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6월 14일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에서 생각할 몇 가지


1) 영화 제목이 조금 낯설다. 어느 나라 영화이고, 감독은 누구인지도 함께 설명해달라!

원제는 <Blanco en Blanco>이고, 에스파냐 영화다. 그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 <White on White>다. 하얀색 위에 하얀색을 덧씌우는 의미. 영화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새하얗고 순수한 백색의 땅을 백인들이 짓밟는 불편한 역사’를 다룬 영화다. 테오 코트 (Theo Court) 감독은 1980년생 감독으로 이 영화로 76회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오리종티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에 대한 에스파냐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졌다고 한다. 어쩌면 자기네 조상들이 저지른 범죄행각을 대담하게 밝혀낸 용기를 높이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2) 에스파냐 조상들의 범죄라고 했는데, 그것이 영화와 관련이 있는가?

영화가 다루는 시공간과 사건이 그것을 설명한다. 20세기 초 남미 최남단에 있는 섬 티에라 델 푸에고섬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영화. 하지만 감독은 영화의 사건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못 박지 않는다. 그것은 에스파냐의 식민지 탐사대와 그 후예들이 벌인 숱한 범죄행각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과 100범인 자에게 68번째 범죄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감독은 범죄와 연루된 자들 속에 있던 사진작가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3) 그렇다면 영화 주인공이 사진작가란 얘긴가요?! 어떻게 사진작가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사건과 결부되는가?

전문적인 사진작가 페드로는 이 섬의 최고 권력자인 포터의 결혼식 사진을 찍으러 도착하지만, 정작 어리디어린 신부만 사진에 응한다. 포터는 너무나 바빠서 사진조차 찍을 시간이 없다. 순백의 예복을 입은 신부 사라를 사진에 담은 페드로는 그녀의 사진을 다시 한번 찍는데, 그것은 1865년 에두아르 마네가 출품한 <올랭피아>의 변형 같은 것이다. 혹독한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포터의 하수인 존에게서 백인 노동자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라는 명령을 받는다. 사진은 기록이다! 페드로는 백인 여성 하나와 어린 인디오 여성 3인이 나오는 사진과 장총과 손도끼로 무장한 백인 5인의 사진을 남긴다.

4) 그렇다면 페드로는 에스파냐 조상들의 범죄와 무관한 것 아닌가요!

영화의 절정은 티에라 델 푸에고섬의 원주민인 셀크남족 사냥 장면이다. 장총으로 중무장한 포터의 하수인들이 존의 지휘를 받고 원주민들의 야영지를 급습한다. 덤불 속에서 페드로는 평화로운 셀크남족의 천막을 본다. 그러다가 하인(Hain) 복장을 한 원주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1920년 무렵 사라진 셀크남족의 성인식 복장이 하인). 학살을 시작한 백인들이 무차별적으로 도살함으로써 원정은 끝난다. 그 시점부터 페드로의 시간이 시작. 사냥꾼들에게 원주민들의 시신을 밟게 하고 위치를 옮기고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게 하는 페드로. 학살이 아니라, 사냥 장면을 예술사진으로 승화하는 페드로.

5) 티에라 델 푸에고섬과 연관된 특별한 것이 그들을 학살로 몰고 간 것 아닌가?!

1878년에 칠레의 누군가가 이 섬에 금이 있다는 헛소문 -> 엘도라도 -> 다수 백인 이주 -> 금은 없고, 양 대량 방목 -> 가축 개념을 몰랐던 셀크남족의 양 사냥 -> 원주민 도살

지금부터 13,000년 전에 얼어붙은 베링 육교를 지나 인류가 알래스카에 도달 -> 1,000년의 근면한 이동으로 티에라 델 푸에고섬 도달 (남미 최남단) -> 그 사이 남미 대륙의 거대 포유류 대부분이 멸종 -> 훗날 에스파냐의 피사로와 코르테스가 남미 원주민 대량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