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인문학
11월 2일 영화 <동사서독>
기억할 것인가, 망각할 것인가 (<동사서독>)
왕가위 사랑영화에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빛깔과 향기가 있다. 그것이 실연에서 오는 아픔이든 (<중경삼림>), 엇갈린 관계의 상처든 (<동사서독>), 배신 이후의 추억이든 (<화양연화>), 기다림의 미학이든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미래에 펼쳐질 미지의 사랑이든 (<2046>) 왕가위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고유함이 거기에는 있다.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우리가 항용 대면하는 이미지는 칙칙함, 우울함, 끈적거림은 한여름 장마처럼 끈질긴 것이다. 한 남자와 두 여자 혹은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도식에 근거한 드라마투르기는 이제는 식상할 때도 되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 commedia dell'arte’의 아를레키노, 피에로, 콜롬비나의 무수한 변형을 생각해보시라.
그러나 왕가위 영화에서 제시되는 관계는 이탈리아 인형극에 바탕을 둔 삼각관계와 거리가 멀다. 왕가위의 인물들은 사랑 때문에 길에서 길로 떠돌지만, 진부한 판박이와 무관하다. 그의 영화에 중독된 사람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동사서독>은 무협의 틀을 가진 사랑영화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인간들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기억하려는 자: 서독 구양봉
백타산에서 나고 자란 서독 구양봉은 한 여인만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는 사막에 객잔을 차려놓고 살인청부 중개업으로 살아가는 냉혈한이다. 골치 썩이는 인간이나 꼴 보기 싫은 사람을 헐값으로 죽여주겠으니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능글맞다. 살수를 고용하고 마을 사람들과 협상하는 그에게 빈틈을 찾기 어렵다.
구양봉에게는 복사꽃 필 때면 찾아오는 동사 황약사가 있다. 그들은 해마다 딱 한 번 만나서 술을 마신다. 고향을 등지고 살아온 10년 세월 서독에게 여인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동사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던 여인에게 끝내 그 말을 하지 않은 서독 구양봉. 그를 떠나서 구양봉의 형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여인이자 형수.
흥미로운 점은 구양봉의 첫사랑이자 형수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녀가 황약사를 통해 보내온 ‘취생몽사주’. 그것을 마시면 옛일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취생몽사주. 그래서일까?! 서독은 그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백타산의 그녀는 말한다. “갖지는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고.
사랑을 망각하려는 자: 동사 황약사
사랑을 잊어버리고 싶은 황약사는 씻기 어려운 상처가 있다. 절친한 벗의 아내 도화를 사랑한 것이다. 사랑한 후에 그는 길에 길을 떠돌고 복사꽃 필 때면 서독을 찾는다. 그가 길을 떠도는 것처럼 아내를 버리고 길을 떠난 맹무살수도 언제나 거리에 있다. 서독이 기억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면, 동사는 한시바삐 기억을 놓아버리고 싶다.
사랑해서는 아니 될 사람을 사랑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황약사. 어쩌면 망각은 그에게 부여된 유일한 혈로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모룡연 혹은 모룡언과 황약사의 엇갈리는 관계가 성립한다. 남장여자인 모룡연과 술을 먹다가 그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혼인하겠다고 말하는 황약사. 그 말을 믿고 황약사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모룡연.
하지만 동사는 이미 취생몽사주를 마시지 않았던가?! 자신의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 황약사. 그로 인해, 좌초된 사랑 때문에 독고 구패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돌며 무림고수가 되는 모룡연. 사랑의 슬픔을 잊어버리려 술을 마시고, 세상을 떠돌고, 무협을 연마하는 사람들. 그토록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이 진정 사랑이란 말인가!
남겨진 여인들: 서독의 형수와 도화
장만옥이 연기하는 구양봉의 형수 배역은 신비롭다.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에 구양봉의 애원을 떨쳐버리는 그녀.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듣지 못했다는 연유로 구양봉을 놓아버리는 그녀, 사랑이 언어와 자존심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순정하고 철없는 그녀. 반면 그녀는 결혼 이후 10년이 넘도록 옛사랑을 기억하며 한숨짓는다.
맹무살수의 처 도화는 어떠한가?! 한 마리 말에 의지하여 언어마저 상실한 듯 무표정한 도화. 느닷없는 사랑의 봇물을 견디지 못하고 한갓되이 무너져버린 도화. 남편도 연인도 떠나고 그녀는 혼자 남는다. 사랑한 것이 유일한 죄가 되어 도화는 날마다 눈이 멀어가는 남편도, 이제는 영영 떠나버린 연인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화의 애인이었던 황약사가 어느덧 서독의 옛 애인을 지극한 눈길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랑의 상처로 도화를 떠나고 친구의 살기를 불러일으킨 그가 또 다른 상처를 간직한 여인을 가슴에 담는 사랑의 모순. 황약사가 취생몽사주를 마시는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어쩔 도리 없는 것이다, 잊는 수밖에는!
사랑의 틀 밖에 있는 사람들: 홍칠과 당나귀 소녀
사막에 있는 서독의 객잔을 찾은 맹무살수는 돈을 위해 마적단과 결전을 벌인다. 햇살이 밝을 때 그는 무적이지만, 구름 속으로 태양이 숨으면 시야가 흐릿하다. 한 칼로 불귀의 객이 된 맹무살수는 더 이상 도화도 황약사도 만날 수 없다. 그런 맹무살수의 시신을 홍칠에게 보여주며 서독은 마적단의 왼손잡이 고수를 조심하라 이른다.
고향을 떠나 천하를 주유하며 돈과 명성을 구하는 홍칠. 그에게는 고집스럽고 우악스러운 아내가 있다. 아내를 타박하지만 그녀는 혼자 귀향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당나귀를 끌고 다니는 소녀가 동생의 복수를 청원한다. 홍칠이 얻는 대가는 달걀 하나! 하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그는 손가락을 잃는다.
몸을 주려는 소녀를 단호하게 거부한 홍칠은 아내를 데리고 사막을 넘어 표표히 떠나간다. 그들은 사랑의 틀 밖에 있으면서 서독에게 삶의 의미를 묻도록 한다. 그것은 “오래도록 사막에서 살았지만, 나는 사막을 보지 못했다!”는 구절로 압축된다. 아내와 함께 떠나가는 홍칠을 보면서 서독은 그 옛날 그렇게 떠나지 못한 자화상을 오래도록 연민한다.
글을 마치면서
백타산에서 형수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은 구양봉은 객잔을 태우고 길을 떠난다. 객잔이 사라진다는 것은 거기 담긴 관계도 불길 속으로 내던져진다는 것을 뜻한다. 서독과 형수, 동사와 도화 그리고 맹무살수, 서독과 형수와 동사, 동사와 모룡연 (모룡언), 당나귀 소녀와 홍칠, 그의 아내. 이런 관계가 한낱 허공중으로 스러지는 것이다.
왕가위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되, 무협은 장식으로만 기능하는 영화 <동사서독>. 군청색 의상과 백옥 같은 도화의 얼굴이나, 붉은색 옷과 입술로 쓸쓸한 형수의 얼굴은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붉은 사막과 파스텔로 칠해 놓은 듯 보이는 호수와 거기 비치는 그림자는 어떤가!
왕가위는 스타일리스트라 불린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영화에 고유한 색깔과 소리를 입히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영상과 음악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은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이 아니라, 영화에 담긴 관계와 사건을 각인하기 위함이다. 무협으로 풀어쓴 사랑영화 <동사서독>은 그 대표적인 형식일 것이다.