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12월 20일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


*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에서 생각할 몇 가지'


1) 이 영화는 영화문법에 충실한, 사건과 줄거리가 있는 기존 영화들과 사뭇 다르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가?!

로이 앤더슨 감독은 스웨덴 출신에 78세! 지금까지 10편 영화 연출 (과작)

<끝없음에 관하여>로 2019년 제76회 베네치아 영화제 감독상.

2020년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영화자막 제공)

76분 동안 30개의 장면이 거의 대화 없이 진행

등장인물도 스베르케르 올손과 결부한 초로의 사내 이외에는 겹치지 않음

장면들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흥미로울 듯.

각각의 장면이 나름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지고 있음


2) 그렇다면 조각 그림 맞추는 방식으로 영화의 여러 가지 장면을 짜 맞춰보면 어떨까?!

줄거리가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은 영화는 관객을 몰입시킴 (감독의 하수인)

이 영화는 ‘뭐 하자는 거지?’ 하는 문제 제기 -> 관객의 능동성 환기

첫 번째 대상은 믿음을 잃은 신부의 이야기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꿈을 계속 꾸다가 정신과 전문의 린드 박사 방문

영화에서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 면류관을 쓴 채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 실현

“쓰레기 같은 놈아! 십자가에 묶어! 일어나!” 하는 군중의 분노한 목소리

실제 현실에서 그는 영성체를 주관하지만, 신을 향한 믿음을 잃은 상태

-> 의사도 그에게 신이 있는지 물음 (우리 시대의 신과 신앙생활)


3) 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위대한 축복이 있기 마련! 영화에도 역시 사랑이 존재?!

정거장에 홀로 내린 여자가 힘없이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림

(그녀 앞에서 남편과 아빠를 기다리던 가족의 반가운 해후)

늦게 나타난 남자의 다정한 얼굴과 포옹 그리고 키스 -> 따사로운 햇살과 하늘

이슬람 신도의 가장이 명예 살인하고 슬프게 우는 장면

가족의 명예를 지키고자 딸을 죽인 아버지의 극심한 슬픔과 후회

과연 사랑이 종교 혹은 전통적 가치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어물전이 있는 시장통에서 사랑을 이유로 중년 여성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기는 남성

세 번씩이나 ‘사랑’을 말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 (사랑은 무엇인가?!)


4) 인간 세상을 고통과 공포로 몰아넣는 최악의 존재가 전쟁일 텐데, 전쟁도 나오는가?!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쟁

여기서 핵심적인 인물은 세상을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한 인간 히틀러와 그 잔당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하 벙커에서 총과 대포 소리 들으며 무너지는 자들

정말로 살고 싶은 도망병의 애원이 계속되지만, 사형 집행

‘토미’라는 이름의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노부부가 아들의 묘소 관리하는 장면

눈보라가 몰아치는 벌판에 끝도 없이 대열을 지어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전쟁포로들

얼마나 많은 청춘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을까!!


5) 하지만 앤더슨 영화에서 ‘구원’의 주제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고 들었다! 이 영화에서도 구원은 나오는가?!

<끝없음에 관하여>에서 앤더슨 감독이 시종일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삶과 운명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철학적-인간학적 주제!

구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관객에게 제시하는 장면은 없다! 하지만,

폐허가 된 대도시 상공을 꼭 부둥켜안은 채 날고 있는 남녀의 장면은 따사롭고 화사하다!

거대한 성당과 부러진 철교, 잔해만 남은 도회의 풍경이지만, 그들 덕분에 구원이 가능?!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 어딜 봐도 평야인데, 달리던 승용차가 멈춰 있다!

시동이 꺼져서 아무리 애를 써도 걸릴 듯 걸리지 않는 승용차

-> 누렇게 시든 풀과 잿빛 하늘과 낮게 떠가는 구름장 그리고 슬프게 우는 철새들

-> 과연 구원은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앤더슨 감독이 던지는 문제

-> 구원은 누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제시하고, 어떻게 우리는 구원을 얻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