 출마하게 되면 대구시 역시 어떤 식으로든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의원은 어제(1월 19일)저녁에는 윤석열 후보와 비공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국정 운영 능력을 담보할만한 조처를 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 줬으면 좋겠다, 또 처갓집 비리는 엄단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를 윤 후보에게 요구했고, “받아들여진다면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선거팀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청문홍답’을 통해서입니다. 홍의원의 앞으로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